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역기 들고 공부하는 ‘95세 청년’ 권노갑, 그가 매일 성장하는 비결
2년 전 ‘백돌이’… 올해엔 70타 기록
83세때 석사 이어 박사 과정도 수료
“42년 전엔 당뇨... 지금은 말끔해
요즘 몸과 마음이 가장 건강하다”

권노갑(95) 김대중재단 이사장은 “유튜브는 내 일생 처음”이라며 쑥스럽게 웃었다. 권 이사장이 22일 한국일보 시사유튜브 ‘이슈전파사’에 출연했다. 스튜디오에 들어선 그의 허리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꼿꼿했다. 쉰세 살에 생긴 당뇨를 식이요법과 운동으로 이겨냈다는 그의 몸은 그때보다 훨씬 좋다. 키 173㎝에 63㎏를 유지 중이다.
◇연관 검색어로 ‘골프’ ‘영어’ 뜨는 이유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정치역정을 함께한 그의 이름 옆엔 한 때 DJ나 동교동계 말고도 ‘정치자금’ ‘구속’ ‘사면ㆍ복권’ 같은 단어들이 따라다녔다. 요즘엔 아니다. 포털이나 유튜브에 그의 이름을 치면 ‘골프’ ‘영어’가 연관 검색어로 뜬다. 지난 달 권 이사장의 골프 실력이 알려져서다. 샷이글에 버디 5개를 치며 70타를 기록했다는 소식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골프뿐만이 아니다. 매일 체육관에 가서 2시간씩 운동한다. “아령은 200개, 역기는 30개를 해요. 하체 운동에 집중하고 자전거로 유산소 운동도 해요.”
골프, 영어와 함께 연관 검색어로 등장하는 흑염소 고기 얘기도 물으니 멈칫 한다. “앞선 인터뷰에서 흑염소 고기를 먹는다는 얘기를 했더니 나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전화를 해서 ‘라면도 먹기 힘든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생각해야 한다’고 주의를 주더라”는 것이다. 그는 “운동만 하고 먹는 걸 잘 챙기지 않으면 근육이 생기지 않는다. 나는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도 잘 먹지만 흑염소 고기가 근육을 만드는 데 가장 좋은 음식이다. 그만큼 신경 써서 단백질을 먹는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는 흑염소 고기를 탕으로 즐겨 먹는다.
◇“매일 공부해 느끼는 기쁨과 희열… 행복해”

이미 83세에 한국외대 개교 이래 최고령으로 석사 학위(영문학)를 받은 그는 올해 초엔 같은 대학에서 박사 과정도 수료했다. 지금은 박사 논문 자격 시험을 보려고 공부하고 있다.
꾸준함이 그를 매일 성장시키고 있는 거다. “그게 저도 신기해요. 공부할수록 실력이 늘고, 또 늘고… 그래서 배우는 기쁨이 커요. 성취감이 생기고 그것이 자신감이 되고 ‘하면 된다’는 의지가 돼요. ‘내가 왜 이런 것을 몰랐던가. 공부를 안 했더라면 어떻게 알 것이냐. 얼마나 행복하냐’ 싶어요. 그때마다 희열과 기쁨이 느껴져요.”
◇“신문을 보지 않으면 정치할 자격이 없다”

정치 일선에 있을 때부터 몸에 밴 루틴도 유지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무조건 신문을 다 봐요. 아침에 그리고 체육관에 가서도. 영자 신문도 봐요. 김대중 대통령이 신문은 진보, 중도, 보수 할 것 없이 다 보고 사설에 만평까지 보라고 하셨어요. ‘신문을 안 보는 사람은 정치할 자격이 없다’고요.”
골프는 정치의 일환으로 시작했다. “처음 할 땐 3일 연습하고 필드에 나갔어요. 정치인들하고 운동으로 친목을 도모하고 저녁에 술도 한잔 함께하면 진실된 속마음을 털어놓게 돼요. 그렇게 여야 간 대화와 협력과 양보가 된 거예요.”
골프 실력이 훌쩍 늘어난 건 2년 전이다. “그때만 해도 백돌이(100타 이상 골퍼)였는데 (라운딩을 돕던) 캐디가 내게 ‘허리는 안 돌아가고 손만 올라간다’고 지적하는 걸 듣고 고쳐보니 달라지더라고요. 그 길로 서점에 가서 골프 책을 사서 공부했어요.”
◇생전 DJ “노갑이는 비단이여”

