[스토리텔러] 영역 시집 낸 시인 오은과 유희경의 말말말

황지윤 기자 2025. 7. 26.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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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장(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무심코 놓치고 지나간 신간, 인터뷰에 담지 않은 후일담, 각종 취재기 등 이모저모. +α를 곁들여 봅니다.

지난달 서울 혜화동 시집 서점 '위트앤시니컬'에서 시인 오은(왼쪽)과 유희경. /김지호 기자

지난달 말 서울 혜화동 시집 서점 ‘위트앤시니컬’에서 시인 오은과 유희경을 만났습니다. 시 동인 ‘작란(作亂)‘의 창립 멤버이자 각별한 벗인 두 시인이 이달 미국 출판사에서 각각 영역 시집을 낸 우연이 신기해서요.

오은의 2016년 시집 ‘유에서 유’는 ‘From Being to Being’, 유희경의 2010년 첫 시집 ‘오늘 아침 단어’는 ‘Today’s Morning Vocabulary’로 번역됐습니다. 둘 다 문학과지성사(문지) 시집인데다, 공교롭게 번역가 이름도 안수현·안수연으로 헷갈릴 뻔했어요.

너무 끼워 맞춘 것 같다고요? 마침 두 시인은 ‘낮과 밤’을 소재로 짝을 이루는 필사 에세이도 낸다고 하더군요. 서로에게 발문을 써주었다고 합니다. 어쩐지 둘을 함께 만나고 싶더라니. 묘한 우주적 기운(?)이 작동한 모양입니다.

물론 번역 시집 출간 자체도 흔치 않은 일입니다. 한국문학번역원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25년 3월까지 번역원 지원을 받은 번역 출간물(2261건) 중 시는 334건에 불과하다고 해요. 소설(1399건)보다 한참 적죠. 2020년대 들어 슬슬 시동을 거는 모습인데, 기록할 만한 사건이라고 봤습니다.

지면 기사(7월 10일자 A16면 <<a href="https://www.chosun.com/culture-life/culture_general/2025/07/10/7JJ26LMK5ZDNPPXLIJCH7ET2Y4/" target="_self" rel="" title="https://www.chosun.com/culture-life/culture_general/2025/07/10/7JJ26LMK5ZDNPPXLIJCH7ET2Y4/">‘아, 저씨!‘가 ‘Ah, just Shit!’으로… 詩는 한계 없죠>)에는 담지 않았던, 분명 시작은 인터뷰였으나 어쩐지 만담(?)으로 끝난 것 같은 대화의 기록을 구독자들과 나눕니다.

황지윤 기자(이하 황): 2010년대의 시집이 번역된 거더라고요. 10년이 넘은 빈티지들인데….

오은 시인(이하 오): 2016년이면 10년이 안 됐지. 9년. (기자를 보며) 덧셈 뺄셈 이슈가 있구나.

황: 꼼꼼하시네요(웃음). 10년 안팎으로 고치겠습니다. 그때 묶었던 시를 다시 만나는 기분이 어떠신지, 또 영역으로 마주하는 소감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유희경 시인(이하 유): 번역가가 저한테 이런저런 질문을 많이 한 케이스였어요. 물론 오은 시인의 말놀이가 번역하기는 훨씬 더 어렵겠지만, 그건 그 단어를 고스란히 상대하는 싸움이라면, 저는 감정을 상대하는 시집이고, 번역도 마찬가지로 그래야 하는 상황이어서 질문이 많았습니다. 이건 무슨 뜻이고, 이건 어떤 의미가 좀더 정확하고…. 너무 낯설더라고요. 10년 전의 나를 멀게 혹은 애틋하게 보는 정도가 아니라 기억이 잘 안 나는 수준까지 좀 멀게 느껴지더라고요. 생각해보면 제 첫 시집을 펼쳐볼 기회가 많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다음부터 시집이 차곡차곡 쌓이니까. 그럼에도 제 근간을 이루고 있는 시집이어서 더듬을수록 새록새록하고, 또 ‘아 내가 이렇게 출발을 했구나’ 좀 새삼스러웠어요. 번역이 됐다는 설렘보다, 내가 어떤 것을 좀 되찾고 싶어하는 마음 같은 게 지금 현재는 조금 더 큰 것 같아요. 굳이 초심이라고 말하면 초심이겠지만, 내가 시작했던 지점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 계기였어요.

