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물 마시다 어느덧 서핑 4년 차 빠져도 좋아 다시 힘껏 밀어줄게 [행복한 시골살이]

박수진(남해 아마도책방 책방지기) 2025. 7. 24.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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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시골살이] 서핑 선생님의 하루

지난해 경험 토대로 올해도 도전
단체 강습 준비로 분주한 여름
파도 타며 기뻐하는 학생보니
초보 시절 들은 칭찬 떠올라
올해는 내가 힘 불어 넣으마

여름만 오면 꼭 챙겨입게 되는 장갑과 양말이 있다. 입은 게 아닌데도 입은 것 같고, 벗고 싶어도 벗을 수 없는. 더워죽겠는데 무슨 소리냐고? 서핑할 때마다 손발이 타서 그렇다. 전신 슈트를 입다 보면 손목과 발목의 경계에서 피부색이 확연히 달라지는 탓에 서퍼들은 그걸 까만 장갑, 까만 양말이라고 부른다. 올해도 나의 손발은 하루가 다르게 새까매지는 중이고 말이다.

어느덧 남해에서 서핑을 한 지도 4년 차. 이 정도 되면 서핑할 때는 당연히 비키니 하나 세련되게 걸치고, 살랑살랑 나비 같은 몸짓으로 보드 위를 날아다닐 줄 알았건만…. 난 여전히 서핑 기본 아이템인 전신 슈트 차림에, 누가 나를 본다면 "애걔, 저게 진짜 4년 탄 실력이라고?" 할 정도로 고만고만하다.

그래도 그간 변화가 꽤 있었다. 서핑을 좀 더 자유롭게 하고 싶어서 송정 솔바람해변 앞에 책방 분점을 냈고, '과연 내가 서핑에 관해 써도 되나?' 의문을 가지고 시작했던 에세이 <서핑, 별게 다 행복>의 저자가 되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변화로는 유일무이한 남해 서핑숍 '말라끼 서프'에서의 내 지위(?)가 다소 향상되었다는 점이겠다. 일반 손님에서 단골손님으로, 업무 보조 반(半) 스태프에서 지금은 단체 강습과 주말 스태프로. 사장님을 포함한 다른 서핑 친구들과 동고동락하며 차근차근 발전하고 있다.
서핑에 앞서 안전교육을 듣는 학생들. /박수진

여름 방학을 앞둔 6월부터 서핑숍은 한 박자 빠르게 분주해진다. 일반 체험 손님은 많지 않아도, 바다학교 지원을 받아 단체 강습을 받으려는 학생들의 방문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보물섬 바다학교는 남해군 생태환경교육 사업의 하나로, 학생들이 남해의 해양자원을 이용한 체험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2018년부터 꾸준히 이어져 오는 사업인데 서핑뿐만 아니라 수상레저, 연안 체험 등 다양한 활동이 있어 관내 학교 학생들에게 특히 인기다. 교실에서 수업할 시간에 바다 서핑이라니, 이것이야말로 자연을 곁에 두고 사는 시골 아이들만의 낭만적 특권이 아닐까. (남해 외 경남도에 있는 모든 학교가 신청할 수 있대요. 내년에도 많은 관심 부탁합니다, 선생님들!)

지난해 일일 강사 겸 보건 선생님으로 활동했던 경력을 바탕으로, 올해에는 나도 정식 운영 인원으로 합류했다. 사실 1년 전 아찔했던 기억이 있었다. 파도가 유독 컸던 어느 날, 조류를 거슬러 이동하다가 한 친구의 보드를 미처 잡아주지 못해 혼자 파도에 휩쓸리게 했던 것. 보드가 내 손에서 벗어난 순간 '뭔가 잘못되었다'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는데 나 역시 발이 바닥에 잘 닿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자칫 잘못하다간 둘 다 위험해질 수 있어서 나는 물속으로 잠수해서 파도를 보냈고, 그 친구만 장렬하게 '통돌이'(파도는 회전하는 성질이 있어서 휩쓸리면 세탁기 속 빨래처럼 파도와 함께 빙글빙글 돌게 된다)를 당했다. 보건 선생님이라면서 학생에게 약이 되는 지도는 하지 못할망정 물이나 잔뜩 먹이다니…. 다행히 그 친구는 어푸어푸하면서도 이 정도는 괜찮다며 씩씩하게 서핑을 이어갔지만, 나는 너무나 미안했고 부끄러웠다. 올해는 더욱 책임감을 둬야겠다고 느끼던 차, 군에서 시행한 사전 안전교육에서 관련 법령과 기본 인명구조 방법을 배우고, 응급처치술 실습도 하며 나름대로 역량을 키웠다.
서핑 준비를 하는 아이들. /박수진

서핑 강습의 핵심은 보드를 밀어주는 '푸시'다. 물에 가만히 서서 밀기만 하니 자칫 쉬워 보일 수 있다. 보통 강습에는 이론 설명과 푸시뿐만 아니라 안전 교육도 포함되어 있으니, 서핑이 처음이라면 꼭 받으시라고 권장하는 편이다. 그런데 어떤 부모님들은 강습을 맡기지 않고 호기롭게 보드만 빌려 자기 아이를 밀어주기도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가 미는 거 한 개도 재미없어!!!"와 같은 성화에 못 이겨 강습을 요청하러 다시 오신다는 게 포인트지만.

