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태 기자의 책에 대한 책] "한 청년의 작은 꿈이 지금의 한국출판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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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박맹호 민음사 회장은 '영원한 출판인'이란 수사가 뒤따른다.
반세기 동안 그가 걸었던 길이 한국 출판의 역사였기 때문이다.
작고 5년 전인 2012년 출간됐던 '박맹호 자서전 책'은 그가 평생 걸었던 출판의 길을 한 권으로 압축한 책이다.
박 회장은 원래 문학을, 그중에서도 소설을 꿈꿨다고 이 책에서 가면 없이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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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박맹호 민음사 회장은 '영원한 출판인'이란 수사가 뒤따른다. 반세기 동안 그가 걸었던 길이 한국 출판의 역사였기 때문이다.
한국인이라면 모를 수 없는 '민음사 세문전(세계문학전집)'도 그의 머리에서 시작됐고 시인 김수영, 소설가 이문열의 문명(文名)을 드높인 이도 바로 그였다. 작고 5년 전인 2012년 출간됐던 '박맹호 자서전 책'은 그가 평생 걸었던 출판의 길을 한 권으로 압축한 책이다.
밀란 쿤데라를 둘러싼 비화에 특히 눈길이 간다.
1988년 박 회장은 동유럽을 다녀올 기회를 얻었다. 모스크바를 떠나 체코슬로바키아를 거쳐 파리로 갔다가 귀국하는 일정이었다. 프라하의 야경은 그의 심부에 새겨졌는데, 마침 송동준 서울대 독문과 교수가 원고 한 뭉치를 놓고 갔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었다. (당초 제목은 '견딜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었다.)
당시 송 교수는 입시문제 출제위원으로 한 달간 강제 합숙하는 '감금' 상태였는데, 그때 쿤데라의 원서를 숙소에서 번역했다. 송 교수가 민음사에 들러 "내려면 내고 아니면 말라"며 호기롭게 나왔다.

당시만 해도 쿤데라는 국내에서 무명이었고, 원고를 검토한 편집부 분위기도 그저 그랬다. 하지만 박 회장은 체코의 느낌을 기억했고, 당시 독일 서점 베스트셀러였던 이 책의 가치를 알아봤다.
박 회장이 밀어붙인 결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민음사 문예지 '세계의 문학' 1988년 가을호에 통째로 실렸고, 직후 출간된 단행본은 30만부가 팔렸다.
1990년대 우리가 경험한 '밀란 쿤데라의 시대'는 그렇게 시작됐다.
김수영문학상의 비화도 흥미롭다. 박 회장이 생각하기로 "1970년대가 소설의 시대였다면 1980년대는 시의 연대"였다. 김수영 시인의 유족은 고인의 시집과 산문집 인세를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 박 회장에게 '김수영문학상' 재원으로 써달라 요청했다. 박 회장은 부족한 상금을 채워 김수영문학상을 시작했고, 이 상은 지금까지도 한국의 젊은 시인들이 가장 갈망하는 영예로 이어지고 있다.
박 회장은 원래 문학을, 그중에서도 소설을 꿈꿨다고 이 책에서 가면 없이 고백한다. 서울대 문리대 재학 시절, 단짝이었던 고 이어령 교수와 문학을 논했다. 그러다 방황 끝에 처남이 운영하던 전화 판매점에서 의자도 없이, 편집과 교정은 집에서 하는 식으로 출판업을 시작했다. 한 청년의 작은 꿈이 한국 출판의 역사를 새롭게 썼다.
출판의 거인은 '책의 힘'을 이렇게 기록한다.
"책은 한 인간을 과거의 삶에서 건져 내 새롭게 만들고 성숙한 인간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다. 오랜 시간의 학습이 아니라 어쩌다 마주친 단 한 권의 책으로도 사람의 인생은 180도 달라진다. 나는 출판사가 지속적으로 양서를 펴냄으로써 '정신의 대학'을 이루는 것을 출판의 본원적 의무라고 생각해 왔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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