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생각 넘기기] 흐르는 구름 진정 자유자재로운가

하영란 기자 2025. 7. 24.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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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산경일 스님의 책 '나는 어디로 가나'
죽어야 산다, 욕심은 본래 내 마음 아냐
보이고 들리는 대로, 맑은 물·하늘 그대로
법산경일 스님 '나는 어디로 가나' 책 표지.

우리는 이 세상에 와서 존재하다가 사라진다. 그 연장선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존재는 과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고민하게 된다. 오는 곳을 알 수 없고 가는 곳을 알 수 없다.

삶은 간단하지가 않다. 있는 그대로 보는 것도, 있는 그대로를 듣는 것도, 말이 쉽지 온갖 망상이 끼어든다. 우리는 존재에 대한 고민, 사는 방법, 삶의 방향, 또 살고 나면 이 존재가 그냥 소멸하는지에 대한 온갖 생각으로 가득하다. 마음 한구석이 채워지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어려운 말로 말하지 말고 일상적 눈높이에서 깨달음을 주는 글이 간절할 때가 있다.

법산경일 스님의 '나는 어디로 가나'(2025, 백산)는 일상에서 법을 구할 때, 곁에 두고 책장을 넘기면 깊고 고요한 산속에서 흘러나오는 옹달샘 물 한 잔을 마시는 것과 같다. 물 한 잔을 마시면서 나의 마음을 고요하게 들여다볼 시간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도는 일상에 있다. 그 일상에서 포착한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울림을 준다. 내가 머무는 곳을 떠나 멀리서 도를 찾고 있으면 정수기 앞에서 숭늉을 찾는 꼴이 된다. 시적 화자는 '내 마음에 안 든다고/ 내 뜻에 거슬린다고/ 성질부릴 것 있나?('불가지(不可知)' 부분)라며 일상에서 마음을 살핀다. 그러나 일상을 넘어 다시 보이지 않는 세계, 궁극적으로 고민해야 할 세계로 시선을 옮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하얀 눈 덮인다고 큰 산이 가려지나/ 검은 구름 걷히는 날 옛 거울 빛나리라.'('나는 어디로 가나' 부분)고 한다. 밥 잘 먹고 잠 잘 자고 난 다음에 고민해야 할 것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이다.

'맑은 하늘을 보라/ 한 생각 일어나기 전/ 무엇이 보이는가.'('무명(無名)' 부분)에서 무명(無名)은 잘못된 의견이나 집착 때문에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모든 번뇌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나를 점검하고 방향을 정하기 위해서 '무명'에서 벗어나야 한다. 무명의 다리를 건너 무소유로 건너간다.

'가진 것 없어/ 두려울 것 없고/ 아는 것 없어/ 시비할 것 없네'('무소유(無所有)' 부분)에서 가진 것이 없어서 오히려 두려울 것이 없다고 노래한다. 가졌다는 것은 지킨다는 것이고, 지키면서 오히려 적을 만들고, 그 만든 적으로 인해 두려움이 생긴다. 무소유는 소유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지만 소유에 집착하지 않는 마음이다. 자유로운 마음이다. 집착이 없어야 세상을 떠날 때 대자유의 날개를 달고 훌훌 날아갈 수 있다.

내가 죽어야 / 내가 산다 / 나의 욕심은 / 본래 내 마음이 아니다 / 나의 분노심은 / 본래 없던 파장일 뿐 // 나를 버리면 / 내가 행복하다 / 나라는 착상 / 본래 내 것 아니다 / 내 마음의 철벽 / 본래 없던 허상일 뿐 // 선악의 장벽 / 깡그리 부숴버려라 / 좌우 분별심 / 본래 내 맘 아니니 / 나(我)라는 상이 철거되면/ 열반은 바로 여기리라.('죽어야 산다')라고 한다. 나를 버릴 때 비로소 내가 산다는 것이다. 역설 같지만 역설 속에 더 큰 진리의 자유가 있다. 나라는 존재를 버릴 때, 상을 내려놓아야 비로소 열반에 도달한다는 대선사의 깨달음이 영축산에서 울리고 있다.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맑은 물 그대로/ 밝은 하늘 그대로// 가질 것 없고/ 버릴 것 없고// 허공처럼/ 담아도 소유할 것 없고/ 거울처럼/ 밝아도 남길 것 없네// 법계자성 일체가/ 오직 이대로일 뿐이로세.('여시아문')에서 여시아문(如是我聞)은 잘 알다시피 불교에서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는 뜻이다. 제자 아난이 불경을 편찬할 때 첫머리에 붙이는 말이다. 진실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방법이 있을까? 진실을 훼손하지 않고 전하는 방법은 '여시아문'일 것이다.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내 생각이 아니라 이렇게 들었다는 말이다.

우리 각자가 서 있는 곳이 다르다. 관점에 따라서 보는 방법이 다르다. 모든 것은 어디에 있는지, 어떤 선입관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서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그럴 때 최대한의 있는 그대로의 전달법은 '나는 이렇게 들었다'이다.

잠시도 머물지 말자/ 멈추는 시점부터 썩기 시작한다// 짐이 무겁거든/ 지체 없이 내려놓아라('집착은 부패다' 일부분) 일 순간도 깨어 있지 않을 때 집착이 생기기 시작한다. 모든 순간에 깨어 있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가. 법산경일 스님의 책 「나는 어디로 가나」를 넘기면서 한순간 깨어 있었다고 한다면 오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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