오: 저는 세 번째 시집이잖아요. 그런데 이 시집이 제가 직장 다니면서 쓴 시집이에요. 제가 빅데이터 회사에 4년 정도 근무했는데, 그 회사 다니면서 쓴 시집이거든요. 이 시집이 나오고 바로 사직서를 썼어요. 인생의 한 국면이 끝난 것 같더라고요. 직장 다니면서 시집을 한 번 묶었으니 다른 일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뒤에 뭐가 정해지지 않은 채 사직서를 냈어요. 직장 다닐 때는 퇴근하면 바로 시인 오은이 안 되더라고요. 머릿속에 내일 해야 할 일, 오늘 못다 한 일 이런 것들이 떠오르고. 처음에는 일이 서툴기 때문에 직장 다닌 처음 1년 동안은 거의 시를 못 썼었어요. 그렇게 해서 어렵게 묶은 시집이라 각별함이 있고. 이때가 ‘청년 실업’이라는 키워드가 대한민국에서 대두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해요. 다들 너무 어렵게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엔 직장인 오은으로서의 자아와 직장인 오은이 사회 초년생이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청년을 바라보는 시선이 담겨 있어요. ‘유에서 유’를 출간하고 나서 제가 확신을 했던 게 하나 있어요. ‘시 쓰기를 꽤 오랫동안 하게 될 것 같다’는 느낌이었어요. 회사 일 때문에 시 생각을 하지 못하고, 시를 쓸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는 상황에서 내가 이걸 이토록 바랐다는 것은, 내가 아직 할 말이 있는 사람이구나 싶어서. 그런 점에서 좋아하는 시집인데, 이 시집이 번역된다고 했을 때 기뻤어요. 첫 시집 ‘호텔 타셀의 돼지들’의 말놀이는 번역할 수가 없어요. 이거는 어떤 사람이 와도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은 정도인데, ‘유에서 유’도 난도가 상당하거든요. 그런데 (번역가가) 나한테 뭘 묻는 질문을 하나도 하지 않는다고? 좀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믿음도 있었어요. 자잘한 것까지 다 묻는 사람은 한국어를 잘 구사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떤 뜻인지 물어보는 경우도 있을 것인데, 한국어를 잘 구사하는 외국어 사용자인 경우에는 어떤 의미인지 아는 거니까요.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시집 출간을 기다렸습니다.

유: ‘유에서 유’라는 시집은 저한테도 되게 애틋함이 있는 시집인데, 은이 첫 번째 시집 때는 제가 은이를 몰랐고, 두 번째 시집은 은이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나온 시집이라면, 세 번째 시집은 가깝게 바투 붙어서 지내던 시절의 시집이거든요. 그래서 편편이 다 알 것 같은 느낌. 직장을 얼마나 힘들게 다녔는지도 알고, 거기서 나름 의미를 발견하고 즐거움을 느꼈던 것도 알고 있어서, 그래서 은이 시집 중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집입니다.

황: 두 분이 시 동인 ‘작란’ 활동을 시작했던 게 언제죠?

오: 2012년이었어요. 2012년 1월 20일. 이걸 왜 기억하냐면 삼진법이거든요. 0, 1, 2로 구성돼 있어서.

유: 아니예요. 확실하게 기억을 못 하고 계신데요. 시작점이 되게 두루뭉실했거든요. 그래서 은이가 이렇게 하자고 결정을 했습니다.

오: 아 그랬구나, 아니구나. 원래 기억은 미화되잖아요?

황: 영역 시집이 나온 것, 그 자체의 의미는 어떻게 보세요?

유: 저는 좀 궁금해요. 도대체 어떤 걸, 어떻게 읽어낼 것인가, 이들이.

황: 영어권 독자들이요?

유: 네. 저는 한국에서 살았고, 한국이라는 나라는 대단한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에 와서야 서로에 대한 이해가 좀 통용이 되고 있지만, 적어도 이 시집을 쓰던 시기나 이 시집이 만들어져 가던 그 시기의 한국은 섬 같은 나라일 텐데…. 그런데 이들이 무엇을 어떻게 느낄까 궁금해요. 번역가 안수연(스틴 안)씨가 자기가 번역한 걸 외국 문예지에다 발표했어요. 투고를 하면서 유희경 시인, 스틴 안 번역 이렇게.

