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마디 뒤틀리는 고통에도 행복을 그린 화가가 진정 거장 아니겠소”
르누아르 아름다운 작품 보며 관람객에게 설명해준 철수 씨
현실 괴리 작가 아니냐고 묻는 한 청년의 말에 당황하는데...
※이 글은 현직 의사이자 작가인 김창업 삼성창원병원 내과 교수가 의료정보를 보다 쉽게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화가인 철수 씨와 의사인 김 선생을 주인공으로 쓴 소설입니다.
주말 세별 미술관은 많은 사람으로 북적인다. 미술관 건물 외벽에는 집채 크기의 〈거장 르누아르 전〉펼침막이 걸렸다. 철수 씨는 평소와 다르다. 유럽 여행에서 방금 돌아와 그 문화를 듬뿍 머금은 듯 유럽 정취 뚝뚝 떨어지는 트랜디한 의상을 입고 있다. 창이 짧은 페도라(중절모)에 살짝 광택 있는 파스텔톤의 여름 파란 하늘색 셔츠라든지 전체적 차림이 오래된 유화에서 풍기는 오일 향과 어우러져 우아해 보인다. 표정마저 행복해 보인다.
"안녕하세요? 세별 미술관에서 주최하는 거장 르누아르 전에서 여러분 작품 감상을 도와드릴 도슨트입니다."
철수 씨 음성이 허리춤에 달린 작은 라디오 모양 스피커를 통해 주위로 퍼지자 제각각 흩어져 관람하던 관객들이 모여든다.
◇르누아르 작품 앞에서
철수 씨와 비슷한 검은 페도라를 쓴 정장 차림의 백발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흰장갑 낀 두 손을 그 위에 얹은 채 가장 앞에서 설명을 듣는다.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여학생도 발랄한 발레 드레스 같은 원피스를 입고 한 손으로 아빠 손 끝자락을 꼭 쥐고 있다. 사람들 뒤쪽엔 체격 있는 젊은 남성이 팔짱 낀 채 철수 씨를 응시하는데 그의 팔등엔 알파벳 문신 'PEACE'가 조그맣게 새겨져 있다. 다양한 연령대와 균형 있는 성비의 관객이 모이자 철수 씨는 도슨트가 된 자신이 새삼 자랑스럽다. 작품을 등지고 선 그는 사람들의 시선을 훑으며 일일이 눈도장을 찍는다. 초대 받은 뚱이와 김 선생도 관객 사이에서 철수 씨의 상기된 설명을 듣는 중이다.
"우선 간단히 제 소개를 드리면 저는 서양화와 서양 미술사를 전공하고 주로 유화를 그립니다. 전시도 하고 미술 관련 책도 쓰고 있습니다. 설명하는 동안 궁금한 점은 따로 질문 시간을 드릴 테니 그때 하시면 됩니다. 중간중간 드리는 깜짝 퀴즈를 맞히는 분께는 작지만 귀여운 선물을 드릴 예정이니 재밌게 참여하시면 좋겠습니다. 아무쪼록 부족할지라도 제 설명이 여러분 작품 감상에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철수 씨 말이 끝나자마자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손을 번쩍 든다. 어리둥절한 철수 씨가 아이를 본다.
"벌써 질문 있으세요?"
"저는 복장초등학교 3학년 이진리입니다. 도슨트가 뭐예요?"
"이진리 학생 참 좋은 질문이에요. 도슨트는 원래 '가르치다'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말이에요.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관람객에게 그림이나 작품 설명하는 사람을 도슨트라 부르죠. 그러니까 전시물에 대해 전문 지식을 갖춘 안내자라 생각하시면 쉽습니다. 도슨트와 큐레이터가 헷갈리는 분 많으실 텐데 큐레이터는 '돌보다'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말로 전시를 기획하고 거의 모든 과정에 참여해 종료 때까지 책임지는 사람을 말해요. 학예연구사라고 부르기도 하죠. 그래서 큐레이터 되기가 훨씬 힘들어요!"
철수 씨는 아이에게 막대 사탕을 건네며 웃어준다. 그렇게 주의를 집중시킨 그는 아주 커다란 그림 쪽으로 이동한다.
진리가 조그맣게 외친다.
"와, 크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 몇몇도 고개를 끄덕였다.
"보시다시피 이 그림 크기는 131×175㎝로 아주 큽니다. 작품 제목은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입니다. 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고 있죠."
철수 씨는 천천히 관람객의 표정을 살핀다.
"여러분, 이 작품 보시면서 어떤 감정이 느껴지시나요?" 곧장 진리가 손들며 말했다. "기분 좋아져요!" "맞아요, 기분이 좋아지시죠?" 철수 씨가 진리를 향해 웃어 보인다.
