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로 떠나는 성지순례] 묘적계곡 물소리 번뇌 감싸고 보리수 그늘 아래 해탈 꿈꾸네


조계종은 전국을 25개의 교구로 나눴는데, 그중 마지막 제25교구는 경기북부 지역을 담당하며 그 중심에는 교구 본사인 봉선사가 있다. 봉선사는 아름다운 정원과 연못, 쉬면서 즐길 수 있는 카페, 그리고 수많은 문화유산으로 남양주의 대표적 명소로 이미 자리잡았다. 창건은 고려 전기에 활동한 탄문 스님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조선 전기에 세조를 기리기 위한 원찰이 되면서 지금과 같은 큰 사찰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남양주에 간다면 제일 먼저 들려봐야할 사찰이라고 할 수 있다.

◇원효대사가 세운 묘적사, 묘한 고요함 찾아= 묘적산 묘적사는 절이 위치한 묘적계곡이 요즘 핫플레이스가 돼 절로 올라가는 길이 엄청 막히고, 또 주차하기도 힘들다는 뉴스도 접한 터라 염려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가기로 한 날에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기 때문인지 계곡에 그다지 피서객이 많지는 않았다. 대신 묘적사에 도착할 때쯤 예보대로 먹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이어 빗방울까지 조금씩 날리기 시작해서 사진 찍을 일이 걱정이었는데, 다행히도 빗줄기는 잠깐 내리고 이윽고 적당한 햇살이 비추기 시작했다. 하늘이 돕고 있는 것 같은 묘한 느낌. 그래서 묘적사일까? 묘적, 묘할 묘(妙), 고요할 적(寂)이다. 묘한 고요함이 무엇일까 찾아보기로 했다.


◇장욱진 그림 보듯 아름다운 풍광= 무영루 아래를 지나 본격적으로 경내에 들어선다. 정면에는 묘적사의 오랜 역사를 간직한 팔각다층석탑이 멀리 보이고, 그 뒤로 대웅전이 있어야 하지만, 현재는 중창 중인 대웅전의 중심 기둥과 그 안에 모셔진 석불상만 보인다. 팔각대층석탑은 우리나라에 흔치 않다. 대표적인 예로 월정사 팔각다층석탑이 있고, 다음으로는 남양주 수종사의 팔각오층석탑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이들은 각각 국보, 보물로 지정돼 있는데, 수종사와 같은 남양주에 있는 팔각다층석탑인 묘적사탑은 아직 경기도 문화유산에 머물러 있다. 수종사탑은 그 안에서 조선 전기의 금동불상이 다량으로 출토되면서 조선 전기에 조성된 것이 확인됐는데, 묘적사탑은 아직 명확한 조성연대가 확인되지 않아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수종사탑은 5층, 월정사탑은 9층인데 반해 묘적사탑은 7층이라는 점에서 팔각다층석탑의 다양한 층수를 보여주는 보물급 탑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맨 위에는 삼각형 모양이 새겨진 꼭대기 장식도 남아있는데, 이 모양은 수종사탑과 거의 유사해 세워진 시기도 조선 초기로 비슷할 것 같다.


◇원효스님 수행하던 석굴일까= 이제 옆으로 난 오솔길 계단을 따라 석굴을 찾아보기로 한다. 석굴은 나한전으로 조성돼 있는데, 계단을 올라 자그마한 대문을 통해 들어서니 산령각, 즉 산신각과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 원래는 석굴을 보러 올라온 것이었는데, 비로소 그곳이 "명상하기 딱 좋은 날"임을 알게 해주는 핫플레이스임을 알았다. 석굴 안에 앉아 동굴 밖을 바라보는 풍광도 일품이고, 석굴 안이라 시원하기도 하다. 그뿐인가, 바로 옆으로 묘적계곡의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우렁차게 들린다. 아, 그런 것이었구나. 묘적사의 적막함은 그냥 적막함이 아니라 계곡의 물소리가 우렁차게 흐르면서 다른 잡다한 소리들은 안 들을 수 있게 해주는 기묘한 고요함이었던 것이다. 부처님 말씀도 그렇지 않을까? 세상의 번뇌스러운 이야기들을 그저 무심하게 흘려들을 수 있게 만들어주시는 설법을 하시니, 곧 이 계곡 물소리와 같지 않은가. 원효스님이 실제 이곳에서 수행을 하셨는지 안 하셨는지가 중요하지 않다. 만약 이 멋진 석굴에서 수행을 안 하셨다면 원효스님 손해일 뿐이다.
잠시 석굴에서 원효스님이 된 것처럼 수행하는 척 하다가 이제는 묘적사에서 유명한 템플스테이 장소로 가보기로 한다. 절이 이렇게 예쁘니 템플스테이 숙소도 예쁘겠지 하는 기대감이 생겼다. 종무소에 물어보니 바로 산신각 아래로 보였던 건물들이 템플스테이 숙소라고 한다. 그 앞에는 연못까지 있어 자연스레 연못방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구경을 하고 있으려니 왜 묘적사 템플스테이가 유명한지 알 수 있었다.


보광사에서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은 수령 300년 이상으로 생각되는 소나무다. 마치 겸재 정선이 그린 노송도에 등장하는 소나무의 축소판 같은 아름다운 나무다. 묘적사에서 본 보리수와 더불어 사찰 나무 기행도 이렇게 재미있구나 느꼈고, 그 나무가 지닌 역사가 또한 사찰의 역사이기도 함을 보광사 주지스님의 설명을 들어 알 수 있었다. 나뭇가지가 부러질까봐 정성스레 막대기로 받쳐둔 스님의 정성도 감동이었다.
보광사로 올라가는 계곡도 묘적계곡처럼 아름다운데, 다만 직접 들어갈 수 있는 계곡은 아니다. 이 계곡 여러 곳에 사실은 매우 중요한 바위글씨가 곳곳에 새겨져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그 유명한 추사 김정희가 쓴 바위글씨가 세 곳에 있는데, 그 중의 두 점은 현재 펜스 너머에 있어 잘 보이지 않지만, 그중 하나인 '자련대상(紫蓮臺上)'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마 이 계곡도 잘 정비된다면 멋진 서예 답사 기행 코스로 핫플레이스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명사들이 이곳에 글씨를 남겼다는 것은 곧 이 계곡이 명소였음을 알려주는 증거가 아닐까?
자연은 가장 큰 이벤트다. 묘적사의 묘적계곡과 보광사의 가곡천(벽파동천)은 누구나 와서 참여할 수 있는 자연의 축제다. 이런 곳에 자리잡은 사찰은 불교가 속세를 버린 것이 아니라, 늘 중생과 함께 있음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준다.
주수완 우석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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