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권력의 은밀한 타락…엡스타인 스캔들[이규화의 지리각각]
이규화 2025. 7. 25. 03:13

미국 정계와 금융계에 ‘엡스타인 스캔들’이 다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엡스타인 스캔들이란 헤지펀드 운영 억만장자 제프리 엡스타인(2019년 감옥에서 사망)이 1990년대부터 10여 년간 미성년자들을 성 착취하고 세계 저명인사들에게 성 상납했다는 사건이다. 거론되는 연루 인물들이 가위 세계 최고의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어서 대형 스캔들로 비화했다.
이 스캔들이 재차 부각된 계기는 최근 법무부가 ‘엡스타인 파일’(엡스타인 수사기록)에는 별다른 내용도 없고 개인정보 공개는 민감한 사안이라 공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한 데 기인한다. 트럼프 지지층인 마가(MAGA) 세력이 들고 일어났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작년 선거캠페인 중 대통령이 되면 ‘엡스타인 파일’을 공개하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트럼프 대통령이 공방을 벌인 것은 더 불을 질렀다. WSJ는 법무부가 파일을 공개하지 않은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파일에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WSJ는 2003년 엡스타인 생일 때 트럼프 대통령이 그에게 여성 나체 그림 등이 그려져 있는 외설스러운 축하카드를 보냈다고 보도하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면 충돌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보도 내용을 부인하면서 기자와 편집국장, 발행인 나아가 WSJ의 소유주인 루퍼트 머독을 명예훼손을 들어 100억달러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수면 위로 떠오른 충격적인 사실
엡스타인 스캔들이 처음 세상에 알려진 것은 10대 소녀들의 우연한 대화에서 비롯됐다. 2005년 플로리다 팜비치의 14세 소녀 마사지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유한 남성에게 마사지와 성적 서비스를 제공했다는 얘기가 소녀들 사이에서 오가며 다툼이 일어났고 자초지종을 들은 학교는 경찰에 신고했다. 이것이 엡스타인 수사의 첫 실마리가 됐다. 이후 경찰과 FBI는 엡스타인 집을 급습해 미성년자 성 착취 정황을 확인했고, 2006년 공식 기소가 이뤄졌다.
사건은 2008년 플로리다 주 법원에서 관대한 기소유예 합의로 잦아드는 듯했으나, 2018년 ‘마이애미 헤럴드’의 집중 보도로 재조명되며 다시 폭발했다. 이후 2019년 성매매 및 성착취 혐의로 재기소된 후 엡스타인이 뉴욕구치소에서 사망하면서 이 사건은 세계적인 의혹으로 일파만파 커졌다.
엡스타인의 공식 사인은 자살로 발표됐지만 감시카메라 고장, 교도관의 부주의 등 석연치 않은 정황이 드러나며 그의 죽음에 얽힌 진실은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죽음보다 더 큰 파장을 일으킨 것은 생전에 벌였던 ‘성 상납 네트워크’의 실체였다. 엡스타인은 수년간 미성년 소녀들을 고용해 자신의 지인들에게 성 접대를 시켰고, 이 과정에서 국경을 넘나드는 정계와 재계의 고위 인사들의 연루된 정황이 속속 드러났다.
엡스타인의 스캔들에는 미국과 영국, 유럽의 이름난 인사들이 다수 거론된다. 영국 앤드루 왕자는 성관계 강요 피해 여성의 법정 증언으로 인해 왕실 직무에서 배제됐다. 억만장자 빌 게이츠가 이혼한 것도 이 스캔들 때문이다. 영국 버진그룹 회장 리차드 브랜슨, 전 대통령 빌 클린턴도 엡스타인 명단에 들어있다.
트럼프 대통령 또한 엡스타인과 한때 친밀했던 관계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1980년대부터 엡스타인과 사업상 교류해온 것으로 알려졌으며, 뉴욕 맨해튼 저택을 여러 차례 방문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일부 미성년 피해자들은 법정에서 트럼프와 성관계를 가졌다고 주장해 충격을 줬다. 이런 상황에서 WSJ가 트럼프 대통령이 2003년 엡스타인에게 외설스러운 카드를 보냈다고 보도하니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이 발끈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부족함 없는 거부와 권력자들은 왜 퇴폐로 빠져드나
엡스타인은 단순한 펀드매니저가 아니었다. 그는 철저히 ‘사교계의 권력 브로커’로 기능했다. 맨해튼의 사치스러운 저택과 전용 제트기를 이용해 전 세계의 고위층 인사들을 초대했고, 그곳에서 미성년 소녀와의 성관계를 유도하거나 방조한 정황이 드러났다.
왜 그는 그토록 많은 권력자들을 자신의 성 접대 파티에 끌어들였을까. 전문가들은 이를 엡스타인이 필요로 하는 ‘정보력’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성 접대 파티는 단순한 쾌락이 아니라, 촬영과 기록을 통한 협박 수단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일종의 ‘빅 브러더형 블랙메일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었던 셈이다. 이 구조는 엡스타인을 무너지지 않는 권력자로 만들었고, 그의 범죄가 오랫동안 묻힌 이유이기도 했다.
