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여행의 백미는 역사문화유적에 감춰진 의미를 찾아보는 일일 것이다. 산처럼 높게 치솟은 고분과 돌탑, 첨성대, 동궁과 월지, 남산자락에 아늑히 자리한 전설의 고향 한 소절을 들려주는 서출지와 같은 문화유적들이 걸음마다 만나게 될 정도로 즐비하다. 특히 경주 시가지 중심에 자리한 김유신 장군의 이야기가 남아있는 재매정과 천관사지, 요석공주와 원효의 사랑 이야기를 전하는 요석궁, 신라 최고 전성기를 맞은 경덕왕이 백성들의 사랑을 노래한 월정교는 형형색색 복원 부활해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또 조선시대 12대 300여년이나 부자로 백성과 나라 사랑을 실천했던 최부자의 전설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교촌홍보관도 경주여행의 핫플레이스다.
김유신 장군이 전쟁터로 나아가며 마상에서 물을 마신 우물 재매정 유적.
◆김유신의 사랑
김유신 장군은 가야 출신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신라 귀족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삼국통일을 기획하고 완성한 최고의 일등공신이다. 김유신은 신라 최초로 최고의 관등 태대각간에 제수되기도 했지만 죽어서도 그의 공을 높이 평가한 흥덕왕이 흥무대왕으로 추서해 지금도 '흥무전'을 세우고 향사를 잇고 있다. 영웅 김유신 장군의 사랑이 담긴 흔적은 재매정과 천관사지에 서려있다.
-천관사지: 김유신이 화랑으로 넘쳐나는 끼와 힘을 가누지 못하고 천방지축으로 치달을 당시 천관녀와 사랑에 빠졌다. 이때 유신의 어머니 만명부인이 입신양명을 위해 촌음을 아껴써야 할 때라며 따끔하게 충고를 했다. 유신은 정신을 가다듬고 효도하는 충신이 되리라 맹세하고, 사랑하는 그녀 앞에서 말의 목을 베는 결기를 보였다. 이로써 용맹정진한 김유신은 김춘추를 왕으로 추대하고, 당나라와 힘을 합해 삼국을 통일하고, 다시 간섭하는 당나라군을 축출해 기어이 삼국통일을 이룩했다. 그리고 첫사랑 천관녀를 찾아갔지만 그녀는 없고 거미줄 가득한 빈집만 덩그러니 영웅을 맞이했다. 유신은 옛날을 회고하며 그 자리에 첫사랑을 그리며 천관사를 지었다. 전설 같은 아픈 사랑의 터에 당시의 흔적을 짜집기 복원한 천관사지 삼층석탑이 이형석탑으로 덩그러니 빈터를 지키고 있다. 우물터와 건물들의 터는 주춧돌을 남겨 과거 일들을 상기시키고 있다. 천관사지는 재매정과 월성 맞은편 남산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신라시대 요석공주가 기거했던 요석궁이 있었던 곳의 교촌마을 풍경.
-재매정: 김유신 장군은 지략이 뛰어날 뿐 아니라 감히 흉내를 낼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무력을 지녔다. 단석산에서 입산수도해 신령으로부터 하사받은 보검으로 단단한 청석을 한칼에 베어버릴 정도의 신력을 갖추었다. 이러한 장군이 백제군사들의 침략을 물리치고 당당히 환궁해 여왕에게 승전을 보고하는 자리, 또 다시 백제군의 침략 정보가 날아들었다. 할 수 없이 여왕의 명을 받은 장군이 말머리를 돌려 전장으로 달려나갔다. 집 앞을 지나치던 장군이 말에서 내리지도 않은 채 병사에게 "우리 집의 물이라도 한 사발 가져오라"고 하여 마상에서 물을 마시고는 "우리 집 물맛은 여전하구나"라며 전진을 명해 병사들이 사기를 북돋우어 승리했다. 당시 김유신 장군 댁의 우물이 재매정이다. 지금도 당시 우물 재매정이 사적지로 보존관리되고 있다.
원효대사가 요석공주를 만나기 위해 건넜다는 유교가 있었던 곳.
◆원효의 사랑
요석궁과 유교: 원효대사는 걸출한 외모와 타고난 신력, 일반인보다 훨씬 뛰어난 신체적 조건을 갖추고 후덕한 인품까지 겸비해 뭇 여인들의 시선을 집중적으로 받고 있었다. 그러나 전장에서 전우를 잃은 데 이어 어머니의 상을 당하고, 삶에 대한 깊은 고뇌에 빠져 승려의 길을 걸었다. 원효는 스스로 깨우친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깨달음의 비밀을 많은 백성들에게 전파하기 위한 방법을 생각하다 나라의 재정적인 힘을 빌리기로 했다. 이때 무열왕도 왕좌에 올라 통치이념을 정립할 인재를 찾고 있었다. 두 사람의 뜻이 일맥상통하여 매개체로 혼자가 된 요석공주를 등장시켰다. "누가 자루 빠진 도끼를 빌려준다면, 나라를 떠받칠 기둥을 세울 텐데..."라는 원효가 던진 메시지의 뜻을 알아차린 무열왕이 그를 요석궁으로 초대했다. 초대를 받은 원효가 유교를 건너면서 풍덩 문천에 빠져 요석궁에서 옷을 말리며 요석공주와의 사랑을 이루었다. 이후 원효는 분황사에서 수백 권의 책을 쓰고, 황룡사에서 백고강좌를 여는 등으로 백성들의 마음에 평화를 심어주는 씨앗을 뿌렸다. 그리고 설총이라는 걸출한 인재를 낳아 세상의 기둥으로 길렀다. 원효와 요석공주의 사랑이 잉태하고, 설총이 세계적인 학자로 성장한 교촌마을은 요석궁이 위치했던 곳으로 전하고 있다.
