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대비’ 유럽, 140년 된 벙커까지 재활용

박은경 기자 2025. 7. 2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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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냉전 시대 벙커 8000개…치즈 창고 등으로 쓰여
독일 민간선 지하실 등 개조…폴란드 ‘전쟁 안내 책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 주도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체제가 흔들리면서 유럽 각국의 전쟁 대비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있다. 스위스·독일 등은 냉전 시대 유물로 남아 있던 벙커와 공습 대피소를 수십년 만에 재정비해 현대 안보 인프라로 탈바꿈시키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23일(현지시간) 스위스 일간지 노이에취르허차이퉁은 스위스 국방부가 퇴역한 박격포 벙커들을 현대적 방어 허브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 같은 사실은 최근 스위스 연방군수청이 공공조달플랫폼에 게시한 공지문을 통해 알려졌다. 공지문에 따르면 새 방어 허브는 민병대 전력이 운용할 수 있어야 하며 기갑 지상 표적뿐 아니라 저고도 항공 위협에도 대응 가능해야 한다. 기존 벙커의 구조는 최대한 유지하되 첨단 무기체계를 통합해 작전 수행 능력을 강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유로뉴스에 따르면 스위스군의 이 같은 움직임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고조된 안보 우려에서 비롯됐다.

스위스 전역에는 약 8000개의 벙커가 있으며 이 중에는 1886년에 지어진 것도 있다. 냉전 이후 상당수 벙커가 민간에 매각돼 치즈 저장고, 미술관, 데이터 저장센터, 호텔 등으로 용도 변경됐고 일부는 베른주의 ‘스위스 포트 녹스’처럼 가상자산 금고로 탈바꿈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인 2023년부터 스위스군은 벙커의 민간 매각을 전면 중단하고 군사적 재활용 방안을 모색해왔다.

독일도 벙커와 공습 대피소 부활을 포함한 대응책 마련을 추진 중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불과 20년 전 독일은 자국 영토에 대한 군사적 공격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보고 남아 있는 벙커들을 폐쇄했지만 현재는 이 결정을 되돌리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냉전 시기에 운영되던 약 2000개의 벙커와 대피소 가운데 현재 남아 있는 것은 58곳에 불과하다.

독일은 저비용으로 빠르게 대피소로 개조할 수 있는 공공장소 목록을 작성 중이다. 우선 시범사업으로 2026년 말까지 100만명이 대피할 수 있는 공간 확보를 목표로 삼고 있다. 지하 주차장, 지하철역, 건물 지하 공간 등 기존 구조물을 대피소로 전환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최근 개인 지하실을 벙커로 개조하려는 독일인도 늘고 있다. 민간 벙커 제작업체를 운영하는 피터 오른해머 대표는 “이 (벙커) 주제는 오랫동안 농담 소재였지만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과의 관계 변화, 중동 정세 등의 영향으로 상황이 변하고 있다”고 WSJ에 말했다.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폴란드는 전쟁 등이 닥쳤을 때 행동요령을 담은 안내 책자를 만든다. 폴란드 정부는 공습·정전 시 대응 요령, 식수 확보법, 대피소 위치 등을 담은 40쪽 분량의 안전 안내서를 오는 9월까지 제작해 전국에 배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국 단위의 시민 대상 대응 안내서가 발간되는 건 수십년 만에 처음이다.

폴란드는 우크라이나 전쟁 개전 이후 국내총생산 대비 국방비 비중을 유럽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상태다. 특히 러시아와 벨라루스에 맞닿은 동부 접경 지역에는 ‘동부 방패’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최첨단 안티드론(무인기 무력화) 시스템과 대전차 방호벽 등을 세우고 있다.

박은경 기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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