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춤에 묻힌 댄서들의 고뇌 [콘텐츠의 순간들]

복길 2025. 7. 24.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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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오브 스트릿 우먼 파이터〉는 서바이벌 댄스 예능이다. 하지만 포맷이 가진 강점을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있다. 전작이 보여준 해방감도 찾기 어렵다.
5월27일 서울 강남구 에스제이쿤스트할레에서 열린 Mnet <월드 오브 스트릿 우먼 파이터> 제작발표회에서 ‘범접’ 댄서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실력자들의 신경전을 구경하는 것은 재밌다. 서로의 자존심이 걸린 상황이라면 더더욱 눈을 뗄 수 없다. 4년 전, 〈스트릿 우먼 파이터〉(이하 〈스우파〉)의 흥행 역시 허니제이와 리헤이의 신경전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모종의 사건으로 앙숙이 된 두 사람은 치열하게 댄스 배틀을 펼치다가 우연히 같은 동작을 구사하며, 과거 동료였던 시절을 떠올리고 극적으로 화해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춤’이 가진 성질을 더 넓게 가늠했다. 춤이라는 몸의 언어가 갈등 해소의 도구로 쓰일 수 있다는 희망도 보았다.

2020년대의 대표 예능 프로그램으로 평가될 〈스우파〉의 폭발적인 흥행은 〈스트릿 걸 파이터〉 1·2, 〈스트릿 맨 파이터〉 〈스우파 시즌 2〉 〈스테이지 파이터〉까지 이어졌다. ‘파이터 시리즈’는 엠넷의 대표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아마도 시즌 1의 포맷과 구성을 그대로 따른 후속 작품을 모두 지켜본 이들은 2025년 초 방영을 예고한 〈월드 오브 스트릿 우먼 파이터〉(이하 〈스월파〉)가 어떻게 진행될지 이미 예측했을 터이다. 사이가 좋지 않은 댄서들이 서로를 견제할 것이고, 모든 출연자가 분노의 춤을 출 것이며, 실력과 진심에 대한 평가를 혹독하게 교환하며 낙오를 겪으리란 것을.

〈스월파〉는 마치 모든 공식을 꿰고 있는 시리즈 팬들을 의식하듯, 〈스우파〉의 흥행을 이끈 원년 멤버들을 소집해서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후 리애나, 비욘세, 레이디 가가의 안무를 담당한 뉴질랜드 댄스 크루 ‘로열 패밀리’, 춤꾼들의 춤꾼으로 유명한 배틀러 크루 ‘오조갱’ 등을 초청해 구성과 스케일에 변화를 꾀했다. 출연자들의 배경이 다양해지자, 이전 시즌에서 다룬 사적인 갈등 양상은 댄서들이 겪고 있는 딜레마와, 그에 따른 가치관의 대립으로 확대되었다.

‘RH도쿄’의 리더이자 수많은 케이팝 그룹의 안무를 담당하며 세계적 명성을 얻은 댄서 리에하타와, ‘오조갱’의 에이스로 전 세계 댄서들의 존경을 받는 최정상 ‘배틀러’ 쿄카의 신경전은, 마치 춤이란 과연 ‘노동’일까 ‘수련’일까 묻는 퀴즈 같다. 리에하타는 춤을 통해 다양한 산업과 접촉하며 댄서들의 무대를 넓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반면 쿄카는 댄서라면 끝없는 연습을 통해 실력을 성장시키고, 댄서 간 경쟁을 통해 자체 문화를 키워나가는 것이 옳다고 여긴다. 두 사람의 갈등은 약자 지목 댄스 배틀에서 아이키가 ‘틱톡 댄서’라는 비아냥을 들으며 수많은 댄서들에게 ‘노 리스펙트’ 스티커를 받은 장면과도 연결된다. ‘숏폼’으로부터 비롯된 댄스 챌린지 문화와, 막대한 자본이 투입된 케이팝 시장을 배경으로 활동 중인 댄서들에겐 이를 수용하고 제한하는 것이 실력만큼이나 중요한 상황이 된 셈이다.