"저는 슬픕니다."
페도라 쓴 노인이 둔탁한 어투로 말했다. 의외의 답변에 조금 어리둥절한 철수 씨가 노인을 바라본다.
"슬프시다구요? 그렇게도 느껴지시는군요."
노인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 그림은 1876년 르누아르가 완성해 1877년 인상주의 화가들의 세 번째 전시회에 선보인 작품입니다. 제목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에서 물랭은 프랑스어로 풍차, 갈레트는 빵의 한 종류라고 해요. 17세기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르 언덕 아래 풍차가 있었고, 그곳에서 곡식을 빻아 빵 만들던 곳 이름이 물랭 드 라 갈레트라는 곳이구요. 몽마르트르 언덕 아래 있는 마을입니다."
철수 씨는 수시로 관람객 반응을 살피며 설명 속도를 조절한다.
"당시 몽마르트르 언덕 주변은 요즘 말로 핫플이랄까요? 젊은이들이 쌍쌍이 모여 춤추고 대화하고 사랑하며 어울리던 곳이었죠. 왜 르누아르는 저 그림을 그렸을까요?"
철수 씨가 관람객을 빙 둘러본 뒤 말을 잇는다.
"이 작품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냐고 아까 질문했었죠? 그게 바로 르누아르가 이 그림을 그린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일 겁니다. 르누아르 그림은 한 단어로 표현하면 '행복'일 겁니다. 르누아르는 행복을 그린 화가죠. 하지만 그의 인생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돈을 벌어야 했고, 12~13세 때부터 도자기 공방에 취직해 도자기에 그림 그리는 일을 해야 했죠. 다행히 그림 재능이 어릴 때부터 빛을 발해 일하면서도 데생을 배우고 미술관에서 좋은 작품 감상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지금의 미술학원 같은 곳에서 그림을 배우고 그리게 되는데, 그곳이 샤를 글레르의 화실입니다. 르누아르는 그 화실에서 모네, 바지유, 스슬레 같은 친구이자 동료를 만나죠. 이들은 서로 교류하며 많은 영향을 주고받는데 그들이 주도하고 참여한 화풍이 바로 인상주의입니다. 지금 여러분 앞에 있는 이 커다란 그림이 바로 인상주의 화가들의 세 번째 전시회에 걸렸던 작품입니다. 당시 파리 몽마르트르의 무도회 장면을 그린 이 작품은 일요일에 무도회장에서 파리의 노동자들이 예쁘게 옷 차려입고 남녀가 함께 먹고 마시고 춤 추는 행복한 순간을 오후 햇살과 함께 마치 스냅사진처럼 순간을 포착한 듯 표현했죠. 르누아르는 인상주의 화가 중에서도 그림의 선이 두드러지지 않고 색을 번지듯 부드럽게 표현해 그림이 더 화사하고 따뜻합니다. 특히 여성의 몸을 부드럽고 우아하며 따뜻하게 표현한 작품을 많이 그렸죠. 르누아르 화풍은 인상주의에 그치지 않았고 자신의 인상주의 화풍에 한계를 느낀 뒤 1881년 이탈리아 여행 중 라파엘로 작품에 감탄하여 기존의 인상주의 화풍에 고전주의 화풍을 더한 자신만의 화풍으로 발전시켜 나갑니다."

◇페도라 노인의 고백
긴 설명에 관람객이 지치진 않았는지 확인한 철수 씨가 환하게 웃으며 말을 잇는다.
"자! 여기서 퀴즈 나갑니다!"
퀴즈라는 단어를 듣자 지루해서 두 다리를 꼬고 몸을 뒤틀던 진리가 차렷 자세를 하며 손을 번쩍 든다.
"저요!"
모두가 일제히 진리를 본다.
"예, 이진리 학생?"
"질문이 뭐예요?"
진리가 진지하게 묻자 주변으로 르누아르의 작품처럼 행복이 피어오른다.
"진리는 의욕이 넘치는군요! 그 적극적인 자세 좋아요! 장차 아주 큰 인물이 되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막대 사탕을 또 드리죠!"
진리에게 사탕을 건네자 몇몇 사람은 박수도 보내준다.
"질문은! 바로 르누아르가 50세 전후로 앓게 된 질병은 무엇일까 입니다."
웃던 사람들이 질병이란 단어에 조용해진다. 내내 무표정하게 있던 노인이 조용히 한마디를 툭 던진다.
"류마티스 관절염이요."
철수 씨가 노인을 향해 환하게 웃는다.