황: 어느 잡지에 발표를 했나요?

유: ‘워즈 위드아웃 보더스(Words Without Borders)’라는 유명한 문학 웹진.

오: 국경 없는 의사회 같은 느낌이 있어요. 국경 없는 언어회 같은 느낌.

유: 거기에 실린 게 제일 기억에 남아요. 거기서 반응이 오는 것이 너무 신기한 거예요.

황: 어떤 반응이 오던가요?

유: 수연씨 통해서 들었는데, 다들 너무 좋아한다.

오: 그런 말은 나도 하겠다.

유: 어쨌든 뭔가 반응이 있었다는 거잖아. 나는 그게 되게 신기하더라고.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제가 지금 생각이 좀 바뀌었어요. 저는 번역, 특히 시 번역이라는 건 무용한 노력이라고 생각하는 편이었거든요. 그래서 한국에 번역된 외국 시에 대해서도 그렇게 마음을 주는 편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그 이후부터는 은이한테도 계속 독촉을 했어요. 너 나가야 된다, 너 이거 번역되어야 하고, 거기에 되게 노력해야 한다. 은이가 얼마 전에 러시아 갔다 왔는데, 이것도 제가 되게 단호하게 얘기했어요. 가야 한다고. 지금에 와서는 조금 기대합니다. 사람의 삶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전제하에 본질적인 측면이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가 있어요.

오은과 유희경의 영역 시집(왼쪽부터). /블랙오션·제퍼프레스

황: 시 번역이 무용한 노력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는데, 왜인가요?

유: 언어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실질적인 리듬, 그러니까 글자 수를 맞추든 라임을 맞추든 어떤 식으로든 리듬을 맞추는 관습이라는 게 한국도 있고 미국도 있는데, 그 둘은 철저하게 각 나라의 언어에 매달려요. 완전히 달라요. 그래서 (번역을 할 땐) 의미를 가지고 오는 게 대부분의 선택일 겁니다. 그런데 뉘앙스라는 건 결코 의미만으로 만들어지지 않고, 적어도 시라면 리듬을 포기해서는 아무것도 성립되지 않습니다. 내가 릴케의 리듬을 읽고 싶지만, 결국 릴케 번역자의 리듬을 읽게 되는 경우가 대다수일 거라고 믿었어요. 코어의 역할에 대한 제 신뢰가 상당히 희박했다고 봐야 할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그것보다는 더 분명합니다. 시도 결국 삶에 대한 이야기고, 사람의 삶이라는 게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고, 나라마다 특성이 있을 것이고, 그 특성은 그 나라의 지리적·역사적 환경에 의해서 결정될 테지만…. 그 안에서 깊숙한 곳은 사람이어서, 우울한 사람이어서, 외로운 사람이어서 느끼는 그런 감정에 대한 구체적 믿음이 저한테 좀 생긴 것 같아요.

오: 저는 2010년대 초반쯤 어느 술자리에서 ‘오은 시는 좋지만 국내용’이라는 말을 들었어요. 누군지 생각이 잘 안 나는데 일부러 지웠던 것 같아요. 언어 유희가 많아서, 한국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여러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지만, 번역이 될 때 이 말맛이 다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요. 사실 그때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번역이 될 거라고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던 시기였을 뿐더러 ‘나는 한국인이고 한국어로 시를 쓰는데, 한국인이 제일 좋아하면 좋지 뭐.’ 이렇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2019년에 제가 다섯 번째 시집인 ‘나는 이름이 있었다’로 대산문학상을 받았는데, 이듬해 번역 지원금 나오는 게 있거든요. 전년도 수상작을 번역하면 가산점까지는 아니지만 우선시하는 거. (내 시집을) 번역했을까, 했는데 없더라고요. 그래서 ‘역시나 내 시를 번역하는 건 어렵겠구나’ 싶었어요. 실제로 친한 번역가들 만나도 너무 손사래를 치는 거예요. 생각해보니 내 시는 자잘한 위트를 살리기 위해 의미를 깎든지, 현지에 가장 어울리는 표현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는 지점이 있어서 두 배 이상의 노력이 들 수밖에 없어 다들 기피하는구나, 하고 받아들였어요. 그런데 ‘블랙오션’ 편집자인 제이크 르빈이 시집을 번역하고 싶다는 연락을 보내왔고, 지금으로부터 한 2년 전쯤 출판사로 정식 오퍼가 갔어요. 그때부터 안수현이라는 제가 얼굴도 모르고 어디 계신지도 모르는 번역가 선생님이 번역하기로 결정되었다고 들었어요. 처음에는 안수연씨랑 같은 사람인 줄 알았더니 다른 분이었어요. 안수현님은 국내에 계신지, 어디 계신지….

