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배너 화력발전소 '도시재생 성공 사례'] 회색 굴뚝의 변신…'문화 향기' 피어오르다
1912년 지은 발전소, 2012년 프로젝트 진행
음식점·공연장·호텔 '복합문화공간' 탈바꿈
일자리·세수 창출…지역경제 되살리기 한몫
기업·지역사회 '합작품'
리처드 케슬러 회장, 주민 의견 청취 후 구상
다양한 이야기 담겨 호평…시정부 적극 지원
인천, 벤치마킹 필요
폐쇄 앞둔 영흥화력발전소, 본보기 삼아야
인천시, K-콘랜드 개발 관련 MOU 체결

수도권의 유일한 석탄화력발전소인 인천 영흥화력발전소는 2034년부터 폐쇄 절차를 밟는다. 정부는 2004년에 준공된 영흥화력 1·2호기 가동을 내구연한(30년)이 도래되는 2034년에 중지하고 이어 2038년 3·4호기, 2044년 5·6호기를 잇따라 폐쇄할 방침이다. 문을 닫는 발전소는 이미 확보된 전력망과 부지를 활용해 액화천연가스(LNG)나 수소 발전으로 전환하겠다는 구상도 내놨다. 영흥화력발전소에서 석탄을 원료로 사용하지 않을 뿐 에너지 생산 역할은 그대로 이어간다는 의미다.
반면 미국과 영국의 폐쇄된 화력발전소 활용법은 남다르다. 에너지 생산시설 기능을 완전히 지워버리고 시민에게 열린 공간으로 탈바꿈됐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1981년 문을 닫은 런던 뱅크사이드 화력발전소는 2000년 현대미술관 '테이트 모던'으로 다시 태어났다. 미국 조지아주 동남부 항구도시 서배너 화력발전소는 음식점과 공연장, 호텔이 공존하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거듭났다.
인천일보는 성공적 도시 재생 사례로 꼽히는 서배너 '플랜트 리버사이드 디스트릭트(Plant Riverside District)'를 방문해 폐화력발전소의 무한한 가능성을 엿보았다.

▲옛 화력발전소, 경제 성장 동력으로
지난 12일(현지시각) 서배너 강을 따라 걷던 중 하늘 높이 솟은 굴뚝 두 개가 눈에 들어왔다.
굴뚝 아래에는 음식점과 커피숍, 기념품 판매점 등 작은 상점들이 줄지어 있고, 야외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 얼굴에는 여유가 묻어났다.
붉은 벽돌로 이뤄진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철제 구조물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실내 천장에는 공룡 장식이 매달려 있고 로비 한가운데는 반짝이는 보석들이 전시돼 방문객들 눈을 즐겁게 했다.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이 시설은 화력발전소였다. 애틀랜타에 본사를 둔 전력 회사 조지아 파워(Georgia Power)가 1912년 이곳에 화력발전소를 지었다.
이 발전소는 1950년 중반까지 서배너의 유일한 전력원이었다. 발전소에서는 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해 석탄을 태웠고, 그 과정에서 굴뚝을 통해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2005년 쓰임을 다한 발전소는 문을 닫은 채 방치됐다가 2012년 리처드 케슬러(Richard Kessler) 케슬러 컬렉션 회장이 주도하는 대규모 도시 재생 프로젝트 대상이 됐다. 이 사업에 약 3억7500만 달러(현재 기준 5190억원)가 투입된 것으로 전해졌다.