"오! 정답입니다! 어려운 질문이었는데 바로 맞히시다니! 놀랍습니다! 제가 뜬금없이 류마티스 관절염을 말씀드린 건 그 질병이 르누아르 인생에 많은 변화를 불러왔기 때문입니다. 르누아르는 50세 전후로 류마티스 관절염이 발병하는데, 이 병이 많이 아픈가 봐요. 아픈 것도 아픈 것이지만 관절이 뒤틀리고 변형이 오는데, 특히 손가락 관절의 변형이 심각하답니다. 그런 류마티스 관절염이 르누아르에게 온 거죠.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조용한 관객을 보며 철수 씨는 말을 잇는다.
"당시엔 지금처럼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제가 거의 없었던지 르누아르는 고통 속에서도 매일 그림을 그려나갑니다. 오히려 발병 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그림을 그려서 어떻게 보면 집착에 가까워 보였죠. 유명한 일화는, 한 날 르누아르를 찾아온 지인이 물어요. 어찌 그리 아픈데도 고통을 참고 그림을 그리느냐고요. 그때 르누아르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고통은 지나가지만 아름다움은 남기 때문이라네.' 그렇습니다. 르누아르의 류마티스 관절염 통증은 그와 함께 떠났지만 그가 남긴 작품의 아름다움은 아직 우리 곁에 남아 우리에게 행복을 주고 있죠."
철수 씨가 말하는 동안 페도라 노인의 눈시울이 붉어졌고, 관람객들도 저마다 뭉클함을 느끼고 있다. 그때 뒤에서 팔짱 낀 채 지켜보던 젊은 문신 남성이 말했다.
"질문이요!"
"예, 하십시오!"
"저는 한때 르누아르 작품을 좋아했던 미대생인데요. 2015년 미국 보스턴 미술관 앞에서 맥스 겔러와 그 추종자들이 시위를 했어요. 맥스 겔러는 르누아르 작품은 지나치게 감성적이고 내용이 없으며 형편없다고 비판하며 미국 국립 미술관에서 르누아르 작품을 제거해달라는 청원을 냈어요. 그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은 철수 씨는 오른손 검지로 정수리를 긁적였다.
"에, 그건."
철수 씨가 말을 잇지 못하자 페도라 노인이 천천히 뒤돌아서며 젊은 남성을 본다.
"그것은 내가 말해도 되겠소?"
엉겁결에 철수 씨가 대답했다.
"예, 예."
"그건 르누아르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의 말이요. 무지에서 나온 어처구니없는 궤변이지. 그건 상당한 모독입니다."
말을 잇는 노인의 목소리가 점점 떨렸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턱대고 과거 훌륭한 업적을 남긴 사람에게 모욕을 주다니. 이봐요, 젊은이.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시나?"
"아까 말씀드렸지만, 저는 르누아르 작품을 좋아했던 사람입니다. 아마 제가 미대 간 것도 르누아르 영향이겠죠? 그런데 한참 르누아르에 심취해 그의 작품을 찾아다니며 배우다가 그 일로 혼란스러웠어요. 저도 성인이 돼보니 삶은 아름답지만은 않았어요. 오히려 모순과 억울함 투성이던데, 그게 현실이었어요. 그런데 르누아르는 평생 아름다움과 행복한 표정만 그렸잖아요. 세상은 행복하지 않은데 어떻게 작품만 행복할 수 있겠어요? 그건 모순 아닐까요. 그런 모순을 그린 작가를 대가라 할 수 있나요? 어떻게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고 할 수 있는지…."
문신 젊은이의 목소리도 흔들렸으나 또박또박 정중함을 잃지 않고 말했다. 철수 씨가 혼잣말을 한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기지?'
노인은 문신 젊은이를 주시하다 슬그머니 오른손에 끼었던 흰장갑을 벗었다. 순간 관객이 술렁이고 놀란 탄성을 지르기도 했다. 페도라 노인은 한 손으로 지팡이를 잡고 장갑 벗은 손을 천천히 위로 뻗었다. 주위가 조용해졌다.
◇김 선생의 설명
"49세에 이 병이 시작됐소. 르누아르가 앓던 병이요. 류마티스 관절염. 지금 내가 여든 넘었으니, 병과 30년을 더 함께 하고 있소. 요즘 약은 좋다는데 그때만 해도 요즘처럼 좋지 못했소. 난 매일 고통 속에 살았소. 처음엔 양 손가락 마디가 뻑뻑하고 붓더니 1년 채 되지 않아 관절이 이렇게 변형되기 시작했소. 내 얘길 해서 미안합니다만 난 평생 고등학교에서 윤리를 가르친 선생이었소. 병이 생긴 뒤론 아침만 되면 손가락을 포함해 온몸 여러 관절이 뻣뻣하고 아파 뭘 하든 계속 움직여야 덜아팠소. 칠판에 분필로 판서하면 손가락이 좀 덜 아팠지. 그래서 난 평생 일할 팔자구나, 생각했소. 내가 적극적으로 고쳐보기도 전에 손이 이렇게 변형되기 시작했단 말이요. 젊은 양반, 르누아르는 손이 이 지경인데도 계속 그림을 그렸소. 르누아르가 고통 속에서 그린 그림 속에서 고통을 찾을 수 없다고 그가 거장이 아니라면 그건 이 병과 르누아르 진심을 몰라서 그런 것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소."