DJ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나중에 죽으면 묘비에 ‘김대중 대통령의 영원한 비서실장 권노갑’이라고 새겨달라”고 할 만큼 김 전 대통령과 고락을 함께한 동지다. 언론은 그를 동교동계 맏형 또는 좌장이라고 불렀다.
‘김 전 대통령과 40년 인연 아니냐’ 물었더니, “아니다, 60년이 넘는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형님을 알았다”는 것이다. 한국인 학생과 일본인 학생이 반반이었던 그 시절 소년 김대중은 목포상업학교(목포상고)에서 학업에 운동 실력까지 출중해 유명했다. “일본인 선생들이 ‘너희 선배 김대중이는 앞으로 일본을 위해서 큰 인물이 될 것이다’라고 할 정도였으니, 우리 조선 학생들은 김대중이라는 사람을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정치 동지가 된 건 1961년 강원 인제 보궐선거 때다. 목포여고 영어교사이던 그는 일까지 그만두고 인제로 달려가 DJ를 도왔다. 정치 역경을 함께하게 된 출발점이다. 생전 “노갑이가 사람을 잘 본다” “노갑이는 비단이여, 권비단”이라고 했던 DJ는 그에게 조직과 공천, 자금 관리까지 맡겼다. 그 때문에 책임을 지고 혹은 억울하게 옥살이도 세 번 했다. 군부독재에 맞서다 투옥된 일까지 합하면 다섯 차례나 수감 생활을 한 것이다.
“나는 김대중을 위해서 살았고, 김대중을 위해서 청춘을 바쳤어요. 온갖 유혹과 협박에도 그리고 중앙정보부에서 물고문, 몽둥이찜질을 당하고도 지켜낼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양반만이 이 나라를 발전시키고 국민의 행복을 위할 수 있다는 신념이 내 몸과 정신에 배어 있었기 때문이에요.”
◇“갑질 논란 강선우, 자진 사퇴해야”
참모나 보좌진을 넘어선 정치적 동반자의 관계다. 혈육 이상의 피를 나눈 사이. 그런 그가 요즘 연일 신문에 도배되는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보좌진 갑질 논란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했다. 그는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이기도 하다.
“강 후보자가 대통령의 부담을 덜어줘야 돼요. 자기 욕심을 버리고 스스로 (사퇴해서) 대통령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정치인이 할 도리예요. 여당 지도부도 문제예요. 여당 지도부가 대통령한테 바른말을 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 입에 오르고 내리는 이런 일을 여당 지도부가 대통령한테 바르게 말하지 못하는 것은 지도부에 큰 책임이 있어요. 이런 것이 쌓이고 쌓이면 결국 민주당이 대통령에게 누를 끼치게 돼요. 보좌진을 가족처럼 생각해야 돼요. 나를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고 도운 사람들입니다.”
◇“대통령 주변에 바른말 하는 사람 있어야”

대통령실의 참모진에도 할 말이 있을까. “대통령 주변에 바른말을 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 돼요. 나는 김대중 대통령하고 형제 관계였어요. 상하 관계가 아니었어요. 그러니 터놓고 바른 말을 할 수가 있었어요. 누가 어떤 말을 하지 못하면 나한테 (대신 해달라고) 와요. 가서 얘기하면 대통령도 내 말을 다 알아 들어요. 그러니까 대통령이 ‘노갑이 저 사람은 나한테 항상 바른말을 한다’면서 ‘그런데 이 사람아, 내 사기가 죽지 않을 만큼만 해’라고 하시곤 했어요.”
요즘 여야에도 한마디를 보탰다. “정치는요, 상대방을 적대시하면 안 돼요. 국민과 국가를 위해서 정치를 잘 하려고 하는 동반자로 봐야 돼요.”
DJ가 가장 빛을 받을 때 그는 애석하게도 함께하지 못했다. 대통령에 당선된 1997년 12월엔 수감 중 병보석으로 병원에 있었고, 노벨평화상을 받던 2000년 12월엔 ‘권노갑 2선 후퇴론’이 제기돼 “당을 수습하라”는 DJ의 명으로 한국에 남아야 했다.
“연미복도, 보타이도 다 내가 준비했고 비행기만 타면 되는데 가질 못했어. 나는 좋은 건 한 번도 못 했어요. 그래도 서운한 거 없어요. 나는 뭣이 되기 위해서 한 것이 아니고 오직 김대중 대통령이 하겠다는 그것만을 위해서 산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뭐 출세하고 이것은 바라지 않았어요.”
그의 눈동자에 이슬이 스쳤다.
1인자의 최측근인 탓에 생긴 악연도 그는 푼 지 오래인 듯했다. “참았어요. 오히려 용서하고, 오히려 도와줬어요.”
◇치매 앓는 부인엔 “지금도 예쁜 내 아내”

