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정거장에서 만난 두 시대의 사랑

양영수 2025. 7. 23.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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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수의 스마트소설] 25. 버스 정거장에서
'2014년 4.3평화문학상 수상자' 제주 원로 소설가 양영수 씨가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분량은 짧지만 반전과 여운을 남기는 꽁트 소설을 격주로 [제주의소리]에 연재한다. 일명 '양영수의 스마트소설'이다. 모바일 인프라가 널리 보급된 시기에, 스마트폰으로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꽁트를 독자들에게 소개한다는 취지다. [편집자 주]   
AI생성 이미지.

나는 추운 날씨 때문에 버스 정거장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밤이 되면서 추운 날씨가 더욱 심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걸음을 재촉하는 중에 나의 눈길이 무심결에 오른 쪽으로 난 골목길로 돌려진 것은 그 쪽에서 보이는 이상한 광경 때문이었다. 젊은 남녀 두 사람이 서로 어깨를 꼭 껴안은 채 얼굴을 마주 대고 이제 막 입술을 갖다대려는 참이었던 것이다. 바쁜 발걸음을 멈춰 세울 만큼은 나의 직감이 재빨리 작동한 셈이다. 나는 못 볼 것을 훔쳐봤다는 생각에 얼른 고개를 돌리고 말았지만, 순간적으로 나의 머릿속에 각인된 이들의 모습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젊은 남녀가 같이 걸어가면서 손을 마주 잡거나 팔짱을 끼는 광경이 나의 시선을 끄는 경우는 있었지만, 이렇게 대담한 키스 장면까지 연출하는 모습을 본 것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성 문화 개방 시대의 현장이라 싶어서 정거장으로 걸어가는 나의 머릿속에는 이들 대담한 젊은 남녀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넓은 한길을 벗어나 외진 곳이고 남들의 시선에 쉽게 노출되지 않을 장소에서 이런 감정표현을 하고 있다는 것은, 이런 행동이 갑자기 일어난 충동적인 것이 아니라, 몇 번이고 해본 경험을 기초로 미리 계획된 것임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버스 정거장에 도착해 보니 버스 도착 시간이 10분 가까이나 남아있었다. 버스정거장에 빈 자리 남은 곳을 찾아 앉았는데, 방금 전에 잠깐 훔쳐보고 지나온 연애장면이 불러일으키는 생각들이 아직도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이들이 보여준 성 문화의 자유화도 문화선진국 현상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생각은 대담하고도 진취적이어서 보수주의 문화론자들을 빈정대기 잘하였다. 성 도덕이 문란해짐을 비판적으로 보는 까탈스러운 보수주의자들은 대개 중년 나이 이상의 연령층인데 그들은 자기네가 누리지 못하는 생명의 축복을 아쉬워하는 나머지 그렇게 옹졸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요즘처럼 급격한 문화변동의 과정은 안정적인 사회발전의 동력을 와해시킨다는 것이 보수주의자들의 논리이지만, 이들의 속마음은 뜨거운 열정을 분출하는 데에 여념이 없는 젊은 세대를 시샘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로서는 어느 쪽 사람들이 옳은 것인지 헷갈린다. 자유화가 좋다고 해도 급진적인 변화는 지양해야 되고 한 사회 안에서 보수와 진보의 극렬한 대립만은 피해야 한다는 어중치기 입장이 되어버린다. 중등학교 교장 자리에 있는 나의 친구 하나는 분명히 보수주의자임을 자임한다. 아이들이 인생사를 바라보는 시각에 안정성이 있어야지 요즘처럼 풍기 문란한 사회에서는 아이들의 정서생활이 혼란스러워지기 쉽고, 학습능력을 비롯한 정신생활 전반의 에너지가 중심을 잃어버린다는 주장이다. 이 친구가 아까와 같은 연애장면을 봤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무슨 비명 소리를 지르든가 해서 그네들이 풍기 문란의 선두주자임을 똑바로 깨닫게 했을 것이 아닌가. 이와는 달리 나의 다른 친구 하나는 대립되는 세계관 여럿이 공존하는 사회의 장점을 강조한다. 아이들에게 유연한 사고력과 개척적인 세계관을 키워주기 위해서는 서로 대조되는 입장의 인간성 해석을 최대한 허용해야 한다는 것인데, 아마도 첨단기술을 활용해야하는 벤쳐사업체 운영이라는 그의 당면 과제에서 나온 생각일 것이다. 어떤 대담한 문화비평가는 퍽 재미있는 주장을 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남자는 섹스를 원하고 여자는 사랑을 원한다는 고전적인 잠언은 요즘 세상에서는 이성관계의 단초에서만 해당된다는 것이다. 연애관계가 시작될 때에는, 공세적인 남성의 주도로 수세적인 여성의 잠자던 욕망을 깨우는데, 일단 개시된 이성관계에서는 남자에게도 안정적인 사랑이 필요하고 여자에게도 긴장된 성욕 충족이 요구됨으로써 성숙된 관계에 이른다는 주장이었다. 결국에는 넘치는 성욕 발산의 계기가 된다는 입장이었다.

