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밥 · 목욕탕 즐기는 K 아이돌… ‘현실고증 끝판왕’에 세계 열광[Who, What, Why]

안진용 기자 2025. 7. 23.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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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y - ‘케이팝 데몬 헌터스’ 돌풍… 왜?
악령 퇴치하는 걸그룹 이야기
美서 제작… 한달새 8000만뷰
음원차트서 BTS·블핑 앞질러
김밥·호떡·라면먹는 등장인물
목 아플땐 한의원서 치료 받고
소파 놔둔채 바닥 앉는 모습도
한국계 크리에이터 연출 중심
이민자의 보편적 애환도 다뤄
K-팝 걸그룹을 소재 삼은 넷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대표적 K-푸드인 컵라면이나 과자를 곳곳에 배치하고, 한국의 민화 속 동물을 캐릭터화하는 등 한국적 색채를 담았다.

“가상 K-팝 밴드가 방탄소년단(BTS)과 블랙핑크를 이겼다.”

최근 영국 BBC가 게재한 기사 내용이다. 이는 현실이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공개 한 달 만에 8000만 조회 수를 기록하며 영화 흥행 순위 1위(플릭스패트롤 기준)에 오른 데 이어 이 작품에 등장하는 가상 K-팝 그룹 헌트릭스와 사자보이즈가 부른 노래가 미국 빌보드차트, 스포티파이 등을 석권했다.

아울러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메이드 인 USA’ 콘텐츠라는 점에서 K-팝을 행하는, 그리고 이를 활용하는 주체가 꼭 ‘한국인’일 필요는 없음을 알 수 있다. 이는 K-팝의 확장성 측면에서는 청신호지만, K-팝 시장을 이끌며 정체성을 지켜오던 국내 크리에이터들에게는 적신호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한국인이 만든 콘텐츠보다 더 한국적인 콘텐츠로 각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의, 한국을 위한, 한국에 의한 ‘케이팝 데몬 헌터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흥행은 K-팝의 세계적 인기와 맞물려 있을 뿐 아니라 호기심을 자극하는 ‘가장 한국적인 것들’의 총집합이라는 점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소니픽처스 애니메이션이 제작한 미국 영화이지만 한국계 및 한국인 제작진과 배우들이 참여하면서 K-컬처에 대한 뛰어난 고증과 동시에 외부인의 시선으로 균형도 잡았다는 평가다.

우선 넷플릭스를 통해 안방에서 만나는 ‘싱얼롱 영화’로서 K-팝의 매력을 극대화한 수록곡이 돋보인다. 걸그룹 헌트릭스의 노래 ‘골든’(Golden)은 중독성 강한 멜로디와 긍정적인 가사로 지지받고 있다. 계속 흥얼거리게 돼 일찌감치 ‘수능 금지곡’으로 분류된 이 곡은 걸그룹 아이브의 노래 ‘아이 엠’(I am)과 비슷한 진행 방식을 가졌다. 흥행하는 K-팝의 문법을 따랐다는 분석이다. 전체적으로 영어 가사로 이루어졌지만 ‘어두워진 앞길 속에’ 등 한국어 가사가 포인트로 등장하는데, 그런 설정이 오히려 더 귀를 사로잡는다.

기존 K-팝을 적절하게 활용한 것도 주효했다. 사자보이즈 리더인 진우가 명동 골목길에서 헌트릭스와 처음 마주치는 장면에서는 멜로망스의 ‘사랑인가봐’가 흐른다. 이는 진우의 목소리 연기를 맡은 배우 안효섭의 출세작인 드라마 ‘사내맞선’ 속 장면을 오마주했다. 이 외에도 듀스의 ‘나를 돌아봐’, 엑소의 ‘러브 미 라이트’ 등 익숙한 K-팝 히트곡이 장면 곳곳에 배치됐다.

K-팝뿐 아니라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K-푸드, K-캐릭터, K-관광 등 한국이라는 나라의 호감 가는 면들을 총망라해 선물한다. 한국을 여행으로 방문했든 장기간 체류했든 각자가 경험한 한국을 확인할 수 있는 경험을 선사한다. 영화 초반 헌트릭스가 전용기에서 “탄수화물을 채워야 한다”면서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는 장면은 ‘일시 정지’를 누르고 봐야 할 정도로 차려진 음식의 가짓수가 많다. 컵라면, 꼬치어묵, 순대, 호떡빵, 김밥, 새우깡, 냉면, 봉봉음료 등 한국적 간식들이 상다리가 부러져라 올랐다. 헌트릭스 멤버들이 소파를 등받이로 삼아 바닥에 앉고, 기력을 회복하기 위해 한의원을 찾는 모습도 지극히 한국인스럽다. 스타디움에서 노래 ‘하우 이츠 돈’(How It’s Done)을 성공적으로 선보이고 숙소에서 즐기는 디저트는 빙수와 버블티다. 이 역시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하다. 무엇보다 루미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라이브방송을 펑크낸 뒤 미라와 조이가 그녀를 국밥집으로 인도한 장면은 그야말로 ‘뜨뜻한 국물이 곧 위로’인 한국 문화의 진수라 할 만하다.

전통문화적 요소가 등장하는 부분은 한국에 대한 외국인들의 호기심을 증폭시킨다. 헌트릭스의 로고는 노리개 매듭 디자인에서 영감을 얻은 문양이고, 셀린이 루미·미라·조이를 모아두고 이야기를 하는 장소는 서낭당이다.

과거부터 악령을 퇴치하는 원조 헌터들이 무당이었다는 점도 눈에 띈다. 루미와 진우 사이의 메신저 역할을 하는 호랑이 더피와 까치 서씨는 한국의 민화 호작도 속 이미지와 매우 유사하다. 실제로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공개된 후 국립중앙박물관의 호작도 관련 상품이 연일 품절되는 사태를 빚었다.