유: 외국에 계세요.

오: 난 그것도 몰랐어. 제가 소셜미디어상에서 좀 찾아봤어요. 안 하시나 봐. 검색해도 나오질 않으시더라고. 언젠가 이분하고 만날 수는 있겠지만, 번역 중에 메일을 보내는 것도 월권같이 느껴졌어요. 왜냐하면 저는 번역은 제2의 창작이라고 믿는 사람이에요. 책이 출간된 이후에는 해설이나 평론에 대해서 왈가왈부하지 않는 사람이거든요. 어려워서 더디게 되겠지 했는데 2년 만에 출간이 된다고 들었어요. 반신반의하면서 PDF 파일을 받아봤어요. 편집자의 말을 읽는 순간 ‘됐다, 확인 안 해도 되겠다’ 이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좋았어요.

황: 편집자의 말에서 어떤 부분이 특히 좋으셨어요?

오: 이분이 알고 있는 거지. 내가 아무리 잘해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 있고, 원래 의미를 살리거나 말맛을 살리기 위해 영어 표현으로 비슷하게 만들거나. 둘 다 살릴 수 없는 경우가 생기잖아요. ‘구원’이라는 시를 읽고 ‘이렇게 좋은 시집을 누군가 벌써 번역하고 있겠지’ 생각했었다는 과정이 좋았어요. 실제론 아무도 하지 않았지만(웃음). 그래서 몇 년 뒤에 운이 맞아서 번역을 시작했다는 게…. 이 책을 너무 잘 읽으셨을 것이고, 여러 번 읽으셨을 것이고, 이미 소화된 상태에서 번역을 시작했으니 안 봐도 너무 잘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한 편 한 편 꼼꼼하게 봤어요. 아직 보는 중인데, 2부까지 봤는데 기대 이상이에요.

황: 유희경 시인은 어떤 과정을 통해서 시집을 출간하게 됐나요?

유: 저는 되게 특이한 케이스예요. 등장인물이 여러 명인데요. 우선 사와코 나카야스 선생님. 재미 일본인인 유명 시인이자 번역가, 대학 교수(브라운대 문예학 교수)라고 들었어요. 제 번역가인 안수연씨가 이분한테 시를 배우고 있었어요. 사와코 선생님이 ‘너는 번역을 좀 해서 한국에 대한 감각을 깨우는 것이 좋겠다’고 수연씨에게 조언하면서 친구에게 연락을 했는데 그 친구가 최돈미(김혜순 시인 영어 번역자)입니다. 최돈미 선생님이 김혜순 선생님한테 연락을 했고요. 김혜순 선생님이 “‘오늘 아침 단어’라는 시집이 있는데 한번 볼래?” 하셨고, 그래서 이걸 최돈미 선생님이 보고, 사와코 선생님한테 소개를 했고, 안수연씨가 번역하게 된 케이스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은이랑 같은 생각이었어요. 번역은 제2의 창작이고, 네가 나한테 물어보면 내가 열심히 대답해주겠지만 그 외 다른 것에는 관여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나중에는 너무 많은 것을 물어보고, 제 오케이를 바라고…. 그 열정에 감동했다고 할까요. 저도 열심히 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황: 어떤 질문을 하던가요?

유: 밑줄을 쳐와서 ‘이 단어는 선택지가 두 개가 있는데, 나는 이쪽으로 생각하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물어요. 그래서 내가 ‘이 단어의 뉘앙스를 모르겠다’ 그러면 그 얘기를 풀어서 해주는 거야.

오: 형, 영어 과외를 받았네.

유: 그러면 나는 내러티브를 이야기해주는 거죠. 그렇게 해서 어디까지 갔냐면 제가 옛날에 짝사랑하던 사람 이야기까지 가게 되는 거예요. 이게 왜 나왔는지 얘기를 하다 보면….

황: 코어까지 가버린 거군요.

