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중국 청년들이 겁내는 3개의 ‘ㄱ’

구(苟), 권(卷), 가(假).
얼마 전 베이징 싼위안차오에서 만난 중국 청년들은 경제 현실을 관통하는 말로 세 개의 ‘ㄱ’을 꼽았다. ‘구(苟)’는 구차하게 일자리를 구걸하게 만든 취업난, ‘권(卷)’은 내부 출혈 경쟁을 벌이는 산업 구조, ‘가(假)’는 가짜 경기 회복(假复苏)을 띄우며 현실을 가리는 여론 통제를 의미한다.
중국 청년들은 올해 들어 ‘거우저(苟着·구차하게 버틴다)’란 유행어가 ‘탕핑(躺平·취업 포기하고 드러눕기)’을 대체했다고 토로했다. 취업난이 장기화되자 청년들이 침대에서 기어나와 낮은 월급과 열악한 근무 환경을 감수하기 시작했다. 베이징에서 대학 졸업 후 금융 업계 인턴 생활만 1년째인 A씨는 “공자는 ‘구차함(苟)’은 군자의 도리(예·禮)가 아니라 했지만, 나에겐 선택지가 없다”고 했다.
청년들이 ‘구(苟)’를 선택하게 된 배경에는 ‘권(卷·종이가 안으로 말리듯 과도한 내부 경쟁)’이 있다. 일자리를 제공하는 기업들이 과잉 생산·내수 부진, 미국발(發) 관세 전쟁 여파로 벼랑 끝에 몰리면서 고용 시장이 얼어붙었다. 지난해 태양광 업계 1위 룽지는 대대적인 감원을 했고, 올해 전기차·배달 업계의 제살 깎아 먹기식 경쟁은 정부의 공식 개입을 불렀다. 베이징 언론사의 한 기자는 “‘한 푼이라도 벌기 위한[一分錢都挣] 경쟁’으로 중국 기업들이 모두 고통받으면서 해외 시장 진출[出海]에 모두 혈안”이라고 했다.
설상가상으로 경제 현실을 왜곡하는 ‘가(假)’는 소비 불안을 키운다. ‘가짜 경제 회복(假復蘇)’은 중국 정부가 주창하는 광명론(光明論·경제 낙관론)에 저항하는 신조어다. 중국 정부는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이란 말조차 ‘물가 재상승 필요’란 어색한 표현으로 대체한다. 그러나 셈에 밝은 중국인들은 정부가 위기를 숨길수록 허리띠를 더 세게 조일 뿐이다. 중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올해 4개월 연속(2~5월) 하락했고, 올 상반기 부동산 개발 투자는 전년 대비 11% 감소했다. 중국의 가계 부채는 GDP(국내총생산)의 60%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되고, 더우인(중국판 틱톡)에선 빚에 허덕이는 삶을 공유하는 ‘채무 인플루언서’가 인기다.
다만 중국이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어느 하나의 변수가 아니라 ‘퍼펙트스톰’이다. 청년 취업난, 내부 출혈 경쟁, 소비 심리 위축 같은 불안 요인들이 한꺼번에 터지며 국가 통제력을 벗어나는 종합 위기로 번지는 상황을 경계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부터 중국의 경제정책은 ‘위기 중첩’을 사전 차단하는 데 방점이 찍혔다. 국내에서도 중국 경제를 판단할 때 단편적인 지표나 특정 사건보다 종합적으로 위기가 번지는지 살펴야 한다. 중국 경제를 정확하게 진단해야 한중 경제 협력 방향을 정교하게 짜고, 중국 대응 전략을 마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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