미국과 영국, 유럽 등 대부분의 문명국가에서는 미성년자 성 착취를 중범죄로 간주해 최대 종신형까지 선고할 수 있다. 국가 차원의 성범죄자 등록제도도 운영되며, 피의자는 평생 사회적 제약을 받는다. 피해 미성년자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 우울증, 신체 이상, 사회 적응 어려움 등 극심한 고통을 겪는다. 미성년 성 착취는 단순한 일탈이 아닌 한 인간의 미래를 파괴하는 폭력이다.
그럼에도 엡스타인의 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은 세계 초 상류계층이다. 전직 대통령에 영국 왕자, 수천억 달러를 굴리는 펀드 운영자 등 부족함이 없는 사람들이다. 미성년 성 착취가 얼마나 중대한 범죄인지 일반인들보다 더 경각심을 가져야 할 지도층이다. 일반 평범한 사람들로서는 뭐가 부족해서 은밀한 퇴폐에 빠질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정신분석학자 칼 융은 인간에게 가장 원초적이며 숨겨진 ‘그림자(Shadow)’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그림자 부분은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아 억눌린 욕망과 충동을 의미하며, 억압될수록 무의식 속에서 더 강하게 작동한다. 거부나 권력자 같은 외적 결핍이 없을수록 내면의 공허와 무력감, 존재의 무의미를 더 깊게 느낄 수 있다. 이때 억눌린 욕망이 일탈과 퇴폐로 분출된다는 것이다.
특히 권력자들은 법과 도덕을 초월할 수 있다는 왜곡된 전능감에 사로잡히기 쉽다. 타인의 인격을 지배하고 파괴함으로써 자기 존재를 확인하려 든다. 결국 이는 단순한 쾌락 추구가 아니라 억눌린 자아의 비뚤어진 해방구이며, 사회적 책임을 상실한 자기 파괴 행위다.
지도층에게 윤리와 도덕은 시퍼렇게 벼린 칼
엡스타인 스캔들은 단순한 개인의 일탈이 아닌, 권력과 부가 어떻게 사회적 도덕적 책임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지 보여주는 표본적 사건이다. 미 법무부는 최근 “엡스타인 파일은 없다”고 밝혔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포함해 그간 수차례 걸쳐 관련 문건에 유명 인사들이 언급됐다는 사실이 공개되면서 의심은 커지고 있다.
마가 지지자들은 워싱턴DC와 뉴욕 월가의 돈과 권력을 쥔 엘리트층들이 미국의 정책을 좌지우지 하는 데에 대해 강한 적대감을 갖고 있다. 특히 워싱턴의 선출되지 않은 고위 공직자들과 이와 결탁한 재력가들이 국민의 뜻이 아닌 조직의 이익에 함몰돼 움직이는 이른바 ‘딥스테이트’를 형성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척결하기 위해 마가 지지자들은 이들과 전쟁을 하겠다고 선언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지지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부가 대표적인 딥스테이트 부패와 퇴폐의 상징인 엡스타인 사건을 덮으려 하자 분노를 느끼는 것이다.
엡스타인 스캔들을 둘러싼 진실은 부과 권력의 타락이 어떻게 사회와 국가를 병들게 하는지 명확히 보여준다. 정치와 언론, 사법이 각자의 역할을 하지 못하면, 그 공백은 결국 엡스타인 같은 인물이 차지하게 된다. 엡스타인의 죽음 이후 진상은 깊은 어둠 속에 묻혔다. 그러나 이 사건이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은 분명하다. 권력과 돈이 도덕을 압도할 때 햇볕이 내리쬐는 공간은 좁아지며, 민주주의는 위협받는다는 것이다. 윤리와 도덕이란 칼을 시퍼렇게 벼려야 한다.
이규화 기자 david@dt.co.kr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디지털타임스에서 직접 확인하세요. 해당 언론사로 이동합니다.
- “물의 일으켜 사죄” 울먹인 황의조…검찰, ‘불법촬영’ 2심서 징역 4년 구형
- “돈 잘벌면서 생활비 안줬다”…아들 쏴죽인 60대男 진술
- “머리 부딪혔어요”…택시기사들 등친 어머니와 아들, 260만원 뜯어내
- 거액 현금 들고 튄 하마스 지도자 부인…남편 피살 몇달만에 재혼해 정착
- ‘인구2만 남태평양 섬나라’ 팔라우…그곳에 美망명 신청자 보낸다는 트럼프
- 8명 목숨 잃은 제석산 구름다리, 결국…“폐쇄 후 안전시설 설치”
- 산청 집중호우 실종자 추정 80대 스님 시신 발견…사망 13명·실종 1명
- “가슴 옆구리 총상으로 장기손상”…아버지 사제총기에 살해된 아들 부검
- 키즈카페 놀이기구 ‘철심’에 이마 찢어진 3세 남아…“사과도 못 받았다”
- “가정불화 때문에”…아들 총기 살해한 아버지 “유튜브서 제작법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