말을 마친 노인은 벗었던 장갑을 다시 끼었다. 주위는 숙연해졌고 누구도 반박하지 못했다. 노인에게 집중했던 철수 씨가 문득 김 선생과 눈이 마주친다. 순간 뇌리에 희망의 번개가 꽂혔다.
"예, 병은 아파본 사람만 정확히 알 수 있죠. 그런데 지금 이 자리에 그 병에 대해 설명해 주실 분이 계십니다."
철수 씨는 김 선생 쪽으로 손을 뻗는다.
"세별병원 내과 교수로 계시는 김 선생님을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앞으로 나오시죠!"
김 선생은 사뭇 진지한 분위기를 거스르지 못해 앞으로 나선다.
"안녕하십니까? 김 선생입니다. 오늘 도슨트 철수 씨 설명과 여러분의 진중한 토론 잘 듣고 저도 배운 바가 많습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철수 씨가 끼어든다.
"김 선생님 류마티스 관절염에 대해 설명해 주시겠어요?"
"네, 우선 류마티스 질환은 자가면역 질환 즉, 자기의 면역이 오히려 자신을 해치는 것입니다. 관절이나 피부 그 외 여러 장기에 자신의 면역 체계로부터 공격받을 수 있는데요. 특히 자신의 면역 시스템이 '관절'을 공격하는 질환이 류마티스 관절염이라 생각하면 쉽습니다."
김 선생은 집중하는 관람객들 눈높이에 맞는 설명을 하려고 잠시 반응을 본 뒤 말을 잇는다. "류마티스 관절염 진단은 단일한 검사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환자의 임상 증상, 신체 진찰 소견, 혈액 검사 그리고 영상 검사 등의 소견을 종합해서 의사의 판단하에 진단이 이루어집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관절 소견입니다. 특히 작은 관절인 손가락 관절이 몇 개가 침범되었냐가 진단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혈액 검사에서는 류마티스 인자와 항CCP항체 그리고 염증 수치가 진단에 반영되며 질병의 기간이 6주 이상인지 미만인지도 중요합니다."
모두가 눈을 반짝이며 김 선생의 설명을 듣는다.
"류마티스 관절염은 증상이 중요합니다. 몸의 면역은 염증 상태에도 관여하고 손상된 세포의 재생에도 관여하는데, 관절이 쉬고 있을 때 손상된 관절 세포를 재생시켜 줘야 하지만 류마티스 관절염 환자의 관절에는 재생 대신 공격을 합니다. 류마티스 관절은 밤에 자면서 쉬는 동안 관절이 자가 면역에 의해 공격당해 아침에 일어나면 밤 동안 일어난 공격의 결과로 관절이 붓고 뻣뻣해지며 열도 나게 되는 겁니다. 이것을 아침에 관절이 굳는다고 하여 조조강직이라 부릅니다. 흔히 골관절염과의 구분이 중요한데요. 골관절염은 자가 면역이 원인이 아니라 장기간의 과도한 관절의 물리적 사용이 원인입니다. 증상 또한 서로 달라서 조조강직이 지속되는 시간이 류마티스 관절염 경우 일반적으로 4시간에서 6시간 정도이고, 골관절염은 1시간 이내가 흔합니다. 만약 조조강직이 1시간 이상 지속된다면 병원에 내원하셔 검사받아 보실 것을 권합니다."
노인이 김 선생에게 질문한다.
"저는 49세에 진단받고 1년도 안 되어 관절 변형이 왔는데 원래 그렇게 빨리 진행하는 건가요?"
"최근엔 염증의 진행을 억제해 관절 변형을 지연시키는 치료제가 많이 있습니다만, 선생님이 진단받으시던 땐 그렇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안타깝게도 류마티스 관절염은 경우에 따라선 진행이 매우 빨라 선생님처럼 발병 후 1년 이내에도 변형이 진행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치료 목표가 하나는 아프지 않도록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관절의 변형을 지연시키고 방지하는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오늘 좋은 도슨트 두 분을 뵈었네요."
"건강상 문제라면 언제 어디서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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