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소고기 수입 문턱 낮추나… 농식품부 ‘안 된다’ 하지만 막판 카드 활용 가능성도
의무수입 쌀 중 미국산 비중 늘릴 가능성도
‘연료용 농작물’ 수입 확대 가능성 제기

한미 통상 협상전에서 쌀과 소고기 같은 ‘민감 품목’이 협상 카드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국민 먹거리와 농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두 품목에 대해선 ‘시장 개방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통상 당국에선 협상 상황에 따라 막판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특히 22일(현지시각) 타결된 미일 관세 협상에서 일본이 쌀 쿼터 내 미국산 비중을 확대하기로 하면서, 한국을 향한 미국의 쌀 시장 개방 압력이 거세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3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포함한 통상 관계 주요 부처 장관들이 미국을 잇따라 방문해 고위급 통상 협의에 나선다. 미국의 상호관세 유예 시간 종료 일주일 전 열리는 사실상 최종 담판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는 전날 구 부총리가 주재한 대외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산업·디지털·친환경 분야 대응책과 함께 농산물 이슈에 대해서도 기초적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정부가 내부적으로 검토했던 농산물 협상 대상 카드에는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소고기, 쌀 등 민감도가 높은 품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농식품부는 공식 의제로 쌀과 소고기 등 민감 품목에 대한 논의가 협상 테이블에 올라가지 않도록 방어하고 있는 상황이다.
농가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식량 주권과도 연결되는 사안이어서 개방 검토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노력하겠다는 것이다.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농가 경제 영향과 통상 파장을 고려해 두 품목을 ‘레드라인’으로 정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소고기의 경우 2008년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통해 30개월 미만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허용한 이후, 한국은 미국산 쇠고기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가 됐다. 그럼에도 미국은 30개월 이상 수입 제한을 지속적으로 문제 삼아왔다. 다만 현행 가축전염병예방법은 광우병이 5년 이내 발생한 국가의 소고기에 대해 수입을 금지하고 있어, 법 개정 없이는 협상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다. 미국에선 지난 2023년 5월 22일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도축장에서 광우병(BSE)이 발생한 바 있다.
쌀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은 WTO 쌀 협상에 따라 미국, 중국, 호주, 태국, 베트남 등 5개국에 연간 40만8700톤의 무관세 수입물량(TRQ)을 배분하고 있다. 이 중 미국산은 약 13만2000톤으로 전체의 32% 수준이다. TRQ 자체를 유지한 채 미국산 비중만 늘릴 경우 형평성 논란과 WTO 협정 위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미일 관세 협상 결과로 인해 상황이 다소 복잡해졌다. NHK 보도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미국과의 협상에서 연간 77만톤 수준의 미니멈 액세스(의무 수입) 총량은 유지하되, 미국산 비중을 실질적으로 확대하는 데 합의했다. 일본은 이미 2023년 기준 34만톤 이상의 쌀을 미국으로부터 수입하고 있는데, 이번 합의로 태국, 호주 등 다른 수출국의 몫은 줄어들게 된다.
한국 정부 내에서도 일본식 협상 모델, 즉 총량은 유지하면서 미국산 쿼터 비중을 늘리는 방식이 협상 카드로 거론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정부 관계자는 “이론적으로는 비중 조정이 가능하나 정치적 부담이 크다”면서 “쌀과 쇠고기는 국민 정서와 직결된 민감 사안인 만큼 협상 카드로 활용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했다.
현재 정부는 협상 파급력이 큰 쌀과 소고기 대신, 연료용 옥수수 등 상대적으로 민감도가 낮은 품목을 중심으로 협상 지렛대를 조정하는 방향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바이오에탄올 원료로 활용되는 옥수수는 이미 국내에 수입 유통망이 형성돼 있어, 추가 개방 여지가 있는 품목으로 분류된다. 이 외에도 미국이 요구해 온 사과나 유전자변형(LMO) 감자 등은 과학적 평가와 절차를 거치면 통상 협상과 별개로도 수입이 가능한 품목으로 분류된다.
정부는 미국의 요구 강도나 다른 산업 분야의 협상 여지를 고려해 접근할 방침이다. 이날 출국 길에 기자들과 만난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관세 협상 결과가 우리 경제에 미칠 수 있는 파급력이 큰 만큼, 정부는 우리 산업 전반의 민감성 등을 면밀히 고려하여 철저히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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