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존재의 가벼움’이 주는 ‘참을 수 없는’ 부력 [진옥섭 풍류로드]

한겨레 2025. 7. 24.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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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color: rgb(0, 184, 177);">16 _갓과 춤 ①</span>

전통 갓은 ‘양태’라는 차양에 ‘총모자’라는 원통을 세우고, ‘입사장’이라는 장인이 둘을 하나로 조립해 만든다. 갓의 힘은 역시 ‘존재의 가벼움’이 주는 ‘참을 수 없는’ 부력이다. 도포에 갓을 쓰면 가뿐히 뜨고, 사뿐히 나서면 이내 춤이다. 그래서 전승되는 무형유산이 부산의 ‘동래학춤’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 사자 보이즈가 등장하는 장면. 넷플릭스 제공

초상이 나면 대문 앞에 사자상(使者床)을 차렸다. 저승사자를 셋으로 생각해 짚신과 돈과 밥을 각각 셋씩 올렸다. 짚신은 먼 길 가며 갈아 신으라고, 돈은 잘 봐달라는 뇌물로, 밥은 요깃거리로. 이때 반찬은 소금이나 간장만 낸다. 짜게 먹으면 목이 말라 자주 우물을 찾기에, 끌려가던 망자가 쉬어 갈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무속신앙을 갖지 않았더라도, 엄격한 유교식 장례를 치르더라도, 떠나는 망자를 위해 으레 차리는 의례였다.

얼마 전, 장례식장에서 종친 어르신을 만났다. 우리 담양에서는 짚신 뒤축을 잘라놓았다고 했다. 역시 짚신이 자주 벗겨져 망자가 쉬어 가길 바랐던 거다. 물론 그날 장례식장에 사자상을 차린 상가는 없었다. 몇년 전엔 더러 있었지만,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탈탈 굶던 저승사자들이 살려고 몸부림쳤나 보다.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해, 소질에 맞는 악역으로 캐스팅된 것 같다.

저승사자가 방송에 출연한 것이 최근 일만은 아니다. 1970~80년대 티브이(TV) 납량 특집 시리즈의 최다 출연자가 저승사자였다. 그저 머리에 갓을 쓰고 얼굴은 흰 칠을 하여 턱밑에서 플래시를 비추는 정도였다. 그 무렵 티브이 명작극장에서 잉마르 베리만의 영화 ‘제7인의 봉인’이 방영되었다. 낫을 들고 로브를 뒤집어쓴 그네들의 저승사자 그림리퍼(Grim Reaper), 낫으로 영혼을 수확해 간다는 그들, 참으로 강렬한 이미지였다. ‘전설의 고향’에 등장한 우리네 저승사자, 솔직히 좀 남루했다.

지난달 20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애니메이션 ‘케데헌’(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우리 저승사자가 거침없이 뜨고 있다. 악령을 쫓는 주인공 헌트릭스 그룹보다 악령인 사자보이즈 그룹에 더 난리가 났다. 전통에서는 도사자가 일직사자 월직사자를 이끌어 3사자인데, 케데헌의 사자보이즈는 진우를 리더로 한 5사자다. “강렬한 카리스마와 완벽한 비주얼”, 더 이상 뭐가 필요한가. 이렇게 다 갖추고, 눈부신 눈빛으로 쳐다본다. 저것들이 실재한다면 산 사람도 저승길을 따라나설 것 같다.

이미 전 지구촌이 따라부르고 있다. 중독성 강한 오에스티(OST)로 전세계 음원차트를 석권했다. 영화 초반의 ‘소다팝’도 좋지만, 후반에 저승사자답게 공중부양하는 ‘유어 아이돌’이 최고다. 갓을 쓰고 도포 자락을 휘날리니 미동만 해도 춤이다. 갓의 차양이 일(一)자가 되면 예리한 수평으로 어둠을 가른다. 이 검은 수평선이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이 되어 지구촌을 팬덤의 블랙홀에 빠뜨린다.

국립부산국악원의 무용단원들이 동래학춤을 추고 있다. 국립부산국악원 제공

전통 갓은 ‘양태’라는 차양에 ‘총모자’라는 원통을 세우고, ‘입사장’이라는 장인이 둘을 하나로 조립해 만든다. 갓의 힘은 역시 ‘존재의 가벼움’이 주는 ‘참을 수 없는’ 부력이다. 도포에 갓을 쓰면 가뿐히 뜨고, 사뿐히 나서면 이내 춤이다. 그래서 전승되는 무형유산이 부산의 ‘동래학춤’이다.

예전 동래의 어떤 명무(名舞)가 도포에 갓을 쓰고 허튼춤을 추니, 누군가가 학이 추는 것 같다 했다 한다. 그러고 보니 정말 학 같기도 해서 학이거니 하고 추었고, 이왕이면 보다 학처럼 보이려고 학의 동태를 학습해 넣었고, 마침내 학이 되어버리자 ‘학춤’이라 불렀단다. 꿈같은 이야기인데, 사실인즉 호접몽(胡蝶夢)과 진배없다. 장자의 나비꿈처럼, 학이 선비가 되었는지 선비가 학이 되었는지, 실로 분간하기 어렵다.

행여 이 말을 의심커든, 매달 넷째 주 일요일에 부산 동래의 금강공원에 가보시라. 브라운관에서 애국가의 서막을 장식하며 을숙도를 솟아오른 새 떼가 금정산 기슭으로 내려앉고 있는 것을 발견하리라. 하얀 도포에 갓을 쓰고 너울거리다 먹이를 쪼고 다시 비상하는 몸짓. 깃털처럼 가벼운 디딤새며 매무새는 어디에도 힘들인 기색이 없다. 자연을 제 몸에 들여놓고픈 이들이 이룬 무위자연의 춤을 조망하리라.

