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금메달 영웅이 남긴 서명 ‘코리안 손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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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8월 9일 독일 베를린 올림픽 주 경기장.
손기정이 베를린 올림픽 우승 직후인 1936년 8월 15일 직접 서명한 엽서 실물이 처음으로 공개된다.
당초 투구는 베를린 올림픽의 마라톤 우승자에게 수여하게 돼 있었으나 손기정에게 전달되지 않았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베를린 샤를로텐부르크 박물관에 보관돼왔다.
이후 오랜 반환 노력 끝에 1986년 베를린 올림픽 개최 50주년 기념행사를 통해 손기정의 품으로 돌아왔고, 이듬해 보물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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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베를린 올림픽 우승 후
직접 작성한 엽서 실물 첫 공개
민족 정체성 표출 의지 엿보여
청동 투구 등 기증품 18건 전시
1936년 8월 9일 독일 베를린 올림픽 주 경기장. 장내를 채운 관중들은 힘차게 질주하는 선수를 향해 환호를 보냈다. 42.195㎞를 달린 최종 기록은 2시간 29분 19초. 당시 올림픽은 물론 국제대회에서 ‘마의 30분’으로 불려 온 벽을 깨뜨린 신기록이었다. 그러나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선 금메달리스트 손기정(1912∼2002)의 표정은 어두웠다. 그의 가슴에는 일장기가 달려 있었고, 우승자를 위해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가 울려 퍼졌다. 일제 치하였던 당시 국내 언론은 일장기를 지우거나 흐리게 한 사진을 담아 민족 자긍심을 드높인 손기정의 올림픽 마라톤 우승 소식을 전했다. 이른바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떠들썩했지만, 손기정은 며칠 뒤 작은 엽서에 ‘Korean(코리안) 손긔졍’이라는 서명을 남겼다.

전시는 손기정이 기증한 보물 ‘고대 그리스 청동 투구’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베를린 올림픽 당시 특별 부상이었던 청동 투구를 비롯해 금메달, 월계관, 우승 상장, 신문 기사 등 총 18건을 만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처음으로 함께 전시하는 자리다.
전시품 중 손기정의 친필 서명이 담긴 엽서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드러내고자 했던 손기정의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귀한 자료다. 손기정은 당시 일본이 아닌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알리고자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글로 ‘손긔졍’이라고 사인해 줬다고 한다. 올림픽 정신을 나눔으로 이어간 청동 투구도 인상적이다. 이 투구는 기원전 6세기쯤 그리스의 코린트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1875년 독일의 고고학자가 올림피아에서 발굴한 것으로 전한다.

전시에서는 인공지능(AI)으로 재현한 ‘그날의 영광’도 엿볼 수 있다. 박물관은 1936년 일장기를 달고 뛰어야 했던 청년 손기정의 모습부터 1947년과 1950년 ‘KOREA’ 이름을 달고 세계를 제패한 그의 제자들, 1988년 서울 올림픽 성화 봉송 주자로 나선 노년 손기정 등을 생생하게 되살렸다. 박물관은 “어려운 시대 상황에도 희망과 용기를 전해준 손기정 선수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그의 의지와 신념을 되새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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