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화장실’ 대학 첫 설치 3년…왜 더 확산되지 못할까

정봉비 기자 2025. 7. 25.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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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16일 국내 대학 중 처음으로 성공회대학교에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 설치됐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에프티엠(FTM·여성으로 태어났으나 남성으로 정체화함) 트랜스젠더인 ㄱ(17)군에게 가장 편안해야 할 학교 화장실은 ‘트라우마’의 현장이다. 여성 화장실에 갈 때마다 ‘성별 불쾌감’(젠더 디스포리아)을 느꼈지만, 남성 화장실을 쓰기도 어렵다. ㄱ씨는 “학교에서 화장실 갈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 급식에 매운 음식이나 국이 나오면 거의 먹지 않고, 당번이라 칠판지우개를 빨아야 할 때는 화장실에 가는 대신 교실 한쪽에서 분무기로 적셔서 빨았다”고 했다. 그는 “남녀 어느 쪽의 화장실도 이용하기 힘든 사람들을 위해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성공회대학교에서 지난 2022년 대학 최초로 성별·나이·성 정체성·장애 유무 등과 관계없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 도입됐지만, 3년이 지난 현재도 확산은 더디다. 외려 일부 개인이나 단체를 넘어 공직자가 혐오 발언을 하는가 하면, 이에 대한 차별 해소 진정이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석연찮은 이유로 보류되기까지 했다. 차별 없는 화장실 이용 또한 헌법상 평등권의 구현으로 볼 수 있는 만큼 공공이 나서 확산을 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독립·밀폐된 공간 안에 배려 시설

모두를 위한 화장실은 이름 그대로 트랜스젠더, 남녀로 정의되지 않는 성소수자를 비롯해 휠체어 장애인, 성별이 다른 활동지원사와 장애인, 생리컵을 쓰는 여성, 보호자가 필요한 어린이와 어르신 등 ‘모두’가 평등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화장실이다.

성공회대에 설치된 화장실의 경우, 혼자서 쓸 수 있는 독립된 형태로 장애인을 위해 변기 주변에 핸드 레일과 손잡이, 각도를 조절할 수 있는 거울이 설치됐다. 생리컵 세척을 위해 변기 옆에 작은 세면대를 뒀다. 화장실은 안에서 닫힘 버튼을 누르면 열 수 없는 구조다. 경우에 따라선 한 공간에 칸으로 구분된 경우도 있는데, 각 칸이 완벽하게 밀폐돼있고 다양한 소수자를 위한 배려 시설이 설치돼 있다는 점이 일반 화장실과 다르다.

성공회대에서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 설치된 지 3년이 지났지만 대학과 사회 전체로 확산은 더디다. 성공회대 이후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 설치된 대학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 한 곳뿐이다. 가장 큰 벽은 ‘민원’에 대한 우려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 캠페인을 벌이는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장은 “모두의 화장실을 만들고자 하는 곳들이 문의나 자문을 할 때가 가끔 있는데, 혐오 민원에 대한 걱정을 제일 많이 한다”고 했다. 실제 화장실이 설치된 성공회대와 카이스트의 경우 학생학부모교사인권보호연대 등 보수 단체가 “성범죄를 유발할 수 있고, 사회적으로 성소수자를 용인하는 결과를 낳는다”며 학교 앞에서 시위하거나 구청에 폐쇄 민원을 전하기도 했다.

공직자 왜곡 이어 인권위도 외면

모두를 위한 화장실에 대한 왜곡된 주장은 국회 국정감사 현장에서까지 이어졌다. 지난해 10월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모두를 위한 화장실과 관련해 조정훈 국민의힘 의원은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 동성애를 암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고,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한국은 동성애가 인정되지 않는 나라”라고 답변했다.

이에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는 같은 달 “성소수자 학생의 인격권과 평등한 교육권, 안전하게 교육받을 권리 등 인권을 침해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진정했다. 문제는 이후로도 이어졌다. 안창호 인권위원장이 해당 진정 사건 보고서에 대해 이례적으로 소위원회 상정 보류를 지시한 사실이 지난 9일 인권위 직원 폭로로 드러나 논란이 일었다. ‘인권 최후 보루’인 인권위조차 사회적 소수자의 화장실 이용에 대해 유보적인 태도를 보인 셈이다. 아수나로는 “공공시설에 안전하게 접근할 권리조차 위협받는 이들에게 (조정훈 의원 등의) 해당 발언은 시설에 접근할 권리는커녕 존재 자체를 부정한 것”이라며, “(안창호 위원장이)동일한 혐오표현의 재발 방지와 피해자들의 권리 구제를 위해 이루어져야 할 최소한의 조치를 가로막았다”고 비판했다.

2025오사카·간사이 엑스포 현장에 모두를 위한 화장실을 알리는 표시가 붙어있다. 방준호 기자

소수자 공공시설 접근권, 의지의 문제

설치 사례가 극소수에 그치는 데도 반대 주장부터 부각되는 한국과 달리 일본, 영국, 스웨덴, 독일 등에서는 공항, 공원, 역 등 공공장소에 모두를 위한 화장실을 적잖게 찾아볼 수 있다. 사회적 소수자 전반의 공공시설 접근성 문제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장애인 단체들을 중심으로 ‘체인징 플레이스’ 캠페인을 진행한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의 기준에 충족되는 화장실에는 체인징 플레이스 인증 마크를 부여해 지도를 통해 찾아볼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고 있는 2025 오사카·간사이 엑스포 현장에도 전체 화장실 가운데 40%가 모두를 위한 화장실로 설치됐다.

전문가들은 모두를 위한 화장실의 설치 확대를 위해 정부나 지자체가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모두를 위한 화장실은 일부 대학교나 대안학교, 인권 단체, 노동조합 등 민간 영역에서만 자발적으로 설치되고 있어 관련 기준과 통계조차 없는 상황이다. 박한희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누구나 차별 없이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권리는 헌법상 평등 의무에서도 도출되는 것이어서 공공 차원에서도 충분히 추진해볼 수 있다”며 “각 지방자치단체에도 유니버셜 디자인(연령·성별·장애 유무 등 개인의 차이와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편리하게 사용하고 접근할 수 있도록 제품·시설· 서비스 등을 설계) 조례가 있는 곳이 있어, 이에 기반해 설치할 수 있는 곳이 많지만, 의지 자체가 없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봉비 기자 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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