해학을 담아 꼬집은 한국인의 한의원 사랑도 주목된다. 조이는 루미의 목소리를 복원하러 한의원에 가자고 꼬드기며, ‘스페셜 토닉’(한약)은 “목감기부터 정서적인 면까지 모두 치료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스쳐 가는 풍경들도 고증이 완벽하다. 서울지하철은 분홍색 임산부석과 벽면 광고 자리의 위치까지 실감 나게 표현됐고, 대중목욕탕·명동 길거리·롯데월드타워가 보이는 서울의 야경이 반갑게 다가온다.

특유의 행동과 추임새는 한국을 한 걸음 더 배울 수 있는 재료다. 헌트릭스는 뜨거운 목욕탕에 함께 몸을 담가 피로를 풀고, 냅킨을 깔고 수저를 얹는다. 무대로 향하며 서로를 격려하는 말은 “가자 가자 가자”다. 또 진우가 루미와 어깨를 부딪히고 “아, 씨” 하며 어깨를 털어내는 장면이나, 아이돌 그룹 간에서 서로를 “후배”와 “막내”로 부르고, 대중 앞에서 (욕먹지 않기 위해) 최대한 공손하려 경쟁적으로 고개를 깊이 숙이는 모습에서도 ‘한국식 예절’을 엿볼 수 있다.

한국을 소재 삼았지만, 돈을 버는 주체(배급·제작)에서 한국은 배제됐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 자본으로 미국 회사가 만들었기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올 것이 없음은 당연하고, 오히려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에 한국을 알릴 기회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이 돋보인다. 또한 K-팝을 비롯한 한국적 소재가 더 이상 한국인만 다룰 수 있는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도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주는 ‘레슨’이다.

◇한국인의 피…디아스포라·경계인의 애환 다루며 공감대 형성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큰 줄기는 선(善)을 추구하는 헌트릭스와 악(惡)을 대변하는 사자보이즈의 대결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주인공 루미와 진우가 있다. 루미는 헌터와 악령의 사랑으로 태어난 아이다. 그래서 악령을 쫓는 퇴마사 역할을 하면서도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감춰야 한다. 진우 역시 사자보이즈의 리더지만 가슴 아픈 가족사를 품은 인물이다. 적대적 위치에 서 있으면서도 두 캐릭터가 교류하며 감정을 나누는 것은 이런 ‘경계인의 삶’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최근 세계 곳곳에서는 국적, 인종, 성별, 민족의 경계를 뛰어넘으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오프라인의 경계는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제약 없는 소통 속에 점차 흐릿해지는 모양새다. 하지만 그를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진통은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이처럼 차별적 시선 속에서 설움과 핍박의 역사와 아픔을 지닌 모든 디아스포라(이민자)의 애환을 다룬 이야기에 힘이 실린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한국계 크리에이터들이 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연출한 매기 강 감독은 한국계 캐나다인이다. 헌트릭스의 3인방 역시 루미 역의 아든 조, 미라 역의 메이 홍, 조이 역의 유지영 등 한국계 미국인으로 구성됐다. 진우를 연기한 안효섭 역시 캐나다에서 자랐다. 유년 시절,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을 비롯해 H.O.T.의 팬이었다는 매기 강 감독은 “어릴 적부터 다양한 아시아 문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보면서, 항상 ‘한국 문화를 보여주는 애니메이션을 보고 싶었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처음 떠오른 것은 한국의 풍부한 신화, 그중에서도 초자연적인 세상을 다루는 악마학이었다. 멋진 K-팝 걸그룹이 비밀리에 악당을 물리치고 세상을 구하는 상상을 하게 되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한국계 크리에이터들이 이민자의 자녀로서 성장하며 겪은 경험들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 속 인물들의 감정을 연기하는 자양분이 됐다. 경계인의 아픔을 온몸으로 표현한 루미 역을 맡은 아든 조는 최근 문화일보와 만나 “매기 강 감독부터 헌트릭스 멤버 모두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 이 작품은 K-팝을 중심으로 한국인이 가진 정과 유대감, 이를 활용해 위기를 극복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면서 “이 작품은 제 아이덴티티(정체성)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한국계 크리에이터가 제시하는 디아스포라는 이제 글로벌 스탠더드가 됐다. 배우 윤여정에게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안긴 ‘미나리’를 연출한 한국계 미국인 정이삭 감독은 “미나리는 ‘가족 간의 사랑’을 의미한다. 미나리의 질긴 생명력과 적응력처럼, 딸과 아들 세대가 행복하게 꿈을 심고 가꾸길 바라며 온 힘을 다해 살아가는 한국 가족의 보편성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역시 한국계 미국 작가인 이민진의 동명 소설을 영상으로 옮긴 미국 애플TV+ ‘파친코’(Pachinko)는 일제강점기 후 일본과 미국으로 건너간 한국 이민 가족 4대에 걸친 고된 삶과 정체성을 다루며 모든 디아스포라를 향한 헌사라는 평을 받았다.

앞선 작품이 디아스포라 소재에 다소 무겁게 접근한 반면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K-팝을 전면에 내세워 젊은 층도 보다 쉽게 소비할 수 있는 영리한 선택을 했다. 이 작품의 성과에 대해 미국 버라이어티는 “내년 아카데미 애니메이션 장편 부문 후보에 들어야 할 가치 있는 경쟁작”이라며 “역동적이고 색채로 가득한 뮤지컬 여정은 애니메이션적 미학과 K-팝적 요소를 결합해 여성성과 문화적 자긍심을 기념하는 즐거운 축제였다”고 호평했다.

안진용·이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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