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움과 따뜻함, 붓과 칼의 대비” 해움미술관 2025 첫 기획전 ‘온, 한의 표면- 붓과 칼의 담’ [전시리뷰]

이나경 기자 2025. 7. 24.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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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지원사업인 ‘온, 한의 표면- 붓과 칼의 담’ 전시를 기획한 이해균 해움미술관 대표가 조진호 작가의 작품 앞에 서 있다. 이나경기자


전통의 소재를 현대의 기법으로 표현했을 때 그 오묘함에서 오는 쾌감이 존재한다.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새로움은 보는 이를 즐겁게 만든다.

수원시 팔달구 매산로(교동)의 ‘해움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온(溫), 한(寒)의 표면-붓과 칼의 담(談)’ 전시는 오묘한 조합이 자아내는 독창성이 보는 이를 흥미롭게 만들었다.

해움미술관의 2025 첫 기획전인 이번 전시는 최근 종료한 경기도미술관의 ‘판을 뒤집다’전에서 선보인 손기환, 조진호 두 작가의 작품을 확장했다. 경기도·수원특례시가 후원하는 ‘2025 박물관·미술관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지역과 연계해 지역민에게 문화예술 향유의 폭을 넓힌다는 의미가 있다.

이해균 해움미술관 대표가 손기환 작가의 작품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이나경기자


‘온(溫), 한(寒)의 표면-붓과 칼의 담(談)’이라는 제목처럼 전시는 손기환, 조진호 두 작가의 날카로운 칼로 표현되는 ‘판화’와 부드러운 붓으로 그려지는 ‘회화’의 조형적 예술혼을 담아냈다. 따스함과 차가움, 붓과 칼이라는 극과 극은 이야기를 나눈다. 민속적이고 민중적이며 자연적인 소재를 다루면서 동시에 가장 현대적이고 추상화된 세련함을 드러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엄청난 길이로 관람객을 맞이하는 조진호 작가의 작품 ‘觀(관)’이다. 마치 칠레의 모아이 석상과도 같은 기하학적이면서도 독특한 분위기의 얼굴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중간중간 물고기, 주전자, 꽃 등이 눈에 들어온다.

민속적인 소재를 주로 활용하는 조 작가는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을 소재로 한 작품을 많이 그렸는데, ‘觀(관)’은 전설을 간직한 절, ‘운주사’를 배경으로 한다.

운주사는 도선국사가 하룻밤 사이에 천불천탑(불상 1천 좌, 탑 1천 기)을 세웠다는 전설이 있는 고려시대의 절터이다. 그곳의 석탑들은 모양이나 무늬의 표현방식이 매우 특이하고, 탑의 표면에는 ‘X’, ‘◇’, ‘川’과 같은 기하학 무늬들이 새겨 있어 국내 미술사와 불교사 연구에 중요한 곳이기도 하다. 조진호 작가는 수많은 민중의 그 오랜 세월 기도와 바람을 들어왔을 서민들의 이야기는 기하학적이면서 추상적이고 현대적인 방식으로 표현됐다.

뒤편에 자리한 작품 ‘千年의 傳說(천년의 전설)’ 역시 운주사에 소재한 부부 와불 등을 소재로 했다. 언제 만들어졌을지 모를 미스테리한 수수께끼는 친근하면서도 외계의 세계처럼 느껴졌다.

조진호 작가의 회화 작품 ‘학살도’. 이나경기자


반면 ‘붓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처럼 조진호 작가의 또 다른 작품들은 민중적인 서사와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었다. ‘학살도’와 ‘고목’ 등의 작품은 6.25 당시 희생당한 민중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간결하고 힘찬 선은 예술이 전할 수 있는 시대상을 표현했다.

손기환의 판화는 1980년대 민중미술의 한 축에 속하는데, 다만 그의 작품 세계는 전위적인 메시지의 전달보단 보편적인 삶을 아우르는데 이번 전시에서 그는 강 건너 고향, 자신의 동네, 인간친화적인 산수 등 자연을 모티브로 담아냈다. 날카로운 칼로 후벼낸 작품이지만 그 안엔 따뜻함이 있다.

그의 작품은 팝아트에 가깝다. 전통의 소재를 담아내지만 흔하지 않은 다색판화의 색감과 구성, 한지를 입체감 있는 질감으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방식을 구현한 그의 작품들 역시 현대의 흐름인 추상성과도 맞닿아 있다.

해움미술관 2025 첫 기획전 ‘온, 한의 표면- 붓과 칼의 담’ 전시 전경. 이나경기자


전시를 기획한 이해균 해움미술관 대표는 결국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는 “따스함과 차가움은 온도의 차이로 공기 중의 입자가 이동하는 듯한 움직임을 내포한다”며 “따뜻함과 차가움은 이질적이면서도 서사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작품 하나하나에 깃든 두 작가의 정신성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며 “칼로 만든 판화에도 따뜻함이, 가장 부드러운 붓으로 표현된 회화에도 차가움이 있을 수 있듯 동시성을 전달하며 극과 극은 결국 하나로 흐른다는 희망을 이야기하고자 했다”고 덧붙였다.

해움미술관은 지역사회와 연계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마련할 계획이다. 오는 8월에는 손기환, 조진호 두 작가와 시민들이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무료로 판화 제작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될 예정이다. 전시는 9월26일까지.

이나경 기자 greennforest21@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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