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발칵 뒤집은 ‘붉은 언니’ 사건...피해자들은 왜 속아 넘어갔나
SNS서 불법촬영본 일파만파… 신상 털이도
사건이 ‘밈’으로 소비돼 2차 창작물까지 번져
중국 난징(南京)에서 발생한 일명 ‘붉은 언니(红姐·홍제)' 사건이 틱톡과 웨이보(微博) 등 소셜미디어(SNS)를 중심으로 일파만파 퍼지면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여성으로 변장한 30대 남성이 온라인 채팅을 통해 접근한 남성들을 집으로 유인해 성관계를 맺은 뒤 이를 불법 촬영해 유포한 이 사건은 영상물에 등장하는 남성들에 대한 네티즌들의 무분별한 신상 캐기로 인해 2차 피해를 양산하고 있다. 또한 과도한 물질주의와 각박한 사회 세태로 인해 진실한 인간 관계를 맺기 어려워지면서 정서적 공허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증가한 것이 이 사건의 배경 가운데 하나라는 분석도 나온다.
24일 중국 난징 공안국에 따르면 붉은 언니 사건 용의자는 38세 남성 자오(焦)모씨로, 총 237명의 남성이 자오로 인해 불법촬영 피해를 입었다. 경찰은 추가 피해자가 있는지 조사 중이다. 당초 온라인에선 그가 60대 남성이며 피해자 수가 17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당국은 이를 과장된 수치라고 밝혔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큰 덩치와 남성적인 얼굴을 한 그가 자신을 여성으로 속일 수 있었던 건 ‘필터 카메라’와 음성 변조였다. 그는 긴 머리 가발을 쓰고 짙은 화장, 긴 치마 복장에 실시간으로 얼굴을 보정하는 영상 효과를 씌운 뒤 목소리를 변조해 여성으로 탈바꿈했다. 붉은 화장을 트레이드마크처럼 내세웠던 그는 스스로를 ‘홍제(붉은 언니)’라고 불렀는데, 그가 남성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뒤 현재 네티즌들은 그를 ‘홍라오터우(红老头·붉은 아저씨)’로 부르고 있다.
대만 시사잡지 원견에 따르면, 그는 SNS에서 실시간 방송 또는 쪽지로 남성들에게 접근해 친분을 맺었다. 대화가 깊어지면 금전적 대가 없는 성관계를 제안해 남성들을 난징의 자택으로 유인했다. 이후 그들과 성관계를 맺으면서 모든 과정을 불법 촬영했고 영상을 유료 포르노 사이트에 올려 수익을 챙겼다.
그가 유포한 영상들은 일파만파 퍼지고 있다. 중국 현지 지방 매체 지무신문에 따르면 영상은 SNS 등에서 개당 0.5~3위안에 판매되고 있으며, 트래픽을 유도하기 위해 무료로 영상을 유포하는 사이트도 생겨나고 있다.
영상이 퍼지면서 피해 남성들의 신원이 특정돼 ‘사회적 죽음’에 이르는 사례도 생겨나고 있다. 한 25세 남성은 최근 SNS에서 자신이 불법촬영 사건의 피해자가 맞다고 인정하며 “수많은 메시지 때문에 모든 것을 자백하기로 했으며, 삶이 엉망진창이 됐다. 난징을 떠나 다른 도시로 이사하려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자신이 몰래 촬영된 사진과 영상을 유포하는 행위를 멈춰달라고 호소했다.
SNS에서는 영상에 등장하는 또 다른 남성의 개인정보와 함께, 그가 3년 동안 사귄 여자친구가 있으며 결혼을 앞두고 상견례까지 마친 상태였으나, 영상이 공개된 뒤 파혼을 당했다는 이야기까지 오갔다. 피해 남성들에 대한 과도한 ‘신상 털기’가 이어지자 중국 매체들은 해당 영상을 유포하는 행위는 명백한 불법으로, 적발 시 처벌 받을 수 있다는 보도를 내놓고 있다.

또 네티즌 사이에서 영상 속 남성들에게 조롱의 의미가 담긴 별명을 붙여 밈(meme·인터넷 유행)으로 소비하거나, 남성들이 선물을 들고 홍제의 집을 찾아온 모습, 홍제와 대화하거나 실랑이 하는 등 장면을 패러디하는 행위가 번지면서 사건의 2차 창작물들이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중화권 언론에서는 붉은 언니 사건이 중국 사회의 여러가지 고질적 문제점을 들췄다는 분석이나온다. 우선 왜곡된 성 욕구에 대한 비판이다. 영상에 등장한 한 남성은 홍제가 사실은 남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음에도 “기왕 왔으니(来都来了)”라며 관계를 했고, 그의 한 마디는 온라인에서 밈으로 번졌다. 이 밈은 무언가 옳지 않을 일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미 지불한 시간이나 비용을 낭비할 수 없어 그냥 하던 일을 계속한다는 맥락으로 유행어가 됐다.
홍제의 다정하고 착한 연기가 남성들을 유인한 점은 과도한 물질 주의에 기반을 둔 요즘 중국의 남녀 관계 세태로 인해 많은 남성들이 정신적 공허함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홍콩 매체 홍콩01은 전문가를 인용해 “자오씨는 부드럽고 온화한 태도로 상대를 적극적으로 치켜세워, 남성들은 대접을 받는 듯한 행복을 느꼈을 것”이라며 “상호작용을 통해 남성의 심리적, 정신적 욕구를 충족시켜 경계를 허물었다”고 했다. 중국 선전(深圳) 위성 방송의 평론가 루즈하오(路子豪)는 “홍제는 어머니같은 따뜻함과 무조건적인 수용, 여기에 무료라는 포장을 더해 제 행동의 불법성을 희석했다”며 “이 왜곡된 정서적 가치에 취한 피해 남성들은 그가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에도 타협을 택했다”고 논평했다.
피해자들에게 2차 가해가 된 온라인 사생활 캐기 문화 역시 문제점으로 꼽힌다. 지무뉴스는 논평에서 “해당 사건은 사회가 깊이 반성해야 할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이 기이한 소동 속에서 거짓을 만들어낸 자, 유포한 자, 그리고 플랫폼은 어떤 역할을 했는가”라고 꼬집으며 “어떻게 해야 가상 신분이 악의가 자라는 온상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지, 무고한 이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지 등은 모두 디지털 시대 도덕성과 사회 안전을 돌아보게 만드는 중대한 이슈”라고 했다.
한편 홍제는 음란물 유포 혐의로 지난 5일 구속돼 조사받고 있다. 시나뉴스에 따르면, 자신의 성병 감염 사실을 알면서도 고의로 성관계를 맺은 사실이 인정되고 감염으로 인해 피해자가 사망할 경우, 가해자는 공공안전을 위협한 혐의로 기소돼 최대 사형까지 선고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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