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주 이야기- 진주 대동공업] 6부 김삼만과 기공일생(機工一生) (20) 김삼만의 못다 한 이야기

knnews 2025. 7. 25.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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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구포대교 공사 현장서 전보 받아
진주 가보니 결혼시키려는 부모님 작전
집안이 짝지은 처자와 사흘 만에 식 올려
박순애 여사와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인연

회갑 땐 김종필 총리가 친필 휘호 선물
‘기공일생’ 대동공업 상징하는 문구로


경영자의 뒷모습이 때로는 웃음을 주기도 한다. 우리는 이와 같은 현상을 보고 ‘인간적인 면’이라고 한다. 김삼만 회장의 결혼 이야기는 많은 분들에게 회자된 일화로 한 편의 드라마로 제작해도 될 소재이기도 하다.

◇김삼만의 결혼 이야기

1932년 가을, 김삼만은 평소와 다름없이 구포대교 공사 현장에 있는 토목국 산하 기계공작소에 출근하여 담당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현장 관리직원이 다급하게 김삼만을 찾아와 쪽지 한 장을 건네주고 떠났다. ‘진주 부친 위독’ 전보였다.

김삼만은 휴가를 받고 곧바로 구포에서 기차를 타고 진주로 향했다. 이제부터 고생하신 부모님을 잘 모실 수 있는 희망의 끈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위독하다니, 김삼만의 마음은 진정이 되지 않았다.

진주집에 도착하니 대문은 잠겨 있었고,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대문 밖에서 “어머니, 어머니” 하고 큰소리로 부르자 아버지께서 “삼만이 왔나” 하는 대답이 들려왔다.

아니 위독하시다는 아버지 목소리가 저렇게 쩡쩡하다니,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혹시 어머니가 아픈 것을 전보가 잘못 왔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잠시 후 어머니가 대문을 열어주면서 김삼만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순간의 혼란 속에 큰방으로 들어가니 아버지께서는 웃음기 있는 얼굴로 “삼만아, 내일 모레가 네 혼인하는 날이다.”

“네? 제가 장가를 가요? 아니 이렇게 갑작스레 결정을 할 수 있나요?”

“집안 어른끼리 혼인 날짜는 정해졌다. 미리 알려주면 혼인할 때쯤 네가 오지 않을 것 같아 내가 아프다는 전보를 보낸 것이다. 그렇게 알고 혼인 준비를 하도록 해라.”

“아버지, 저는 이제 부산에서 자리를 잡아 기술자가 되었고, 또 열심히 저축도 하고 있습니다. 좀 더 일을 한 후 결혼을 하겠습니다.”

“집안 어른들이 결정을 하였다. 네 고집으로 장가를 가지 않으면 집안 망신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네 밑으로 만흥이 상민이도 나이가 들어가는데 네가 가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거냐?”

아버지의 결심과 훈계는 대단하고 완고하였다. 아버지의 강경한 말씀에 더 이상 거역할 수 없었다. 아버지 모르게 어머님에게 하소연을 하였지만 결혼을 한 후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는 것이 희망이라 하시면서 아버지보다 더 완고했다.

김삼만은 “세상에, 신부 얼굴도 모르고 장가 가는 법이 어디 있나?”하고 푸념 섞인 하소연을 어머니에게 했지만 이 질문에도 기다린 듯 어머니는 “내일 이모하고 신부댁에 가기로 했다”는 준비된 대답이 막힘없이 나왔다.

◇신부 얼굴도 못 보고 결혼식을 하다

김삼만은 내일 신부를 보고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곧바로 부산으로 달아나기로 결심을 하고 일단 부모님 말씀에 따르기로 하였다. 다음날, 이모님을 따라 신부댁이 있는 진주 옥봉동으로 갔다. 하지만 신부 얼굴은 보지 못했다. 장인, 장모 될 신부 부모님만 보게 됐다. 당시 풍습으로 내일 혼인할 신부 얼굴을 미리 보여주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던 것이다.

차라리 신부 집에 가지 않고 도망이라도 갔다면 문제가 크지는 않았을 것인데 후회가 되었다. 오히려 김삼만이 장인, 장모님 될 분에게 먼저 선을 보인 것이 됐고, 예비 사위로 대접을 받았으니, 이제는 도망도 갈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더 이상의 고집을 피우는 것은 부모님에게는 물론 신부 가족에게도 좋지 않은 모습이 됐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어 그대로 장가를 가기로 결심했다.

김삼만은 21세 때 봄, 여름, 가을, 겨울꽃보다 더 아름다운 19세의 밀양박씨 순애 여사를 맞이해 혼인을 치렀다.

◇신혼 첫날, 족두리를 벗겨야 하는데

김삼만은 결혼식 당일에도 연지, 곤지 찍은 신부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지 못하였다.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2m도 되지 않는 거리에서 혼례식을 올리는 동안 몇 번이나 신부 얼굴을 보려고 고개를 들었지만 하얀 면사포가 줄곧 신부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혼례식이 끝나자 신부는 방으로 들여보내고, 김삼만은 마루나 마당에서 친척들을 맞이하는 등 잔치를 이어갔다. 한낮의 잔치가 끝나는 시간까지도 신부 얼굴을 보지도 못했다.

밤이 되고 방문객이 떠나가고서야 겨우 신부집에 차린 신방에 둘이 있게 됐다. 술상이 들어와도 신부는 가린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신부, 우린 부부요, 술 한잔 주시오

김삼만은 신부에게 “이제 우리 결혼식도 올렸으니 부부가 되었소. 부끄러워하지 말고 술 한잔 따라 주시오” 하고 요청을 하였다. 수줍음 때문인지 신부는 요동도 하지 않았다.

김삼만은 또다시 “술 한잔 주시오” 했지만 그래도 신부는 고개만 숙인 채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두 번이나 요청했는데 반응이 없자 김삼만 스스로 술잔에 술을 따르고 마셨다. 순간 김삼만은 혹시 신부가 말을 못 하거나 못 알아듣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급하게 결혼식을 올리게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자 안절부절못했다. 이런 생각 속에 계속 혼자서 마신 술로 인해 약간의 취기가 있어 용기를 내어 신부의 족두리를 벗겼다. 그러면서 일부러 신부의 머리카락을 당겼다.

“아야!”

신부는 비명을 질렀다.

‘아, 농아는 아니구나’ 하면서 김삼만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1973년 8월 대동공업사를 방문한 김종필 국무총리에게 부품과 농기계를 설명하고 있는 김삼만 사장./대동50년사/

1973년 8월 대동공업사를 방문한 김종필 국무총리에게 부품과 농기계를 설명하고 있는 김삼만 사장./대동50년사/

◇김종필 국무총리의 기공일생 휘호 선물

1972년은 김삼만이 태어난 지 60년이 되는 해로 ‘회갑년’이다. 진주시 교외에 있는 삼낙장(三樂莊)에서 회갑 잔치를 했다.

이때 김종필 국무총리가 대한민국 농업의 성장에 크게 기여한 김삼만에게 회갑기념 선물로 친필 휘호 ‘기공일생(機工一生)’을 선물했다.

생전에 김삼만은 ‘기공일생’이라는 표현을 너무도 좋아했다. 김삼만의 회고록 제목도 기공일생이다. 아들 김상수 대동공업 2대 회장도 ‘기공2대’라는 표현을 사용할 정도로 ‘기공’이란 표현은 대동공업을 대신하는 상징적인 글이 됐다.

이래호 (국제학박사, 통역·번역가)

이래호 (국제학박사, 통역·번역가)

이래호 (국제학박사, 통역·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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