도시 재생을 거쳐 발전소에서 복합문화시설로 다시 태어난 플랜트 리버사이드 디스트릭트는 2020년 처음 공개됐고 대중들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당시 밴 존슨 서배너시장은 지역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때 전기를 생산했던 발전기 대신 새로운 발전기가 만들어졌다"며 "이 발전기는 지방정부에 600~800개의 새 일자리와 세수를 제공하는 등 경제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화력발전소가 복합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오랜 시간 발전소로 쓰였던 탓에 오염 정도가 심해 환경 정화에만 무려 7년이 걸렸다고 한다.
리처드 케슬러 회장은 인천일보와 인터뷰에서 "과거 화력발전소였던 이곳을 개발하기 위해 많이 고민했고 2년간 구상을 했다"며 "특히 환경 정화에 힘을 들였는데 7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다"고 말했다.
이런 노하우를 쌓은 케슬러 회장은 최근 아시아 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아시아 진출의 전략적 거점으로 경제자유구역을 품은 인천을 선택했다. 'K-콘랜드(K-Con Land)' 프로젝트에 참여해 경제자유구역을 주거·교육·문화·복지가 결합한 복합 문화 공간으로 개발하겠다는 구상이다. 케슬러 회장이 이끄는 케슬러 컬렉션은 세계적 고급 호텔·리조트 운영사다.

이에 유정복 인천시장은 최근 미국 출장 기간 서배너에서 케슬러 회장을 만나 관광·문화 융합도시 개발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K-콘랜드 개발 계획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유 시장은 "K-콘랜드는 문화·관광·주거가 어우러진 복합 공간을 만드는 사업으로 케슬러 회장이 추구하는 방향과도 굉장히 일치한다"고 말했다.

▲지역 주민과 함께 만든 문화 공간
"호텔과 소매점, 엔터테인먼트가 단순히 하나씩 있는 게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로 합쳐진 장소입니다."
리처드 케슬러 회장은 인천일보에 플랜트 리버사이드 디스트릭트를 이렇게 설명했다.
전력 공급원으로서 수명이 다한 화력발전소를 새로운 주민 친화시설로 만드는 대규모 프로젝트에 뛰어든 케슬러 회장은 가장 먼저 지역 주민들을 찾았다.
케슬러 회장은 "이 사업을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서배너에 오랫동안 머문 사람들 의견을 듣는 것이었다"며 "주민 30여명을 한자리에 모아 서배너에 필요한 게 무엇인지, 만약 자신이 발전소를 갖고 있다면 어떤 사업을 추진할지 등을 물었다. 그렇게 여러 차례 모임을 갖고 전체적 구상안을 수립하기까지 2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구상안이 나왔지만 현실로 옮기는 것도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었다. 특히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화력발전소 특성상 오염을 정화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쏟아부어야 했다고 한다.
케슬러 회장은 "건물 곳곳에 스며든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데 50만 달러를 들였을 뿐 아니라 정화 작업 시간도 꽤 오래 걸렸다"며 "중간중간 작업이 지연되기도 했지만 서배너시 정부에서 (행정 절차와 관련해) 적극적으로 지원해줬기 때문에 지연이 장기화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플랜트 리버사이드 디스트릭트는 발전소 폐쇄로 한풀 꺾였던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완공 직전인 2019년 8월에는 이 시설에서 창출된 약 700개 일자리를 채우기 위해 지역에서 대규모 취업 박람회가 열리기도 했다.
특히 케슬러 컬렉션 측은 폐발전소를 복합 문화 공간으로 설계·개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공간에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 좋은 반응을 얻었다.
2021년 지역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으며 신도시주의 의회(Congress for the New Urbanism·CNU)로부터 차터(charter) 어워드 대상을 수상했으며, 같은 해 서배너 역사재단에서 보존상을 받았다. CNU 차터 어워드는 건축·조경·도시 디자인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인 프로젝트를 시상하는 행사다.
케슬러 회장은 "플랜트 리버사이드 디스트릭트를 찾는 방문객들에게 과거에 이곳이 화석 연료인 석탄을 사용하는 화력발전소였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하고 싶어 실내에 공룡 장식을 달았다"며 "공간마다 테마를 입혀 운영 중이며, 호텔 객실의 80%가 찰 정도로 많은 사람이 방문하고 있다"고 했다.
/글·사진 이아진 기자 atoz@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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