그러나 〈스월파〉는 댄서들의 이러한 내부적 갈등을 깊이 다루지 않는다. 방송 자체가 ‘춤의 대중적인 확산’을 목표로 삼고 있으며, 숏폼에서 유행할 수 있는 짧은 안무 챌린지, 케이팝 아티스트의 안무 창작 과제를 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배틀에 임하기 전 자신이 춤에 얼마나 진심인지 밝히던 〈스월파〉의 댄서들은 단계를 통과하면서 점점 탈락하지 않기 위한 춤, ‘좋아요’를 받기 위한 춤을 춘다. 한 편의 영상으로 제작된 흠 없는 결과물 속에서 댄서들의 몸짓은 완벽하지만 자유로워 보이지는 않는다.

〈스월파〉는 이러한 환경 변화에 댄서들이 어떻게 대처하는지 시험하듯 출연자들에게 지속적인 압박을 가한다. 유튜브를 통한 대중 투표로 당락을 가르는 심사 방식은 그 압박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증명한다. 시즌 1 참가자들로 구성되어 이미 안정적인 팬덤을 보유한 ‘범접’은 케이팝 안무 창작 미션에서 2위 팀을 압도적인 득표수로 따돌리며 승리한다. 훌륭한 무대를 보여주긴 했지만, 그들이 받은 득표수는 국내 팬덤의 화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결과였다. 따라서 이러한 방식은 〈스월파〉가 궁극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댄서 개개인의 개성과 실력이 아닌, 영향력과 인지도임을 시사한다.

케이팝 시스템의 선전물?

케이팝 안무 창작 미션을 받은 후 미국 팀 ‘모티브’가 품었던, ‘무엇이 케이팝인가’ 하는 고민은 이 방송을 관통하는 중요한 질문이다. 다양한 국가와 상호작용하며 그 경계를 무너트린 케이팝은 이제 고유한 음악적 특성을 딱 잘라 짚어낼 수 없다. 그러나 영향과 파급을 중시하고 이를 ‘생존’과 연결 짓는 산업의 태도는 여전히 특징적이다. 이것이 〈스월파〉의 방송 논리와 맞닿아 있다. 피상적으로 다뤄지는 댄서들의 고뇌, 완벽한 ‘상품’이 될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미션, 가혹한 룰을 만들고 그 안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확대하는 마케팅···. 이러한 요소는 〈스월파〉를 댄스 서바이벌이 아닌, 케이팝 시스템의 선전물처럼 보이게 만든다.

<월드 오브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 출연한 미국 팀 ‘모티브’.

지금까지 방영분(7회)을 기준으로, 〈스월파〉는 포맷이 가진 강점을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있다. 불필요한 자극만 전면에 강조된다. ‘로열 패밀리’와 ‘에이지 스쿼드’ 사이의 국가적 대결 구도, 한국과 일본 댄서 간의 신경전에서 포착되는 정치적 장면들은 ‘악마의 편집’을 거쳐 긴장감보다 피로를 먼저 느끼게 한다.

4년 전, 우리는 〈스우파〉 댄서들을 통해 ‘춤’이란 질문이자 대답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자유롭게 묻고, 독창적으로 대답하는 그들의 몸짓은 말로 빚어지는 억압에서 우리를 해방했다. 그러나 방송을 계기로 춤을 사랑하게 된 시청자들은, 이젠 그 방송이 점점 더 춤을 사랑할 자유를 앗아간다고 입 모아 말한다. 나는 원점으로 돌아가 시청자들이 주었던 그 사랑을 추적하기를 제안한다. 우리는 시스템에 순응하는 완벽한 춤이 아니라, 댄서의 몸이 표현하는 분노·불안·혼란을 사랑했다.

복길 (자유기고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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