권 이사장은 “지금이 제일 행복하다”고 했다. “내 나이에 젊은이 못지않게 운동하고 건강하고 공부하고 만족감을 느끼잖아요.”
젊은 세대엔 이렇게 당부했다. “자기 입맛에 맞는 유튜브만 보지 말고, 그 반대의 유튜브도 보고 비판하는 이유도 살피고 생각하면 좋겠어요. ‘살면서 좋은 것만 하지 마라, 쓴 것도, 단맛도, 매운맛도... 모든 것을 맛보라’고 하고 싶어요.”
카메라가 꺼진 뒤 그는 “내 아내 얘기를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박현숙 여사다. 그 시절 경기여고를 나와 이화여대 서양화과를 다니다 미국 뉴욕의 FIT(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공부한 재원이었다. 이희호 여사의 소개로 권 이사장을 만났는데 세 번이나 퇴짜를 놓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박 여사는 결국 아버지의 권유로 결혼했다. 이회창 전 총재 부인, 이수성 전 국무총리 부인, 고건 전 국무총리 부인 등이 경기여고 44회 동기다. “치매지만, 괜찮아요. 대화가 잘 돼요. 원래도 미모였지만, 여전히 예쁘고 지금도 사랑해요. 오늘도 유튜브 방송하러 간다고 자랑했더니 잘하고 오라고 했어요. 나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어요.”
촬영 후 그는 제작진과 일일이 악수하며 “감사합니다”라고 정중히 인사했다. 인터뷰 서두엔 “그 무엇보다 계속되는 호우로 많은 사상자 그리고 이재민이 발생해서 그분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하루속히 이재민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노력해주길 간절히 부탁한다”고 말했다. 공직에 있었던 사람의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매일 배우고, 매일 성장하는 권노갑 이사장. 그에게 새 수식어를 붙여야 할 것 같다. ‘95세의 청춘, 권노갑’.
인터뷰 풀 영상은 유튜브 ‘이슈전파사’에서 볼 수 있다.
김지은 콘텐츠스튜디오팀장 luna@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속보] 트럼프 "일본과 무역 합의, 상호관세율 25→15%로 인하" | 한국일보
- [단독] 건진법사, 통일교 키맨에 "비례대표 약속, 여사님이 신경" | 한국일보
- 특검, 통일교 본부서 '김건희 다이아 목걸이' 영수증 확보 | 한국일보
- 손주들 앞서 아들 총기 살해… 전문가들 "전처 향한 분노·자괴감 폭발한 듯" | 한국일보
- 기초수급자 낙인? 민생지원금 선불카드 논란에 온라인 갑론을박 | 한국일보
- "1972년 박정희 계엄, 북한은 이미 알았다"... 김대중의 일기 223편 출간 | 한국일보
- 이 대통령, 재난 중 '음주가무' 구리시장 직격... "정신 나간 공직자 엄히 단속해야" | 한국일보
- 리더는 없고 강성만 득세... 국힘에 엄습한 '자유한국당 그림자' | 한국일보
- 대통령실, 이진숙 방통위원장 휴가 신청 반려... "재난 상황서 부적절" | 한국일보
- 수해 복구 '올인'하는 여야 지도부... 강선우 리스크, 혁신위 내홍 시선 돌리기? |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