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왜 국민 중심 개헌인가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25. 7. 24.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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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 피해와 인사청문 논란으로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하긴 했지만, 지난주에 제77주년 제헌절을 거치면서 개헌론이 공식화됐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제헌절을 맞아 “국민과 함께 만드는 헌법”을 목표로 단계적·연속적 개헌을 천명했다. 이에 호응해 이재명 대통령은 국회가 ‘국민 중심 개헌’의 대장정에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

개헌 공약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받던 이 대통령이 임기 초임에도 불구하고 직접 개헌 의지를 밝혔고 그 주도권을 국회에 맡겼으니 개헌론은 이제 정치 과정의 상수가 됐다. 국정의 두 축인 국회와 대통령이 나섰으니 개헌의 실현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것이다.

그러나 불확실성의 시대에 시대착오적인 내란 사태로 민생고가 깊어지면서 개헌에 대한 국민의 관심사는 오히려 기대만큼 충분하지 못하다. 이런 상황에서 우 의장과 이 대통령이 모두 국민을 개헌의 주체로 천명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국민이 개헌의 주체로 나서지 않는 한 개헌의 정당성과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주권자 국민들도 왜 개헌이 필요하며, 왜 그 주체로 나서야 하는지를 성찰할 필요가 있다.

1987년 헌법은 6월항쟁으로 국민이 쟁취한 헌법이다. 87년 체제에서 한국형 민주공화제는 산업화와 더불어 민주화를 달성해 세계대전 후의 신생 독립국 가운데 시장경제와 민주공화정을 동시에 이룩한 대표적 사례가 됐다.

한편 87년 체제는 국민이 직접 뽑은 대통령에 의한 국정농단과 헌정 유린이 반복되면서 새로운 헌정 개혁의 과제를 안고 있음도 명확해졌다. 무엇보다 권력자의 헌정 유린으로 국민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위기를 실제로 경험했다. 동시에 불확실성이 감당할 수 없으리만큼 커진 국내외 상황은 정치 과정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지 않고서는 안정적인 민생 확보가 어렵다는 냉혹한 현실도 일깨워주었다. 결국 87년 헌정 체제는 그동안의 성취를 이룬 계기들을 온전히 계승하면서도 모자란 점을 보완하기 위한 개혁의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 즉 87년 헌정은 국가권력의 일방 독주를 효과적으로 견제하면서도 만성화된 정치 교착을 돌파해 정치적 생산성을 높이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아야 하는 이중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권력의 견제와 생산성 높은 정치라는 이중과제를 돌파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대안은 주권자 국민을 중심으로 한 ‘더 강한 민주주의’에 달려 있다. 87년 헌정의 반복적 위기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 있지만 핵심은 ‘민주화의 역설’로 빚어진 ‘민주주의의 결핍’ 때문이다. 민주화의 성과물들이 정작 주권자 국민들의 정치적 권능을 강화하는 것보다 관료들이나 검찰, 법원 등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조직이기주의만 강화해준 탓에 민주적·공화적 통제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한 구조적 문제가 터져나온 게 12·3 내란 사태다. 국회 또한 중앙집권화된 공천제도에 기반한 정당제도와 비례성을 상실한 선거제도로 인해 거대 양당 체제가 고착화되면서 진정한 국민 대표가 아닌 지역이나 정파만 과대 대표되고 정작 국민은 주어진 정답지에 제한된 선택만을 강요받는 민주주의의 결핍이 구조화됐다. 대통령의 국정농단과 폭주는 단순한 권력구조의 문제라기보다는 이처럼 정치개혁과 권력기관 개혁의 지체가 낳은 독버섯과 같다.

결국 이제 헌정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국가기본법인 헌법의 저자는 국민이라는 공준에 입각한 헌정 개혁이 절실하다. 87년 헌법의 어떤 부분을 계승하고 무엇을 바꿀 것인지, 그리고 어떤 절차와 방법으로 바꿀 것인지에 대해 국민들이 참여해 숙의할 수 있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그래야 헌법이 진짜 국민의 헌법이 되고 그 헌법에 따라 정치가 이루어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또 국가권력이 헌법을 다시 무시하고 어기려 들 때 국민이 나서서 막아내고 헌정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국민의 직접 행동으로 현대사의 고비마다 독재헌법을 극복하고 민주공화헌법을 쟁취하고 또 지켜온 힘은 헌법이 권력자의 법이 아니라 주권자 국민의 법이라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기반한 것이다. 개헌이 국민 중심이어야 할 당위가 여기에 있다.

더 이상 알량한 여야 합의를 빌미로 헌정 개혁의 발목을 잡아선 안 된다. 정치개혁이든 권력기관 개혁이든 권력구조 개혁이든 여야가 아니라 주권자 국민이 직접 참여하고 숙의해 결정하게 하라.

국민이 헌법의 저자이고, 바로 이 주체의 정상화가 한국형 민주공화제가 완성태로 진화하는 시금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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