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 여행자] 원하면 할 수 있어, 고요함을 느끼는 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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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센스] '보트에 오르면 세상은 조용해졌다. 오직 강물 소리만 들렸다.'
인도 배낭여행을 인솔하던 시절, 내가 가장 좋아한 곳은 바라나시였다. 인도 북동부에 위치한 도시로, 갠지스강이 흐르고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라 불린다. 인도의 성지이자 나만의 성지였다.

처음 찾았을 때는 '디왈리 축제' 기간이었다. 거리엔 신성시되는 소똥이 온통 발라져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그 위를 걸어야 했던 경험이 지금도 강렬하게 남아 있다. 골목길은 미로처럼 복잡했다. 새벽에 짜이를 마시던 인도인들, 길 한편에 자리한 화장터의 연기, 일출 무렵 강 위를 떠가는 보트들. 해 질 무렵 갠지스강에서 함께 기도드리는 사람들. 모든 풍경이 충격적이면서도 선명하다.
그러니까 나는 바라나시를 정말 좋아했다. 덜컹거리는 야간열차를 타고 도착하기 직전, 노란색의 바라나시역이 멀리 보일 때마다 가슴이 뛰었다. 역을 빠져나와 사이클 릭샤를 타면 먼지 낀 회색빛 도로가 펼쳐졌다. 하얀 소가 끄는 수레, 경적을 울리는 트럭, 초록빛 오토릭샤가 뒤섞인 그 풍경이 낯설지 않았다.
3박 4일의 일정을 마치고 떠나는 날이면 늘 눈물이 났다. 곧 다시 오게 될 텐데도 눈물이 났다. 보트맨 친구 아눕은 늘 물과 과일을 건네며 나를 배웅해주었다.
그러다 회사에서 어렵게 20일간의 휴가를 받아, 나는 망설임 없이 바라나시로 향했다. 그곳에서 가장 좋아한 건 새벽 보트였다. 해 뜨기 전 강가로 나가면, 순례자들은 의식을 치르며 몸을 씻고 기도했다. "짜이, 짜이!"를 외치는 상인들과 다양한 국적의 관광객들로 북적였지만, 보트에 오르면 세상은 조용해졌다. 오직 강물 소리만 들렸다.

나는 매일 그 고요함을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아눕의 보트에서 장사를 돕기로 했다. 새벽 5시, 어두운 골목길을 뚫고 강가로 향했다. 작은 사원으로 가는 순례자들, 잠든 채 눈만 뜬 커다란 소들, 누군가를 향해 짖는 개들이 길을 채웠다. 강가에 다다르면 어둠 속에서 갠지스강이 은은히 빛났다. 나는 아눕을 불렀고, 그는 긴 팔을 흔들며 보트를 끌고 왔다. 우리는 짜이 가게에서 홍차와 비스킷으로 간단히 아침을 먹고, 새벽 6시부터 장사를 시작했다. 아눕은 보트를 몰고, 나는 반대편에 앉아 강을 바라보았다.
보트 안은 힌두교 염주 '말라', 청동 신상, 갠지스강 물을 담는 금빛 항아리들로 가득했다. 다른 보트들도 많았다. 물고기를 방생용으로 파는 어부들, 꽃초 '디아'를 파는 여인과 아이들, 특산품을 파는 상인들이 저마다 바쁘게 움직였다. 물살은 셌고, 여행자들로 가득한 큰 배가 빠르게 지나가기도 했다. 그러면 보트맨들은 망설임 없이 작은 배를 바짝 붙였다. 그들은 긴 다리를 척 걸치고 큰 배에 올라 물건을 팔았다(알다시피 인도인들의 다리는 유난히 길다).

여행자들은 처음엔 망설이다가도 결국 물건을 샀다. "이 물은 신성한 어머니의 강에서 떠온 거예요. 절대 마르지 않아요. 매일 기도드려 보세요." 작은 항아리를 흔드는 손길에, 모두가 한두 개씩 물건을 샀다. 가격도 저렴했다. 나 역시 매 순간 장사만 한 건 아니었다. 싸구려 과자 부스러기를 사서 갈매기들에게 던져주기도 했다. 강가에서 조용히 안개를 바라보며 앉아 있던 시간도 많았다.
보트를 내리고 나면 강가에 앉은 사제들과 대화를 나눴다. 그러다 인도를 여행 중인 외국인들과 마주치기도 했다. 그들은 대부분 장기 여행자였다. 반년은 일하고, 반년은 여행하며 사는 유럽인들이었다.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나도 그런 삶을 꿈꾸게 됐다. 그들은 "원하면 할 수 있어"라고 나를 격려해주었다. 낮에는 숙소에서 낮잠을 자고, 저녁이면 다시 강가로 나가 기도 의식을 지켜봤다.
매일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치는 인도인들의 삶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들의 하루하루는 우리의 삶과 무엇이 다를까, 자주 생각하게 됐다. 그렇게 20일을 바라나시에 온전히 쏟아부었다. 돌아와서는 다시 인도가, 바라나시가 그리워졌다. '언젠가 일을 그만두고 바라나시에 오래 머물고 싶다.' 그 꿈은 결국 현실이 되었다. 지금 나는 매해 절반을 인도에서, 바라나시에서 보내고 있다.
글쓴이 최윤성 '망고 요가 트래블'의 1인 여행 기획자. 국내외 요가 여행을 진행하고, 틈틈이 산티아고 순례길 인솔을 한다. 겨울에는 인도에서 커피와 케이크를 만들며 생활하는 여행자로 살고 있다.
하은정 기자 haha@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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