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위한 평양냉면 한그릇 [이종건의 함께 먹고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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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 히터를 틀어둔 가게에서 밤샘 농성을 하고 있노라면 정말 목구멍이 쩍쩍 갈라진다.
평양냉면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구분하는 모호함 속에 조금씩 영역을 넓혀가는 새로운 시도들, 그 미묘한 차이를 만들어내는 이들의 고집스러움과 다소 과잉된 자의식까지! 그 모든 문화를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한그릇 식사라 여기며 즐긴다.
오늘의 풍경에는 고집스런 평양냉면 한그릇이 머물 자리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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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건 | 옥바라지선교센터 활동가
추운 겨울, 히터를 틀어둔 가게에서 밤샘 농성을 하고 있노라면 정말 목구멍이 쩍쩍 갈라진다. 얼마나 바짝 말랐는지 새벽녘 일어나 더듬거려 집은 생수를 들이마셔도 목구멍을 미끄러지듯 흘러가는 물이 갈증을 채 해소해주지 못한다. 그렇게 잠을 설치고 나서 아침이 됐다. 함께 밤샘 농성을 한 이가 도무지 안 되겠다며 배달 앱을 열더니, 근처에 평양냉면이 배달된다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렇게 받아든 평양냉면 한그릇. 운치 없이 배달 용기에 담겨 있는 슴슴한 한그릇을 그대로 들어 쭉 들이켰다. 갈라진 목구멍을 휘어 감듯 내려가는 국물에 씻은 듯 사라지는 갈증. 그야말로 생명수다.
유행이 절정일 때, 마니아들은 이 육수를 컵에 담아 테이크아웃을 하고 싶다고 농담처럼 얘기했다. 그 농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어떤 기업에서는 편의점에 평양냉면 육수를 작은 포장으로 팔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맑고 슴슴한 것을 두고 얼마나 많은 논쟁과 칼럼이 있었는가? 그 이야기들에 굳이 한 돌을 얹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나는 그저 그 맑고 슴슴한 것을 사랑할 뿐이다. 고춧가루 툭툭 얹은 (냉면 가게) 을지와 필동의 그것도 좋고, 육향 진하게 우러나는 우래옥의 그것도 좋다. 저렴한 가격에 내놓으며 동네 할아버지들과 ‘평냉’(평양냉면) 입문자들을 사로잡은 탑골공원 유진식당도 좋다. 그저 다 좋다. 평양냉면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구분하는 모호함 속에 조금씩 영역을 넓혀가는 새로운 시도들, 그 미묘한 차이를 만들어내는 이들의 고집스러움과 다소 과잉된 자의식까지! 그 모든 문화를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한그릇 식사라 여기며 즐긴다.
다만, 그런 내게도 한그릇 냉면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말하는 집이 있으니, 서울 남대문 시장 부원면옥이다. 요즘이야 외국에서 들어온 식재료가 흔하지만, 사실 십몇년 전만 해도 남대문 도깨비시장에 가서 발품을 팔아야 만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자취하며 도깨비시장 탐닉은 내 취미였는데, 그렇게 한바퀴 돌고 나면 꼭 들러 냉면 한그릇을 먹곤 했다. 좁은 골목, 그보다 더 좁은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빈대떡을 굽고 있는 간이 주방이 있고 이내 정갈한 풍경의 실내가 펼쳐진다. 어느 날, 냉면 먹으러 좁은 계단을 오르려는데 사장님이 한그릇 냉면을 들고 계단을 내려오신다. 가게 앞 좁은 골목에는 간이 테이블이 펼쳐져 있고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앉아 있다. 오랜 단골이 이제는 계단 오르기가 영 어려우신가 보다. 그런데도 이 한그릇을 먹겠노라 오셨나 보다. 익숙한 듯 냉면을 내어드리고 올라가는 사장님 따라 부원면옥의 계단을 올랐다. 그 뒤로 내게는 이 집이 평양냉면 일등이다. 주저함 없이.
오래된 것들이 좋다. 고집하는 일에 머무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걸 두고 집착이라며 한시라도 빨리 내일로 가야 한다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다 데려갈 수 있다면, 그러라고 하겠다. 그러나 빠른 열차일수록 좌석은 좁다. 모두를 데리고 갈 수 없는 내일을 두고 그것만이 우리의 미래라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무지고 욕심이지. 도시는 조금 느려도 된다. 내일로 가는 것이 있다면 어제에 머물러야 하는 것도 있다. 내일과 어제를 더하고 나누면 그제야 오늘이다. 오늘의 풍경에는 고집스런 평양냉면 한그릇이 머물 자리가 있는 법이다. 계단을 타고 내려와 한그릇 냉면을 대접하는 마음이 머무를 자리. 그 자리를 필요로 하는 마음이 머무를 수 있는 도시를 바란다. 오히려 이 욕망이 대책 없는 내일보다 현실적이라며 투정 보탠 한그릇을 들이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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