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호연의 보딩패스] 채식주의자를 위한 하늘 위 식탁
[편집자주] ‘양호연의 보딩패스’는 유용한 항공·여행 정보를 보다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쏠쏠한 항공 정보와 여행 꿀팁은 물론 업계 동향까지 다양한 소식을 전달하고자 합니다.
비행기에서 가장 설레는 순간 중 하나는 기내식이 좌석 앞에 다가올 때가 아닐까요. 탁자 위에 정갈하게 놓인 식판을 하나하나 열어보며 그 안에 담긴 세계의 맛을 만나는 시간, 마치 작은 도시락 안에 지구 반바퀴 여행이 들어 있는 기분입니다.
최근에는 작은 식판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데요. 예전엔 늘 “고기 드릴까요, 생선 드릴까요?”였던 선택지가 이제는 훨씬 다양해진 분위기입니다. 채식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하나둘 늘며 하늘 위 식탁에도 채식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단순히 육류를 뺀 메뉴가 아닌 하나의 철학이 담긴 정찬으로 대우받는 채식 메뉴가 이제는 항공사들의 경쟁력이 된 것이죠.
싱가포르항공은 채식에 진심인데요, 아기부터 성인까지 연령별 맞춤 식사를 제공하는데 채식도 예외는 아닙니다. 어린이 식사에도 채식 옵션이 마련돼 있고 성인을 위한 메뉴는 더더욱 풍성하죠. 인도식 채식, 자이나교식, 락토-오보, 아시아식, 서양식까지 종류도 다양합니다. 락토-오보 식단은 유제품과 달걀은 허용하지만 육류는 사용하지 않아 완전한 비건까진 아니더라도 ‘고기 없는 한 끼’를 원하는 이들에게 알맞은 선택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세심함 덕분에 채식을 지향하는 가족 단위 승객들에게도 큰 호응을 얻고 있죠.
반면 에미레이트항공은 ‘하늘 위의 비건 미식’을 실현한 대표 주자입니다. 전 세계 140여개 목적지로 향하는 항공편에서 300가지가 넘는 비건 레시피를 선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는 비욘드 미트, 아를린, 치엔예, 린놀라 등 글로벌 식물성 식품 브랜드가 총출동했죠. 두부, 콩고기, 비건 초콜릿, 아몬드 음료와 같은 재료들이 고급스럽게 조합된 메뉴들은 일반 기내식을 뛰어넘는 만족도를 선사합니다.
주목할 점은 세계 최대 규모의 수직 농장 ‘부스타니카(Bustanica)’에서 재배한 신선 채소를 기내식에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살충제 없이 키운 루꼴라와 상추가 비행기 식판에 오르는 이 장면은 단순한 식사 이상인 듯 한데요, 이게 바로 ‘지속가능한 미식’을 구현한 것이 아닐까요. 여기에 어린이용 비건 메뉴까지 추가돼 비건 피자나 콜리플라워 바이트, 채소 파히타, 초콜릿 푸딩까지 맛과 재미를 동시에 잡았습니다.
독일 루프트한자는 보다 실용적인 접근을 택하고 있는 듯 합니다. 총 11가지 특별식 옵션 중에는 비건, 락토-오보, 아시아식 채식, 자이나식은 물론 저염식, 저콜레스테롤 식단, 글루텐 프리, 락토오스 프리 등 건강과 종교, 개인의 식습관을 폭넓게 반영한 메뉴들이 포함돼 있습니다.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있든 자신의 방식대로 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신뢰를 얻고 있죠.
국내 항공사들의 기내식도 돋보입니다. 대한항공은 채식 기내식 세분화에 공 들이고 있는데요, 한국식 전통 채식부터 완전 비건식, 락토-오보, 자이나교식, 생야채식 등 다양한 메뉴를 운영 중입니다. 특히 한국식 채식은 육류와 해산물뿐 아니라 유제품, 달걀, 심지어 뿌리채소까지 모두 제외한 식단으로 외국인 승객들에게도 호응을 얻고 있죠.
종교식을 포함한 메뉴도 충실히 준비돼 있습니다. 힌두교식을 비롯해 이슬람식, 유대교식 모두 정갈하게 제공돼 다양한 문화적 기준도 자연스럽게 반영된 듯 합니다.
아시아나항공도 순수 비건 식사, 락토-오보, 동양식 채식, 생야채식, 과일식 등 다채로운 채식 메뉴를 제공하고 있으며 각종 종교식도 섬세하게 준비돼 있습니다. 특히 생채소식이나 과일식은 ‘기내에서 디톡스하고 싶은’ 승객에게도 반가운 선택지인 것 같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저비용항공사(LCC)들까지 채식 메뉴를 경쟁적으로 도입하고 있다는 것인데요, 최근 티웨이항공은 유럽, 시드니, 밴쿠버 등 장거리 노선에서 순수 채식 기내식을 선보였습니다.
‘양배추롤과 토마토 쿨리소스’ ‘당근 라페 랩’ 등 이름부터 건강한 이 메뉴들은 소스와 식감, 플레이팅까지 신경 쓴 흔적이 보입니다. 두부 튀김과 콩고기, 청경채와 같은 재료가 조화를 이루며 장거리 비행의 무료함을 채워주는 식사가 될 듯하네요. 여기에 ‘비건 콜리플라워 파스타’ ‘두부 스크램블’ ‘비건 타이커리’ 등 다양한 메뉴들이 노선별로 준비돼 있습니다.
이스타항공도 지난 4월부터 대체육 파스타와 채소 샌드위치 등 간편한 채식 메뉴를 도입해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기단 확장과 신규 노선 취항 등으로 넓어진 보폭 만큼 무슬림 고객을 위한 할랄 컵라면까지 출시하며 채식과 종교식 트렌드를 동시에 반영하고 있어 주목할 만합니다.
기내식은 단순한 서비스를 넘어 개인의 신념과 취향, 건강, 문화까지 담아내는 ‘나를 위한 식사’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건강을 위해, 누군가는 신념을 위해, 또 누군가는 그냥 채소가 좋아서 채식 메뉴를 고르기도 하죠. 이유는 다양하지만 그 선택을 존중하고 배려하려는 항공사들의 노력이 오늘도 하늘 위 식판 위에서 빛나고 있는 듯 합니다.

양호연 기자 hyy@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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