내가 앉은 자리의 바로 앞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어서 나는 얼른 좌석을 비우고 일어섰다. 나이가 70세는 족히 넘었을 할아버지와 할머니였던 것이다. 이들은 열선이 내장된 앉을 자리가 반가웠는지 양손으로 어루만지면서 조심스럽게 앉았다. 할아버지는 나에게 빙긋이 웃어 보였는데, 아마도 고맙다는 인사일 것으로 짐작되었다. 나는 이들의 바로 앞에 서있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노인들이 앉은 자태가 나의 시야 중심에 놓이게 되었다. 처음에는 얼른 눈치 채지 못했지만, 이들 노인의 모습은 여러 가지로 나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인상이 아주 대조적이어서 예사롭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할아버지는 말쑥한 복장이나 잘 정돈된 두발 상태, 젊은이의 살결에서나 보는 윤기 어린 색감과 속이 여문 질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할머니의 인상은 이와는 영 대조적이어서 나의 상상력을 시험하는 것 같았다. 얼굴에는 주름살이 깊게 패이고 윤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퇴색된 살결이었다. 외관상으로는 아직 생활능력이 철철 넘치는 할아버지가 정신 못 차리는 할머니의 보호자 같이도 보였다. 나는 무슨 조사할 사건이 있는 것처럼 시선을 그들의 손 부분으로 향했다. 이들의 손도 대조적이었다. 할아버지의 손등은 불쑥 튀어나온 팽팽한 정맥 핏줄이 이리저리 얽힌 모습이 그런대로 건강한 손등 피부처럼 보였지만, 할머니의 손등은 윤기있고 밝은 빛이 감도는 할아버지 손등과는 달리 어둡기만한 혈색이 마치 그늘진 곳에 오랜 세월 버려져있는 나무토막 색깔이었다. 

나는 이들 두 노인이 어떤 사람이고 지금 어디를 갔다 오느라고 버스에 동승하는 것인지 떠오르는 호기심을 어쩌지 못하여 이들이 주고받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들려주는 말은 그들이 오늘 이용한 버스 노선에 대해 대충 설명하는 이야기였다. 이들의 목적지가 무슨 재미있는 행사의 진행 장면이었는지, 유명한 관광명소였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아마도 그들이 오늘 다녀온 외출이 할머니에게는 과분한 감격과 영광으로 비쳐진 모양이었다. 잠시 말을 끊었던 할머니의 입에서 나온 말이 나에게는 그런 뜻으로 들렸던 것이다. 얼굴이나 손등의 어두운 살결에서 엿보이는 고단한 인생살이의 빛은 별로 없는 또박또박 분명하고 기운 찬 목소리였다. 

-제가 오늘 선생님에게서 과분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이런 나이에 말입니다. 

-나에게도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미숙 씨 손이 많이 차갑네. 

할아버지의 말이 나의 시선을 이들의 손 쪽으로 옮기게 만들었다. 어느 틈엔지 이들의 손 끝은 한 곳으로 모아져있었는데, 할아버지의 손이 쭈글쭈글한 할머니의 손을 조심스럽게 꼬옥 쥐고 있었다. 

나의 상상력이 끝간 데를 모르고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이들은 부부관계가 아닐 것 같았다. 이들이 부부생활을 했다면 적어도 3,4십 년 이상을 같이 살았을 텐데, 아무리 금슬이 좋았다 해도 그렇게 장구한 세월을 같이 살아온 여자의 손을 저렇게 조심스럽게 잡을 수가 있겠는가 싶었다. 밖으로 외출한 남녀 두 사람이 길을 가면서 손을 꼭 잡고 가고 있으면 그들은 부부 사이가 아니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이 말은 사실 그대로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이들 두 노인은 이렇게 늘그막에야 감격의 로맨스를 연출하다니, 그건 도대체 어떤 사연을 깔고 있다는 걸까. 그 오랜 세월 동안에는 연애할 기회가 그렇게도 없었단 말인가. 실패담이든 성공담이든 연애 경험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같이 엉뚱하고 어리숙한 관계가 될 수 있겠는가 싶었다. 이 같은 의문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양쪽에 대해 똑 같이 일어났다. 지금 이 나이에도 이 정도의 남성 매력을 가진 남자라면 젊은 시절 한창 때는 뭇여성들의 동경 대상이었을 텐데, 그 같이 풍성한 과거의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이 쭈그렁 할머니를 이처럼 알뜰하게 보듬어 줄 수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고 존경스러웠다. 이 쭈그렁 할머니로 말하면, 이처럼 처연한 얼굴 모습으로나마 한 남자의 영혼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것이 감동적이었다. 그것은 아마도 외관에서 안 보이는 비범한 정신력의 힘이었을 텐데 이 같은 힘이 그 오랜 세월에는 그대로 사장되었다가 이렇게 뒤늦게야 빛을 보았다는 말인가. 

나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오늘 목격한 일들을 다시 곰곰이 떠올려 보았다. 한 가지 새롭게 떠오르는 생각은 70대의 두 남녀는 20대의 두 남녀에게 크게 은혜 입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만약에 2,3십 년 전이었다면 인생의 끝자락에서 선 두 남녀가 버스 안에서 그렇게 대담하게 감정을 표출할 수가 있었겠는가 하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개척해 놓은 개방적인 성문화의 확산이 사회적인 공인을 얻어냈기에 노인들의 뒤늦은 로맨스 감행이 가능해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