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용의 물건만담] 터부에서 자유로운 ‘한국계 외국인’이 살려낸 K소품

박찬용 칼럼니스트 2025. 7. 23.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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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 데몬 헌터스’ 속 노리개
그래픽=양인성

미국 할리우드에서 만든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가 전 세계적으로 흥행하며 이 작품의 모든 게 화제에 오른다. 이름부터 ‘케이팝’이 들어가는 작품답게 고증의 수준도 다르다. 나는 한반도 문화의 전통적 요소를 21세기 애니메이션에 어떻게 가미했는지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그중에서도 내 눈에 띈 건 노리개다.

노리개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 속 주요 여성 배역의 성격을 보여주는 소품이다. 작품 속 걸그룹 ‘헌트릭스’ 3인은 각자 성격에 맞춰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현대화한 노리개를 착용한다. 노리개에 인형을 단다거나 하는 식으로. 착용 방식도 현대적이라 요즘 젊은이들이 무선 이어폰 케이스 차듯 바지 고리에 노리개를 건다. 헌트릭스의 스승 역할을 하는 셀린의 노리개는 어른스럽게 전통적이다. 헌트릭스의 응원봉 역시 노리개 문양을 응용해 만들었으니 노리개의 역할이 확실하다.

한국적 배경의 이해와 응용이라는 면에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한국 이해도는 기존 한국 배경 할리우드 작품과 질적으로 다르다. 인터넷에서는 한 제작진의 작중 배경 설정 과정 메모가 공개되어 있다. 그 메모엔 서울 풍경을 그릴 때 ‘높은 마천루가 너무 많고 중형 빌딩이 켜켜이 쌓여 있으면 너무 뉴욕 같고, 크기가 다양한 빌딩이 녹지와 산지 없이 평지에 흩뿌려져 있으면 너무 도쿄 같아서 안 된다’고 쓰여 있다. 뉴욕, 도쿄, 서울 도시 풍경의 핵심을 꿰뚫는 평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게는 극 중 주요 소품이 하필 노리개인 게 인상 깊었다. 사실 한국어를 모어로 쓰는 이들에게 노리개는 긍정적인 단어가 아니다. 멸칭에 가깝다. 국어사전 노리개 항목에도 ‘욕망 충족을 위해 자기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 있다. 물론 한국계 한국인이라면 ‘한복에 다는 액세서리’라는 노리개의 원래 뜻도 안다. 비유적 의미가 워낙 강해 잘 쓰지 않을 뿐.

노리개처럼 한국계 한국인이 잘 사용하지 않는 요소를 창의적으로 사용하기. 이게 나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읽는 단서라 생각한다. 그 단서로 읽어낼 수 있는 건 한국 요소를 사용한 한국계 북미인의 유연하고 당당한 정체성이다. 한국계 한국인들은 한반도인들의 인종적 특징을 가진 사람들을 모두 ‘한국 동포’나 ‘한민족’이라 칭하곤 한다. 하지만 한국계 한국인과 한국계 외국인은 교집합을 가진 다른 사람들이다. 일례로 한국계 미국인들은 한국계 한국인의 터부나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로울 때가 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도 그런 시각이 곳곳에 있다. 노리개도 그렇고, 한국에서는 천시받는 무당이 ‘이 땅을 지켜온 사람들’이라는 기본 설정도 그렇다. 아울러 해외로 떠난 한국계 사람들이 자리 잡은 곳의 요소가 한국적 요소와 강하게 비벼지기도 한다. 이를테면 모두가 이민자인 미국인 특유의 진취적 서사가 한국인들의 고생과 맞물리면 ‘한국 재료로 꾸린 미국형 서사시’가 된다. 나는 그 면에서 한국계 미국인 작가가 영어로 쓴 ‘파친코’는 형식도 주제도 완전한 영문학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대주제에도 한국 작품을 뛰어넘는 국제적 면모가 있다. 그 면모는 ‘비백인계 북미인이 혼란 속에서 정체성을 찾아 나서는 여정’이다. 이건 20세기 영문학의 한 갈래인 비영어권 작가의 영어 작품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주제이기도 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중국계 미국인이나 멕시코계 미국인을 거쳐 한국계 미국인 작가나 베트남계 미국인 작가까지, 이 주제를 공유하는 작품이 너무 많다. 나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도 ‘아시아인의 정체성 찾기’라는 아시아계 북미인 서사의 최신형이라 본다. 헌트릭스의 노리개는 그 면에서 자신들의 뿌리와 현재를 보여주는 멋진 상징물이다.

나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한국계 외국인의 작품이라 비하하거나 ‘갈라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이 작품의 인기를 두고 ‘세계가 한국 전통에 빠졌다’는 유의 과대평가를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자신의 민족적 요소를 충실히 탐구한 한국계 북미인들의 작품이지 지금의 한국계 한국인과는 큰 상관이 없다. 한국계 한국인인 나는 이런 작품을 충실히 배우고 싶다. 한국계 외국인들의 세계로 열린 시각을, 토속 요소와 오늘날의 세계를 절묘히 섞는 균형감을. 아무래도 한국계 한국인은 노리개를 중립적 의미로 보기 어려울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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