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기의 처절한 여름, 당신은 없나요 폭력과 통제, 우상과의 교감에 취해가는 주인공 그 여름이 지나가고 기준은 안녕했을까
영화 ‘여름이 지나가면’ ‘여름이 지나가면’은 소도시로 이사 온 ‘기준’과 동네의 문제아 형제들 ‘영문’, ‘영준’이 도난당한 기준의 운동화를 계기로 서로의 세계를 마주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짙고 뜨겁고 촘촘한 성장영화”라는 김종관 감독의 감상평이 이 영화를 잘 설명한다.
기준의 엄마 역을 맡은 고서희 배우의 모습
농어촌 특별 전형 혜택을 받기 위해 엄마(고서희)를 따라 서울에서 낯선 소도시로 이사 온 초등학생 ‘기준’(이재준). 전학 첫 날, 학교에서 운동화를 도둑 맞은 기준은 유력한 용의자로 보이는 같은 반 문제아 ‘영준’(최우록)과, 동네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그의 형 ‘영문’(최현진)을 알게 된다. 형제와 가까워질수록 기준은 타인의 위에 군림하는 권력의 맛과 일탈의 달콤함을 점차 깨닫는다.
주인공 기준 역을 맡은 이재준
신예 장병기 감독은 자신의 장편 데뷔작인 ‘여름이 지나가면’으로 “‘우리들’의 평행선에서 ‘파수꾼’으로 향하는 작품” “한국의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등장”이라는 관객들의 평을 얻기도 했다. 그는 영화를 통해 성장기 아이들이 처한 딜레마를 조용히, 절제된 시선으로 들여다보며, 관객들이 소년의 내면을 손쉽게 파고들게 만든다.
영문(최현진) 캐릭터 스틸컷
인터뷰에서 “사랑을 배우지 못한 아이들이 사회의 구조와 계급, 돌봄의 부재를 통과하며 타인의 미움을 어떻게 소화하는지, 사회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힌 그는 담백하고 섬세하지만, 치밀한 시선으로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아이들의 세계를 차분히 따라간다.
기준은 처음엔 착실해보이는 반장 ‘석호’(정준)와 어울리지만, 자신을 폭행한 아이를 응징해준 영준·영문 형제의 카리스마에 압도되고, 자신의 신발을 훔쳐간 그들에게 게임기까지 갖다 주며 관계를 유지한 다. 그리고 서서히 그들의 그림자에 물들며 도둑질까지 하게 된다. 폭력이 주는 불편함, 통제와 권력이 주는 달콤함, 우정과 복종의 딜레마 사이에 놓인 기준은 비행 자체를 하나의 게임처럼 여기게 된다.
‘여름이 지나가면’ 영화 스틸컷
또래에만 존재하는 날것의 감정과 그 안에 분명히 존재하는 계급, 그로 인한 예민한 균열을 잘 주조해낸 영화다. 극중엔 문제아들을 위해주며 양심 있는 척하다, 그들이 자신의 아이인 기준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돌변하는 어른(엄마)도 등장한다. 아이들이 주인공이지만 궁극적으로 어른들의 세계와, 더 나아가서는 이 사회의 부 조리를 들여다보게하는 영화다.
주인공 기준은 영문(최현진(좌)), 영준(최우록) 형제와 위험한 우정을 쌓아간다.
무엇보다 아역 연기자들이 성인 배우의 내공을 뛰어넘는다. ‘기준’ 역을 맡은 배우 이재준은 ‘으라차차 내 인생’, ‘구미호뎐 1938’, ‘굿파트너’, ‘지금 거신 전화는’ 등 다양한 드라마에서 주인공의 아역을 맡은 바 있다. ‘영문’ 역을 맡은 최현진은 현 시점 가장 주목받는 아역 배우 중 하나로, 단연 ‘여름이 지나가면’의 히어로다.
‘여름이 지나가면’ 포스터
영문은 마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엄석대를 떠올리게 하는 권력의 중심으로, 생존을 위해 구축한 폭력과 비행이라는 삶의 전략을 통해 영화를 통틀어 가장 강렬한 캐릭터로 기억되게 만든다. 동생 ‘영준’ 역의 최우록, 반장 ‘석호’ 역의 정준 역시 선을 넘지 않는 현실적인 연기로 영화에 사실감을 부여한다. 누구나 유년기에 겪었던, 한번쯤 눈 돌리고 싶었던 각자의 뜨거운 여름을 기억하게 하는 영화다. 러닝타임 114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