유: 너무 저 안쪽까지 가는 거지. 나중에는 내가 이것까지 말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래서 모르겠다고 말한 것도 있고(웃음). 그래서 제 시집을 몇 번 다시 봤어요. 그 시집의 모든 이야기를 다 설명을 해야 했기 때문에, 제 가족사를 이야기하게 되는 거예요. 그럼 수연씨도 수연씨의 가족사를 이야기하고. 그래서 되게 많은 뒤엉킴 같은 게 있었어요. ‘너는 도대체 이 시집 어디가 끌렸냐. 너네 선생님이 주니까 그냥 한 거 아니냐’ 그랬더니 ‘자기는 그런 사람 아니다’ 하더라고요. 자신은 명랑하고 즐거운 시를 쓰고 싶지만, 이런 시에 마음이 끌린대요. ‘억압받는 환경에서 탈출하고 싶은 마음, 답답함과 우울함 이런 것들이 너의 시집에 있는데 그게 나는 좋았어’라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나중에 영역판 해설을 보는데 ‘이 친구한테 이해받았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 최고의 번역이네요.

유: 그렇지. 이 책의 결과가 중요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누군가가 내 시집을 이렇게까지 판 거잖아요. 은이 것도 마찬가지거든요. 번역하는 과정을 지켜보면….

오: 나는 얼굴도 몰라.

유: 그래도 네 시집을 그 누구보다 들입다 팠을 거다, 라는 건 확실한 거지. 이 단어가 맞는지, 저 단어가 맞는지 엄청 고민하고.

황: 유희경 시인은 이제 코어까지, 첫사랑 기억까지도 다 털렸으니까. 번역가인 스틴 안이 시인님을 가장 많이 이해하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겠네요.

유: 그렇다고 봐야죠.

오: 하지만 내 노후는 스틴 안이 해주기로 했어.

유: 스틴 안이 뉴욕에다가 오은 아파트를 해준다고 말한 적이 – 없어요. 오은이 요구했는데, 스틴 안은 거절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약속한 게 돼 버려서(웃음). 지금 제가 스틴 안이랑 줌 미팅하면 은이가 ‘뉴욕 아파트 언제 마련되냐’ 이래요.

오: 스틴 안이 왜 자꾸 누나라고 부르냐고. 저는 뭐 얻을 사람한테는 다 누나라고 불러요. (갑자기 기자를 보며) 지윤 누나.

황: ??? 저는 줄 게 없는데요.

유: 다들 그렇게 시작해요.

위트앤시니컬의 원형 계단에서 두 시인이 이번에 영역된 시집의 한국어판 시집을 들여보였다. /김지호 기자

황: 김혜순 시인님이 다음 질문에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답변에서 나왔어요. 김혜순 시인은 왜 유 시인님의 첫 시집을 언급하셨을까요?

오: 너무 궁금하다. 희경 형이 시집이 그것만 있는 건 아니었는데.

유: ‘겨울 밤 토끼 걱정’ 빼고 다 있었지.

오: 혜순 선생님은 스틴 안이라는 친구한테 번역을 맡길 수 있다는 가정하에 한국어의 아름다움, 시의 구조 같은 것을 복합적으로 보지 않았을까 싶어요.

유: 선생님은 당신 시집이 번역되는 과정에서 있었던 시행착오를 후배들이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을 거예요. 이를테면 미국은 우리나라처럼 시집 두껍게 안 내요. 시집은 짧고 얇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도 처음엔 ‘오늘 아침 단어’ 한 권이 아니라 여기저기서 20편 정도만 골라서 내자고 했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그거 하지 말라고. 미국에 소개될 때 첫 시집이 단단하게 자리를 잡아주면 다음 과정에서 무리가 없고 더 쉬워질 수 있다고 판단하신 것 같아요. 한번 낼 때 온전한 형태로 내는 게 맞는 거고, 최근작부터 거꾸로 돌아가기보다는 첫 시집부터 올라가는 게 좋다고 생각하신 게 아닐까 추측합니다.

황: 김혜순 시인이 최근 해외에서 활약하는 것이 한국 시인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거나, 어떤 나비효과를 일으키지 않는지요?

