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마녀사냥 신숙녀 사건 진실은? [.txt]

정의길 기자 2025. 7. 25.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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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인조 9년인 1631년, 충청도의 호족 이점 가문은 몇년 전에 쫓아낸 며느리 신숙녀를 저주살인죄로 고발했다.

그러자, 인조는 신숙녀가 시집에서 쫓겨난 경위에 대한 '별건 수사'를 명령했고, 이에 신숙녀는 옥중에서 자살해, 사건은 종결됐다.

이 사건은 신숙녀가 시동생의 간악한 일을 알고 있어서, 그의 입을 봉하려고 시가 쪽이 조작해 무고한 것으로 후대는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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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인조 9년인 1631년, 충청도의 호족 이점 가문은 몇년 전에 쫓아낸 며느리 신숙녀를 저주살인죄로 고발했다. 숙녀의 저주로 시아버지·시큰아버지·시동생이 병으로 죽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인조의 명령에 따른 거듭된 재조사에도 불구하고 4번이나 신숙녀의 무죄와 시가 쪽의 무고로 결론 났다. 그러자, 인조는 신숙녀가 시집에서 쫓겨난 경위에 대한 ‘별건 수사’를 명령했고, 이에 신숙녀는 옥중에서 자살해, 사건은 종결됐다. 마치 조선의 드레퓌스 사건이라 할 만하다.

이 사건은 신숙녀가 시동생의 간악한 일을 알고 있어서, 그의 입을 봉하려고 시가 쪽이 조작해 무고한 것으로 후대는 평가한다. 인조 정권은 반정 이후 이점 등 공신 권력과 왕권 강화를 위해, 이 사건을 조작하고 확대했다. 그 중심에는 유교적 젠더 질서 재확립이 있다. 조선판 마녀사냥이었다.

유교적 젠더 질서의 주축은 여성의 권리와 활동이 결혼 이후, 즉 시집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런 젠더 질서가 성리학이 도입된 고려말부터 성립된 것은 아니다. 이는 조선 건국부터 시작해 17세기 이후에 들어서야 이른바 시집살이 문화가 본격화되면서, 성립됐다. 이는 여성의 권리와 활동 영역이 친가에서 시가로 옮겨가는 과정이었다. 조선 후기 젠더사를 연구한 지은이는 조선의 젠더 질서를 생활사 차원에서 세밀하게 그리며, 그 과정에서 유교적 젠더 질서의 폭력에 대항한 조선 여성들의 분투와 저항을 소개한다. 많은 여성이 시가가 아닌 친가의 사람으로 여전히 남았다. 신숙녀 사건은 그런 도전에 대한 남성 지배 질서의 두려움에서 나왔음을 보여준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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