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유 금지법’ 뭐길래?···학부모들 뿔났다
36개월 이상 아이도 하루 40분 제한
국회서 '영어유치원 금지법' 발의
“평범한 집 아이만 규제·탁상행정” 성토
일각 "공교육 정상화 도움" 찬성 의견도

"유아 대상 영어 수업을 막겠다니, 이건 또 다른 형태의 교육 차별입니다. 잘사는 집 아이들은 해외 보내면 되고, 우리 같은 평범한 집 아이들만 규제에 묶이는거죠."
울산 남구에 사는 박은정(35) 씨는 최근 알려진 '영유 금지법' 발의 소식을 듣고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이른바 '영어유치권 금지법'이 국회에 제출됐다는 소식에 울산을 비롯 전국 맘카페가 들끓고 있다. 아이를 위한 법이라지만 정작 부모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탁상행정'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24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23일 강경숙 조국혁신당 의원(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등 10명이 참여한 '학원의 설립 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에 접수됐다.
이 개정안에는 생후 36개월 미만 영유아에게 영어를 포함한 교과 연계 교육을 금지하고, 36개월 이상 영유아도 하루 40분으로 교습시간을 제한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영어유치원(일명 영유)은 조기영어교육을 원하는 부모들의 수요로 인해 유아 대상 학원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영어 노출 기회가 제한적인 일반 가정에서 이 같은 '영유'는 사실상 공교육의 보완재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 교육현장의 목소리다. 때문에 이번 영유 금지법은 과도한 규제라는 주장이 커지고 있다.
영어 유치원에 5세 자녀를 보내고 있는 이모(34) 씨는 "유아를 대상으로 한 영어교육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는 이해되지만, 이를 무조건적으로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것은 부모 선택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공교육이 책임져줄 수 없는 부분을 민간이 보완하고 있는데 그걸 법으로 막겠다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옥동 학부모 최모(38) 씨는 "영유는 단순 영어교육이 아니라 놀이와 생활 속에서 언어 노출을 증가시키는 것이 핵심"이라며 "하루 40분으로 제한하면 영어유치원은 문 닫아야할 상황이고, 학부모인 나로서는 선택의 기회를 박탈당한다. 결국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집만 대안을 찾아 해외로 나가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글로벌 시대에 영어공부를 금지하는 것은 시대를 역행하는 것과 같다"라고 비판했다.
영유 금지법 소식을 전해들은 학부모들은 커뮤니티에 이 소식을 전하며 해당 법안이 통과되지 않도록 여러 의견을 내고 있는 상황이다. 해당 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들의 연락처가 맘카페, SNS를 중심으로 공유되면서 해당 의원 사무실과 휴대전화로 항의 전화가 빗발치는 것으로 전해졌다.
영유 금지법을 찬성하는 부모도 있다.
남구 신정동에 사는 한 학부모는 "이 법안이 시행되면 선행학습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유치원 시기부터 시작되는 선행학습을 금지시켜 공교육 정상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학부모는 "영유아 때 한글 공부보다 영어교육을 먼저 받으면 모국어 개념에 혼란이 생길 것"이라며 "요즘 아이들의 국어 실력이 현저히 떨어지지 않았나. 과도한 영어교육에 치중하다보니 국어 교육은 소홀해진 결과라고 본다"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은 나뉜다. 영유아 뇌 발달과 정서 발달을 위해서라도 부모와 애착형성, 놀이경험 등이 더 중요하다는 주장에는 공감하면서도 이를 과도하게 규제하는 것에 대해서는 찬반으로 갈라진다. 규제를 심하게 할 경우 교육격차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많은 상황이다.
한 유아교육 전문가는 "아이들의 성장 측면에서 과도한 교육은 발달을 해칠 측면이 있지만, 다수 영유는 이를 고려해 아이 맞춤형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라며 "나라에서 이를 금지시키면 일부 부모들은 조기유학이나 해외 온라인 프로그램 등 우회 경로를 찾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는 또 다른 격차로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울산지역 5월 기준 반일제 이상 수업을 운영하는 유아 대상 영어학원(영어유치원)은 25곳이다.
강은정 기자 kej@ius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