경덕왕이 현인들을 만났던 곳으로 전하는 월정교 전경.
◆경덕왕의 사랑
신라 35대 경덕왕은 신라 최고의 전성기를 이루었던 왕으로 불국사와 석굴암, 월정교, 성덕대왕신종 등의 지금도 제대로 만들기 어려운 과학과 뛰어난 예술이 녹아있는 작품을 만들어 대대손손 수천 년을 이어오고 있다. 경덕왕은 나라와 백성들에 대한 사랑이 아주 특별하게 많았던 군주다. 나라를 부유하고, 안정적으로 경영하기 위해 신충, 표훈대덕, 경흥국사, 충담사, 월명사 등등의 인재들을 주변에 두고 끊임없이 충언을 요청하고 실천에 옮기려 노력했다.
-월정교: 경덕왕은 월성에서 남산으로 이어지는 월정교와 일정교를 놓게 했다. 그리고 월정교의 교각 문루에서 성현들과의 문답을 통해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구하곤 했다. 하루는 월정교 누각에서 충담스님을 초청하고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는 방안을 물었다. 왕은 충담으로부터 "임금은 어버이요....(중략)...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백성은 백성답게 처신할 때 나라가 평안할 것"이라는 답을 얻었다.
그 월정교는 토함산과 남산에서 형산강 서천으로 흐르는 남천을 가로질러 백성들이 사는 삶의 터전으로 이어지는 누각을 가진 목교였다. 이 다리를 지탱하는 교각을 받치던 기초석은 천년이 지나도록 물 속에서 그대로 남아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고고학자들의 고증을 통해 월정교를 복원했다. 최근 복원된 월정교는 특히 야간 조명으로 문천에 데칼코마니를 형성해 포토존 명소로 알려지면서 핫플레이스가 되고 있다. 형형색색 천연색으로 화려한 물너울에 춤추는 외형적인 아름다움에 더해 경덕왕의 백성과 나라 사랑하는 마음도 유유히 흐르고 있다.
12대 300여년 만석군을 유지했던 교촌마을의 최부자 고택.
◆최부자의 사랑
-최부자 고택: 경주 교촌마을은 향교가 있는 마을이어서 이름지어진 마을이다. 신라시대 요석궁이 있었던 역사적인 자리이자, 경주향교는 신문왕 때 국학의 터라고도 전하는 유서깊은 곳으로 보물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이 마을 가운데 조선시대 최진립 장군으로부터 12대 300여년 동안 부자로 이어오던 세계적인 기록을 남긴 유서깊은 최부자 고택이 자리하고 있다.
유사 이래 찾아보기 어려운 12대 300년 부자의 전통은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의 벼슬은 하지마라/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흉년기에는 땅을 늘리지 말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주변 100리 안에는 굶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 시집 온 며느리는 3년간 무명옷을 입혀라' 등의 여섯 가지 행동지침인 '육훈'을 실천했기 때문으로 풀이한다. 최부자의 육훈은 단순한 지침으로 그쳤던 것이 아니라 실천항목이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문서가 대거 발견되면서 관심을 끌었다.
최부자댁 창고에서 발견된 문서에는 국채보상운동의 선봉이 되었던 11대 최현식, "나라가 없으면 부자도 없다"면서 독립운동에 가산을 몽땅 털어넣었던 12대 최준, 최완, 최순 형제의 기록들이 보물처럼 빼곡하게 기록돼 있다. 이러한 최부자댁의 나라와 백성들을 사랑하는 정신은 월정교 서쪽에 설치된 최부자홍보관에서 기록과 영상으로도 만나볼 수 있다.
신라시대 국학이 있었던 곳으로 전하는 경주향교 대성전.
◆경주향교
경주향교는 교촌마을의 대표적인 시설물이다. 경상북도에서 가장 큰 향교로 보물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신라시대인 682년 신문왕이 국학을 설치한 곳으로 고려시대에는 향학, 조선시대에 향교로 이어져온 유서 깊은 곳이다. 경주향교는 일반적으로 전해오는 향교와 다르게 전묘후학의 특이한 구조를 하고 있다. 향교는 보물 대성전과 전사청을 중건하고 명륜당, 동무, 서무, 전사청, 내신문 등의 구조로 공자를 비롯한 5성, 송조 2현, 우리나라 18현 등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경주향교에는 후문 앞에 신라시대부터 사용하던 돌우물이 그대로 남아있다. 또 동쪽으로 계림과 월성, 첨성대로 이어지는 동부사적지와 연접해 있고, 식당과 카페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관광객들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이 글은 역사문화도시 경주를 소개하기 위해 스토리텔링을 가미해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