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승리기원’ 고사 지내던 팬클럽, 이 좋은 타이밍에 20주년 겹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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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란 무엇인가. 도대체 야구란 게 무엇이길래 저들은, 허구한 날 지는 팀을 그토록 응원하며 “나는 행복합니다” 노래하는가. 광주에서 태어나 대전에 살면서 한화이글스 팬을 보는 마음은 내내 ‘이해 불가’였다. 지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보살팬’이란 조롱(?)을 견디면서도 차마 한화를 버리지 못하는 그들이 도통 이해되지 않았다.
그랬는데, 올해는 ‘너무 이상하게도’ 한화이글스가 자꾸 이긴다. 지금(23일 오후 현재) 한화이글스는 여유롭게 1위(2위 엘지트윈스와 5.5경기 차)를 지키며 10연승 중이다. 명색이 충청 지역 기자인데 한화 관련해 뭐라도 써야 할 것 같은 압박감에 찾은 새 야구장(대전한화생명볼파크)에서 ‘잇츠한화’를 발견했다. 적절한 타이밍에 깃발 흔들고 빠지는, 딱 봐도 ‘찐팬’ 느낌에 이끌려 무작정 명함을 건넸다.

잇츠한화는 여러 한화이글스 서포터스(프로 스포츠팀을 응원하는 팬 모임) 중 가장 역사가 긴 모임이다. 2005년 만들어져 올해 20주년을 맞은 이 모임은 다른 이글스 서포터스처럼 구단과는 관련 없는 순수 ‘자생 동아리’다. 현재 온라인 밖에서도 교류하는 회원만 300여명에 달하는 잇츠한화는 2011년 5월 대전야구장 앞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기념탑’에서 돼지머리를 놓고 ‘한화 승리기원 고사’를 지내기도 했다. 연초 구단시무식 때의 고사는 흔하지만, 팬들이 시즌 중 사비를 모아 직접 고사를 지내는 건 드문 일이다.
가장 오래된 이글스 응원 팬 모임
20년 동안 ‘보살팬’ 조롱 견디면서
우리 선수들 기죽을까 고사도 지내
지난 5월 중순 기자와 첫 만남에서 잇츠한화의 최성률(40)씨는 “시즌 시작부터 하도 지니까 걱정이 돼 일주일간 머리를 맞댔고, 고사라도 드려보자 뜻을 모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고사문에는 ‘선수들의 고개 숙인 모습에 마음 아파하는 팬들을 위해 선수들이 그들의 일을 더 사랑하고 진지하게 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라고 적혀 있었다. 져서 속상한 것보다는 ‘우리 선수들 기죽을까’ 그게 겁이 났단다. 야구팀이 자기 자식도 아닌데 말이다.

전북이 고향인 최씨는 군산에서 치러진 기아 대 한화 야구경기를 어쩌다 보러 갔다가 잇츠한화를 알게 됐다. “대전이 직장이라 한화이글스로 야구에 입문하긴 했어요. 고향에서 경기한다길래 보러 갔는데 정말 ‘미친 것처럼’ 신나게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는 거예요. 다음번에 대전 야구장을 갔더니 그때 그 사람들이 또 있어서 한화에서 돈 받고 응원해주는 ‘전문 응원단’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냥 다 저처럼 ‘이글스가 좋아서’ 모인 사람들이란 걸 알고 그때부터 함께하게 됐죠.”
유미정(44)·이호섭(42) 부부 역시 오랜 한화 팬이다. 군인인 호섭씨 직장 때문에 강원도에 살 때 잇츠한화 사람들과 첫 인연을 맺었다. 10년 전쯤 잇츠한화 온라인 카페에 ‘속초에 사는 사람인데, 어린이날 2살 딸에게 야구를 보여주고 싶은데 표를 못 구했다’는 글을 올린 뒤 대전을 막 빠져나가려는 순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 “일단 차 돌리세요”라고 했단다. 미정씨는 “그 순간부터였던 것 같아요, 잇츠한화 가족이 된 건”이라며 기자의 빈 잔을 채웠다. 그 옆에서 호섭씨도 웃으며 말했다.
“그저 야구만 좋았던 거면 (한화 경기) 계속 안 봤을 수도 있어요. 근데 이렇게 같이 하다 보니, 어느 순간 하나가 됐어요. 내가, 우리가 함께 한화이글스가 된 거예요”

지난 7일 대전 대덕구 비래동에서 열린 ‘잇츠한화 창립 20주년 기념 회원의 밤’ 행사는 흰색 기념 티셔츠를 맞춰 입은 회원들로 가득했다. 20주년 행사에는 이글스의 ‘영원한 35번’ 레전드 장종훈 코치도 함께했다. 모든 회원에게 사인해준 뒤 장 코치는 “20년이나 된 서포터즈가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며 “팬들이 한결같이 응원해주시는데, 그동안은 그 보답을 못 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도 올해는 후배들이 잘해주는 덕분에 조금은 부담을 내려놓고 기쁜 마음으로 왔다”고 말했다.
기념행사에 레전드 장종훈 코치 참석
“올해 후배들이 잘해줘 기쁘게 왔죠”
세상 떠난 회원들 떠올린 팬은 울먹
“그들 멀리서 함께 축하하고 있을 것”
행사를 시작하며 잇츠한화 회장 유기천(53)씨는 “순수한 열정 하나로 출발한 우리가 어느덧 20년이란 세월을 함께 걸어왔다. 지난 20년간 우리는 승리의 기쁨도, 아쉬운 패배도 함께하며 누구보다 뜨겁게, 그리고 끈질기게 한화이글스를 응원해왔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한 여러분 한분 한분이 계셨기에 지금의 잇츠한화가 존재할 수 있었다”고 인사했다.

그날 잇츠한화 공로상을 받은 양선수(53)씨는 울먹이며 “지금 여기엔 없는 회원들도 멀리서 함께 축하하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들이 참 많이 보고 싶고 그립다”며 몇해 전 세상을 떠난 회원들을 떠올렸다. 6살 때부터 엄마 손을 잡고 잇츠한화 이모·삼촌·언니·오빠들과 함께 야구장을 다녔다는 양씨의 딸 염보경(24)씨는 “지금 한화가 1등을 하고 있어 정말 좋지만, 꼭 우승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선수들이 그냥 열심히 최선을 다해준다면 그걸로도 좋다고, 마음을 내려놓으려 애쓴다”며 “어릴 때부터 서포터즈 활동을 하는 엄마를 지켜보면서, 살면서 스치고 만나고 이어가는 인연의 무거움과 가벼움, 그리고 소중함에 대해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 그것이 성인이 된 지금의 내 삶도 더 단단하고 풍요롭게 이끄는 것 같다. 다른 이들과 함께 한화이글스를 사랑하는 이 경험은 엄마가 내게 주신 가장 큰 유산”이라고 말했다.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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