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창고는 찜통, 계단은 고문···폭염 속 택배 노동자의 분투

강주비 2025. 7. 23.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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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에 내몰리는 사람들 - ④이동노동자
야외 물류창고 분류 작업
화재 날까 선풍기도 '눈치'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서
40㎏ 수레 끌고 계단 올라
'땀 범벅'돼도 휴식은 꿈
산업안전규칙 현실성 없어
15일 오전 광주 광산구 진곡산단의 한 물류창고에서 택배 기사 김완씨가 물류를 옮기고 있다. 강주비 기자

"올여름에만 택배 노동자 3명이 돌아가셨어요. 앞으로 더 더워질 텐데, 이 일을 어떻게 계속해야 할지 걱정되죠."

15일 오전 광주 광산구 진곡산단의 한 택배 물류창고. 비교적 서늘한 아침이지만, 14년 차 택배기사 김완(58)씨는 이미 온몸이 땀으로 젖은 채 분류 작업에 한창이었다.
15일 오전 광주 광산구 진곡산단의 한 물류 창고에서 택배 기사 김완씨가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강주비 기자

그의 하루는 오전 7시30분, 키보다 높게 쌓인 수백 개의 택배를 목적지별로 분류하는 일로 시작된다. '창고'라고 불리지만, 사실상 사방이 뚫린 노천 작업장이다. 비와 눈을 막기 위해 쳐놓은 얇은 천막은, 바닥에서 올라오는 폭염의 열기까지는 막아주지 못한다.

김씨는 "예전엔 벽에 걸린 작은 선풍기 하나가 전부였는데, 1년 전에야 대형 선풍기가 들어왔다"며 "그마저도 불 날 수 있다고 눈치를 줘 마음대로 틀지도 못한다. 분류 작업만 해도 땀에 옷이 흠뻑 젖는다"고 말했다.

이날은 특히 바쁜 화요일. 주말 동안 밀린 물량으로 택배는 평일보다 약 30% 많았다. 320여 개의 상자를 트럭에 모두 실었을 때는 오전 11시. 장장 세 시간 반의 고강도 노동이 끝났지만, 김씨는 쉴 틈도 없이 곧장 배송지로 향했다.

운전석에 오른 그는 "분류 작업에서 에너지를 다 소모하고 배달을 나가면, 여름엔 정말 쓰러질 것 같다"고 털어놨다.

김씨는 4년 전에도 과로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다. 그날도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여름이었다. 그는 팔에 난 상처를 가리키며 "'빨리 해야 한다'는 생각에 아파도 아픈 줄 모르고 일을 한다. 쓰러졌던 날도 마찬가지였다"며 "이 상처도 퇴근하고 나서야 피가 난 걸 보고야 알았다. 언제, 왜 다쳤는지도 모를 때가 부지기수"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15일 오전 광주 남구 월산동 한 도로에서 택배 기사 김완씨가 수레에 물류를 싣고 있다. 강주비 기자
15일 오전 광주 남구 월산동 한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에서 택배 기사 김완씨가 40㎏에 달하는 물류를 실은 수레를 끌며 계단을 오르고 있다.

첫 배송지는 남구 월산동의 한 병원. 엘리베이터가 있어 비교적 수월했다. 이런 경우 평균 배송 시간은 3~5분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엘리베이터가 없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김씨가 곧이어 향한 곳은 불행히도 엘리베이터 없는 4층 사무실이었다. 김씨는 40kg에 달하는 A4용지와 사무용품을 실은 수레를 온몸을 써 계단으로 끌어올렸다. 1층만 올라가도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그는 "지체되더라도 이렇게라도 잠깐 허리를 펴지 않으면 안 된다"며 한숨을 푹 쉬었다.

월산동처럼 낡은 건물이 많은 지역은 택배 기사들 사이에서도 '기피 구역'으로 불린다. 김씨는 "지역마다 특성이 있는데, '쉬운 곳'을 맡으면 상대적으로 노동 강도가 낮고, 어려운 지역은 너무 힘들어 기사들이 금방 그만둔다"고 말했다.

가장 힘든 시간대는 햇볕이 가장 뜨거운 오후 2시부터 5시 사이다. 그러나 숨 막히는 더위 속에서도 '휴식'이라는 선택지는 없다. 김씨는 "점심조차 편히 먹을 수 없어 김밥 한 줄로 끼니를 떼우는데, 어떻게 쉴 수 있겠나"라며 "탈수 오지 않게 물을 들이키는 몇 초가 유일한 휴식"이라고 했다.

정부는 지난 11일 체감온도 33도 이상 시 2시간마다 20분 이상 휴식을 보장하도록 한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규제개혁위원회에서 통과시켰다. 그러나 김씨 같은 현장 노동자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김씨는 "오후 10시 이후엔 배송 완료 처리를 시스템상 못 하게 돼 있어, 그 전에 다 끝내려면 더 서둘러야 한다. 처리 못한 물량은 다음날로 누적되고, 악순환만 반복된다"며 "이런 상황에서 휴식 보장 규칙이 지켜질 수 있을리 없다"고 말했다.

4층 사무실에 배송을 마친 김씨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배송 예정 시간을 맞추려면 분초를 다퉈야 해요. 아무리 더워도 쉴 수 없어요. 그저 '버티는 것'만이 우리들의 생존 방법입니다."

강주비기자 rkd98@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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