학춤에 빠져들면, 논어의 ‘학이(學而)편’이 예사롭지 않다. ‘학이시습지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悅乎,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그런데 지금의 생태환경에서는 ‘학(鶴)이 시습지(視濕地) 불역열호(不亦悅乎)’, ‘학이 습지에서 보이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로 해석된다. 학이 습지에서 보이지 않고, 멸종위기종을 수록한 ‘레드 데이터 북’에 있기 때문이다. 논어는 학은 습지에 있어야 한다고, 학의 서식지를 파괴한 난개발과 환경오염을 경고해 온 예언서인지도 모른다. 학춤에 빠져 상상이 급발진했지만, 이미 이 땅의 여름은 폭염과 폭우 외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

전남 담양은 소읍이라 저녁 7시면 햇볕이 있어도 한밤중이다. 나는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식당을 전전한다. 혹시 불이 켜졌나 들여다보는데, 유리문에 비친 내 모습이 어슬렁거리는 저승사자다. 차라리 장례식장으로 갈까. 1만원을 넣은 봉투를 부의함에 넣고, 영정에 재배하고 상주에 일배 한 후, “망극한 일을…” 법도 있게 말하고, 문상객이 되어 태연히 한 상 받을까. 연극에 진심이었던 시절, 극단 선배들과 관계도 없는 장례식장에 들어가, 봉투 없이 절하고 배 채운 적도 있었다. 아니지, 숙소에서 햇반을 데워야지 하는데, 문이 덜컹 열린다.

주인 할머니가 “멋지네”하며 내 밀짚모자를 맞는다. 동행이 있겠거니 하고, 문을 연 건 아닐까. 시간도 늦었는데 혼자여서 더 송구하다. 내 돈 내고 사 먹는 눈칫밥을 기다리며, 쑥스러운 시선을 밀짚모자에 모은다. 내 머리 위에 머무르며 그늘을 생산하는 모자. 지금 같은 지독한 폭염에는 생존을 위해 매일 떠받들고 다녀야 한다.

미국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은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1886년)에서 갓을 “평생을 붙어 다니는 영원한 검은 후광”이라 했다. 이런 조선사람들에게 1895년 단발령이 내려졌다. 갓을 벗고 상투를 자르자 간편한 모자도 필요했다. 바로 이때 밀짚모자가 맥고모자란 이름으로 등장한다. 일본에서 서양 모자를 본떠 만들었는데, 밀짚이나 보릿대로 만들어 맥고(麥藁)모자다. 당연히 국산화가 시작되었고, 챙이 좁거나 넓어지며 유행을 탔다. 지금 모양새는 1960년대에 만들어졌고, 이후 새마을운동으로 농부 모자의 대표가 되었다.

명무 허종복은 국가무형유산 고성오광대놀이 말뚝이춤의 보유자였다. 국가무형유산 고성오광대보존회 제공

이 밀짚모자를 쓴 한 농부가 있었다. 그는 춤에 각별한 재주가 있어 늘 읍내로 춤추러 나갔다. 마침내 명무란 소리를 들었지만, 동네에서의 평판은 달랐다. 춤추느라 논을 비운 사이 잡초인 ‘피’가 눈치 없이 돋아난 것이다. 어른들은 벼 반 피 반인 그의 논을 보며 “온 만신에 피라!”며 혀를 끌끌 찼다. 결국 ‘온 만신에 피’가 그의 별명이 되었다. 후로 동네에 귀신 소문이 돌았다. 밤이면 밀짚모자 쓴 허수아비가 논의 피를 뽑고 다닌다는 거였다.

그는 명무전을 기다렸다. 마침내 열렸고 드디어 불렸는데, 춤꾼이 아닌 악사로 불렸다. 춤은 자신이 춤을 알려준 선배가 추고, 자신은 반주자로 북을 쳐야 했다. 1990년 관객이던 나는, 일생을 기다린 무대를 바라보며 춤추고픔이 소름처럼 돋는 그를 보아야 했다. 경남 고성의 명무 허종복(1930~1995), 지난달 풍류로드의 주인공이었던 이윤석의 스승이다. 사실 지난달 글에 자신의 춤 이야기가 없다고 탓할까 걱정했었다. 이미 돌아가신 분이지만, 가끔 밀짚모자를 쓰고 찾아오시기 때문이다.

지금 사자보이즈나 헌트릭스, 실체가 아닌 허상들이 실존하는 아이돌의 인기를 앞질렀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묘연해지는 것, 혹시 장자의 호접몽도 예언인가. 식당을 나오니 너무 덥다. 분명 현실이구나. 잃어버릴세라, 밀짚모자를 머리에 얹는다. 생각하니, ‘범접’의 허니제이가 만든 ‘몽경-꿈의 경계에서’의 갓도 정말 써볼 만한 갓이다.

다 못한 이야기는 뒤에 잇자.

진옥섭 | 담양군문화재단 대표이사. 초등학교 4학년 때 이소룡의 ‘당산대형’을 보고 ‘무(武)’를 알았고, 탈춤과 명무전을 통해 ‘무(舞)’에 빠져들었다. 서울놀이마당 연출로 서울굿을 발굴하면서 ‘무(巫)’에 심취했고, 초야를 돌며 기생, 무당, 광대, 한량 등 숨은 명인을 찾았다. ‘남무, 춤추는 처용아비들’, ‘여무, 허공에 그린 세월’, ‘전무후무(全舞珝舞)’를 올리며 마침내 ‘무(無)’를 깨닫게 되었다. 이 사무친 이야기를 담은 ‘노름마치’를 출간했고, 무대와 마당을 오가며 판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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