오: 나비효과가 아니라 코끼리 효과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재작년 독일 시집 번역 대회에 갔어요. 갈 수 있었던 이유가 김혜순 선생님이 거기서 연설을 하셨는데, 반응이 너무 뜨거워서 베를린에서 한국 시에 대한 관심도가 확 올라간 거예요. 독일 베를린 문학 기관인 하우스 퓌어 포에지(Haus für Poesie)에서 번역 대회를 열고 저와 김소연 시인을 초대하는 이벤트가 만들어졌어요. 혜순 선생님이 거기 있던 많은 독일인과 문학에 발 담그고 있던 사람들을 감동시키지 않았다면 그 기회가 없었을 것 같아요. 지금 한국 문학, 특히 한국 시가 외국에 번역되어 소개되고 주목받을 수 있는 이유가 있다면 거기엔 김혜순 선생님이 우뚝 서 있다고 봐야겠죠.

유: 하우스 퓌어 포에지 기관장이 거만하기로 소문이 났는데 김혜순 시인을 소개하면서 ‘우리가 그토록 사랑하고 존경하는 김혜순’이라고 하더라고요. 베를린을 쓸어버렸다고 들었어요.

황: 그때가 김혜순 시인을 파울 첼란이랑 비교하고 그랬던 때 아닌가요?

유: 아마 그랬던 거 같아요. 막 뽕이 차오르더라고요. ‘진짜 이 정도야?’ 실감을 했어요. 예전에는 번역원 기금을 노리고 번역을 했다면, 요즘은 (지원을) 못 받아도 번역하는 마인드가 생긴 것 같아요. ‘블랙오션’도 한국의 좋은 시 라인업을 계속 갖춰가고 있고요. 김혜순 선생님하고 최돈미 선생님하고 둘이 차 타고 다니면서 되게 작은 낭독회 돌고, 투고하고 떨어지고…. 그 고생 이야기 나중에 꼭 들어보세요. 처음엔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래서 김혜순이 닦은 길을 저희가 따라가고 있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황: 아직 시인들이 해외 출판사의 연락을 받거나 이런 단계는 아닌 거죠?

유: 제가 정말 특이한 케이스고, 일반적인 루트는 대산문화재단 번역 지원을 통해서 번역되는 경우입니다.

오: 번역 시집이 나온다는 건 아직까지 피부로 와닿지는 않는 상황이죠.

유: 아예 작정하고 뛰어들어야지 가능한 세계 같아요. 본인이 번역 제안하고 본인이 뛰어들어야 됩니다.

황: 한국 소설의 2017~2018년 상황과 비슷한 것 같아요.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부커상 받고 한국 소설이 조명받기 시작한 시점이요.

유: 비슷해요. 그런데 시는 시장이 없어요. 상을 받아도 그게 후속 작업으로 바로 연결되지 않는 건, 상을 받는다고 팔리는 건 아니니까…

황: 시장이 없다는 얘길 했는데, 예전에 스틴 안 만났을 때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한국 서점에 시집 코너가 따로 있는 게 신기하다고. 한국 시인들이 서로 친하고 잘 알고, 이런 분위기도 너무 좋다고 하고요. 그런데 미국에 ‘시장’이 없다면, 시집이 해외로 나간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유: 영향의 영역인 거 같아요. 김혜순 시의 영향을 받아서 작업이 이뤄지는 거죠. 오은 시인이 좋아하는 작가 누가 있을까요? 이를테면 돈 드릴로가 오은에게 어떤 영향을 준 게 있겠죠. 그런 영향 관계에서 언급되고, 이야기되면서 주목도가 높아지는 거겠죠. 지금 김혜순의 책이 안 팔린다고 보기 어렵거든요. 분명히 팔릴 거예요. 이 사람이 문학의 어떤 특별한 지점을 차지하고 있고, 그것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준다는 판단이 들면, 그다음부터는 시나 소설이냐 장르 구분 없이 소비가 되고 문학적으로 의미를 갖게 될 겁니다. 그 과정이 지난하고, 수치화돼서 보여지지 않는 것뿐이죠. 사실 우리가 언제부터 문학으로 돈 벌려고 했나요? 문학은 돈이 안 됩니다. 문학이 돈 되는 시절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오: 왜?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류시화 시집) 몰라요?

유: 그래, 그런 게 있지. ‘가시고기’(조창인 소설)도 있고. 그런 거 제외하고는 돈이…

오: 고기가 되네. 천명관 ‘고래’까지. 포유류긴 하지만…. 물에 살아야 되나?

