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초판본 [한국근대문학관 컬렉션·(8)]

박경호 2025. 7. 23.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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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문화재단 공동기획> 일제 그림자 속, 별을 노래한 청년 시인

1948년 1월 정음사 발간·시 31편 수록
갈포 책가위 덧씌워… 가로 쓰기 눈길
정지용·강처중·유영 등 초판 발간 주도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초판본 표지. 갈포로 된 책가위가 씌워진 모습이 인상적이다. /한국근대문학관 제공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 /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 걸어가야겠다. (윤동주 ‘서시’ 중에서)

8·15 광복을 불과 반년 앞둔 1945년 2월16일 일본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한 영원한 청년 시인 윤동주(1917~1945). 올해는 광복 80주년이면서 윤동주 80주기다. 생전 시인으로 불리지 못한 그의 첫 시집은 유고시집이 됐지만, ‘서시’ ‘별헤는 밤’ ‘쉽게 씌어진 시’를 비롯한 한국인이 애송하는 대표적 시들을 남겼다.

윤동주가 일본 유학을 떠나기 전인 1941년, 훗날 국문학자가 되는 친구 정병욱(1922~1982)에게 시집 원고를 맡겼고, 정병욱은 학도병으로 징용당하기 전 광양에 있는 어머니에게 윤동주 시집을 전달해 항아리 속에 숨겼다는 ‘시집 보존’ 일화는 널리 알려졌다.

윤동주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詩)’ 초판은 1948년 1월30일 정음사에서 발간했다. 가로 12.5㎝, 세로 18.8㎝ 크기의 책은 양장 표지에 판화가 이정(1924~1995)의 목판화를 담았다. 갈색 갈포로 소중하게 책가위를 덧씌운 것도 특징이다. 당시 흔치 않은 가로 쓰기로 찍어 냈다. 윤동주의 시 31편을 수록했다. 초판본은 출간 당시 많이 팔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근대문학관이 소장한 초판을 비롯해 현재 전해지는 책가위가 남은 책은 현재 4권 정도다. 나머지 대부분은 본책만 남아 있다. 한국근대문학관에서 상설 전시 중인 초판본은 상태가 매우 좋아 자료적 가치가 높다.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초판본. 정지용의 서문 끝부분과 차례가 보인다. 당시로선 흔치 않은 가로 쓰기 조판이다. /한국근대문학관 제공


초판본은 1955년 2월16일 정음사에서 발간한 재판본(증보판), 그 이후 나오는 판본들과 차이가 크다. 윤동주의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 선배 최영해가 운영한 정음사의 초판 출간은 당대 최고 시인 정지용(1902~1950), 윤동주의 벗 강처중(1917~?), 유영(1917~2002) 등이 주도했다. 특히 강처중은 윤동주가 유학 중 편지를 통해 ‘쉽게 씌어진 시’ ‘흰 그림자’ 등 자작시를 몰래 보낼 정도로 교유가 깊었다. 정지용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 서문을 썼다. 유영은 추도시를, 강처중은 발문을 실었다.

윤동주 시집 초판 발간을 주도한 이들은 모두 해방기 좌익 성향의 문학 단체 ‘조선문학가동맹’에서 활동했다. 정우택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2017년 ‘한국시학연구’ 제52호에 게재한 논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초판본과 재판본의 사이’에서 “정지용은 윤동주를 통해 ‘8·15 이후 조선의 운명에 해당한 새로운 민족시’의 방향과 가능성을 타진했다”며 “정지용을 비롯한 초판본 편집·간행 참여자들은 윤동주와 시집을 ‘시와 조선과 인민’을 상상하는 텍스트로 기억하고자 했다”고 했다.

정 교수에 따르면, 초판본 출간을 주도한 인사들은 자주적 민주 재건을 통한 남북통일정부를 지향하는 노선에 서 있었고, 그 맥락에서 윤동주를 기억했다. 이들 상당수는 단독 정부 수립 이후 배제·추방되거나 전향 또는 월북했다. 정음사는 1953년 ‘한하운 시초’ 재판본 출간 문제로 필화 사건을 겪는다. 윤동주 10주기를 맞아 정음사에서 출간한 재판본은 유가족이 수집한 시와 산문을 모아 더욱 풍성해졌다. 그러나 정지용, 강처중 등이 쓴 글은 삭제됐다. 시대 상황이 반영된 결과다. 바람 속에서도 윤동주의 시는 여전히 빛난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서시’ 마지막 연)



/박경호 기자 pkh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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