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들] 민원의 두 얼굴: 소통의 창구인가, 학교를 흔드는 도구인가

문나연 2025. 7. 24.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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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 사회는 '민원 공화국'이라 불릴 만큼 공공기관에 대한 민원 제기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권리로 보장된 민원이지만, 일부는 감정적 항의나 반복적인 압박, 심지어는 허위 주장으로 이어지며 공공기관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수준에 이르고 있습니다. 특히 정보공개 청구의 경우, 투명성을 위한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민원인이 특정 기관에 수십 건 이상의 자료를 요구하거나, 실무자 개인을 겨냥한 청구를 반복해 업무를 방해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단지 행정기관에 국한된 현상이 아닙니다. 가장 일선의 공공서비스 현장인 학교도 예외가 아닙니다. 오히려 학교는 민원이 직접 학생과 교사, 학부모 간 갈등으로 이어지며 교육 현장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지금 학교는 교육보다 민원 대응에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습니다. 교사는 학부모의 전화를 받으며 수업 준비 시간을 빼앗기고, 행정실은 반복되는 정보공개 청구에 시달리며 본연의 행정 업무에 집중하지 못합니다.

오늘날 학교는 더 이상 단순한 교육의 장에 머물지 않습니다. 학부모와 외부 사회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학교는 다양한 민원과 요구가 쏟아지는 사회 갈등의 전선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민원이 공익적 소통의 창구가 아닌, 특정인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학교 민원은 본래 학생들의 교육환경 개선, 교사-학부모 간 협력 증진 등 긍정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사례를 보면, "반 배정을 바꿔달라", "시험 문제를 우리 아이에게 유리하게 해달라", "담임이 조용히 하라고 말했다고 사과하라"는 식의 민원이 늘고 있습니다. 이런 과도한 요구는 교사의 교육권을 침해하고, 학교 운영의 공정성을 무너뜨립니다.

특히 반복적이고 감정적인 항의, 허위 신고, 비상식적인 요구는 학교 구성원들에게 심각한 정신적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수업 중 단호하게 지도를 했다는 이유로 공개 사과를 요구받고, 이를 거절하면 교육청과 언론에 민원이 제기되기도 합니다. 이런 악성 민원은 교사들이 병가를 내고, 심지어 교직을 떠나게 만드는 직접적 원인이 됩니다.

또한 일반 시민들의 정보공개 청구 남용 역시 학교 현장을 마비시키고 있습니다. 급식비 내역, 특정 교사의 연수 기록 등 반복적인 정보공개 청구는 교사와 행정실의 행정 부담을 가중시킵니다. 상위기관이 민원 내용을 검토하지 않은 채 학교로 떠넘기는 관행도 학교의 법적 책임을 부당하게 키우고 있습니다.

이제는 체계적인 민원 관리 시스템의 도입이 절실합니다. 지역별로 교육청이 운영하는 '통합 민원 접수 창구'를 설치하고, 모든 민원은 이 공식 시스템을 통해서만 접수되도록 해야 합니다. 교사에게 직접 연락하거나 무작위적으로 민원을 제기하는 관행을 차단하고, 모든 민원은 기록되고 추적 가능하도록 해야 합니다.

반복적·악성 민원은 시스템상에서 필터링하고, 허위 신고나 부당한 압박에 대해서는 법적 제재 조치를 가능하게 하는 '학교 보호 위원회'도 함께 운영되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학부모들에게는 교육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역할과 민원 예절에 대한 교육을 정기적으로 실시해야 합니다. 교사와 학부모 간 갈등이 발생했을 경우 이를 조정할 수 있는 공식적인 중재 시스템도 필요합니다.

학교는 아이들이 성장하고 배우는 공간입니다. 그 공간이 민원의 소음으로 가득 찬다면, 결국 가장 큰 피해자는 학생들입니다. 교사는 교육에 집중하고, 학부모는 신뢰를 바탕으로 소통하며, 학교는 공동체의 중심으로 기능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민원은 권리입니다. 그러나 그 권리는 공익적이고 합리적인 범위 안에서 행사될 때 비로소 교육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순히 민원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민원이 올바르게 작동하도록 구조를 바꾸는 것입니다.

'교사를 보호한다'는 것은 단지 교사의 권리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교육의 양질과 미래 세대의 성장을 지키는 일입니다. 이제는 학교가 다시 교육 중심의 공간이 되도록, 민원 관리 시스템과 소통 문화를 재설계해야 할 때입니다. 2030년, 우리가 바라는 건강한 교육 공동체는 민원체계가 바뀌는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문나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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