유: 돈 되려고 이걸 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많이 파는 건 소설가들이 하라고 하고요.

황: (오은 시인을 보며) 시인님 생각은 다른 것 같은데, 지금 물고기 생각하고 계신가요?

오: 아니요, 아니요. 전혀 아니고. 유머로. 사실 시를 쓰기 시작할 때부터 한 번도 돈을 생각한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제가 대학 합격자 발표 다음 날 등단 소식을 들었어요. 부모님한테 말씀드리니까 아버지가 ‘얘가 나 닮아서 글솜씨가 있다’고 하셨는데, 어머니는 두 말씀 하셨어요. ‘원래 아들은 엄마 머리 닮는다’ ‘시는 취미로 써라. 무조건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하셨어요. 시만써서 먹고살 수는 없다는 생각을 일찍 하긴 했어요. 유희경 시인도 서점을 하셔야 되잖아요.

황: 마지막 질문으로 향해 갑니다. 좋은 시 번역이란 무엇일까요?

오: 이렇게 두 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누고 보니까 제가 좋다고 생각하는 번역은 여기 있던 걸 현장에서도 이해할 수 있게끔, 거기 맥락에 맞게 갖다 놓는 것. 가령 우리 한식이 미국에 가면 퓨전이 되잖아요. 외국인은 매운 걸 한국인만큼 잘 못 먹으니까 덜 맵게 하기도 하고, 변주하는 거죠. 제가 최근 국립러시아인문학대 초청으로 러시아에 다녀왔는데, 첫날 교수님이 한식당에 데려가서 육개장을 사주시는 거예요. 그런데 육개장이 시큼한 거야, 쉰 것도 아닌데. 발사믹 식초를 넣었더라고요. 시큼함이 매콤함과 결합해서 고사리랑 소고기가 어우러지는데, 그게 현지인들은 맛있는 거야. 나는 생소한 맛이니까 어렵게 먹었죠. 그런데 그런 방식인 거죠. 여기에 있던 것을 고스란히 옮기는 게 아니라 현지 사정을 고려해서요. 현지 사정을 아는 사람이 번역할 때 번역의 질이 더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시에서의 말놀이가 번역됐을 때 미국 사람들도 ‘투 머치(too much)’라고 생각하지 않고 웃을 수 있다면 좋은 번역이 아닐까.

유: 김혜순 시인과 최돈미 번역가의 관계가 이상적이라고 봐요. 초창기엔 둘이 고생하면서 미국·캐나다 이 동네 저 동네 북토크 하러 다녔다고 해요. 좋은 번역은 관계이자, 상호 간에 이해하려는 노력의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은이의 잘된 번역을 보면 이 사람이 얼마나 고민했는지 알 수 있죠. 책을 너덜너덜하게 봤겠죠. 그래서 제게 번역은 굉장히 문학적인 일이 됐어요. 이번에 수연씨와 약소하게나마 경험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황: 마지막으로 첨언하고 싶은 것 있으세요?

유: (오은 시인을 보며) 사랑한다.

오: (침묵)

황: 무시하시는 것 같은데요(웃음).

유: 이제 어떤 관계성인지 아셨죠? 제가 애정 표현하면 쑥스러워하고 카톡으로 챙겨주는….

오: (갑자기 화제를 돌리며) 짠 것도 아닌데 겹쳐서 시집이 나오는 것도 신기하고, 운이 트이면 미국에 가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둘 다 출판사가 어디 있는 거예요?

유: 찾아볼게요. 블랙오션은 보스턴이고, 제퍼프레스는 뉴욕이네요.

(후략)

이날 두 시인이 미국에서 북토크를 하면 꼽사리 껴서 취재 가겠다는 희망사항을 담은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 지었습니다.

인터뷰로부터 몇 주 뒤인 지난 17일(현지 시각) 시인 김혜순이 독일 베를린 세계 문화의 집(Haus der Kulturen der Welt·HKW)이 주는 국제문학상을 받았습니다. 한국에서 처음은 물론, 아시아 최초라고 해요.

김혜순 시인과 그의 뒤를 따라 세계로 향해 도전장을 내밀어 보는 한국 시인들에 주목해야할 때입니다. 애정과 응원을 곁들이면 더욱 신나겠지요.

이야기(story)에는 묘한 힘이 있습니다.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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