누군가 하는 일이 쉬워 보이면 그건 그 사람이 잘하기 때문이라고 했던가. 지난해까지 보드를 안정적으로 밀지 못해 아이들에게 짠물깨나 먹였던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파도가 오는 타이밍에 맞춰 정확하게 밀어주는 일은 생각보다 꽤 어렵다. 우선 파도를 보고 읽을 수 있는 눈, 그러니까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고, 너무 물렁물렁하거나 빠르게 깨지지도 않는 좋은 파도를 고르고, 파도가 깨지는(힘이 강해지는) 지점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거기에 강습생마다 다른 패들(팔을 젓는 동작) 속도를 고려해 보드를 파도와 같은 속도와 방향으로 맞춰서 밀어줄 수 있을 때, 비로소 보드는 힘을 받는다. 결국, 서핑을 해본 경험이 있어야 좋은 '밀대'(미는 사람을 부르는 별명)가 될 수 있다.

짧은 경험으로 '내가 잘 안다'와 '남을 잘 가르친다'의 등호가 항상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어서, 올해는 강습 방식도 조금 연구해 봤다. 지상에서 연습할 때 잘만 일어나던 아이도 바다에 들어오면 울렁이는 물결에 지레 겁을 먹는다. 이 경우에 나는 바로 푸시를 하지 않고,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상체만 일으켜 균형 잡는 연습을 다시 시킨다. 그런 다음 출발하면 안정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확률이 눈에 띄게 올라간다.
서핑을 타다 물에 빠져도 좋다. 학교 수업보단 재밌으니. /박수진

보드를 미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힘이 필요하지 않다. 파도의 흐름을 읽을 수 있으면 강습생이 패들을 할 때 그저 약간의 가속도만 붙여주면 된다. 처음에는 나도 힘으로만 밀어붙이다가, 점점 힘을 빼고 방향을 잡아주는 데 집중하니 더 많은 친구를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때때로 누군가의 첫 '테이크 오프'(보드에서 일어나는 동작)를 성공하는 일이 내가 좋은 파도를 잡는 것보다 더 기쁠 때도 있다. 파도에 몸을 맡긴 채 공기를 가르는 그 뿌듯하고 짜릿한 기분을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평소 말수가 적고, 목소리도 작은 편인 내가 바다에만 가면 왜 그리 목청이 드높아지는지. 목소리가 갈라질 때까지 "잘했어!!! 나이스!!!" "시선 정면 보고 끝까지 가!!!"를 외치며 아이들을 북돋우다 보면 2시간이 금세 지나간다.

지금까지 먹어온 물밥이 어디 가진 않았는지, 한번 해봤다고 올해는 그래도 훨씬 수월하게 강습을 진행하는 중이다. 특히 7월 둘째 주에는 무려 일주일 연속으로 단체 강습이 있었다. 적으면 20명, 많게는 40명에 가까운 학생들이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찾아왔다. 나도 남해살이 9년 차 정도 되니 어떤 학교가 방문해도 한두 명은 꼭 아는 얼굴이 있어서 신기했다. 책방 사장님과 꼬마 손님으로만 만나다가 바다에서 만나니 더 반가웠다. 그중에는 1년 전 이맘때쯤 파도에 휩쓸려 바닷물을 들이키고 갔던 그 친구도 있었다! 여전히 장난기 많고 쾌활한 이 학생는 이제 5학년에서 6학년이 되었고, 키도 훌쩍 자라 몰라볼 뻔했다.

'보여줄게 완전히 달라진 나~'를 흥얼거리면서 그 친구를 우리 조에 배정했다. 빚을 갚겠다는 마음으로 이 학생은 다른 친구들보다 조금 더 신경 써서 밀어줬다. 그리고 강습 마지막쯤, 이번에는 선생님 어땠느냐는 질문에 그토록 바라던 흡족한 답변을 얻을 수 있었다.

"선생님, 많이 발전하셨네요~!"

첫 서핑에 성공했을 때 등 뒤로 들리던 선생님의 칭찬과 휘파람 소리를 기억한다. 그 응원을 연료로 '한 번만 더 해봐야지, 한 번만 더!' 하다가 정신 차려보니 여기까지 왔다. 이제는 내가 친구들에게 그 응원을 돌려줄 차례인 듯하다. 덕분에 서핑하는 즐거움뿐만 아니라 서핑을 가르치는 즐거움도 톡톡히 맛보는 착실한 여름이다.

  / 박수진(남해 아마도책방 책방지기)

☞ 필자는  아름다운 섬 남해를 닮고 싶은 작은 서점, 아마도책방을 운영한다. 반려묘 바람, 노을, 별, 달과 함께 남해에서 어느덧 아홉 번째 해를 맞고 있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