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체크인] 신념보다 유연함, 말보다 행동…니키리·임지은 <애정 행각>

심가현 2025. 7. 23.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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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리와 임지은. MBN


나이 들수록 타인과 흥미로운 대화를 나누기가 쉽지 않다. 대부분은 밥벌이의 고충, 결혼, 부동산, 투자 등 생활 밀착 소재로 흐르고 결론은 힘들어도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식으로 수렴한다. 김 훈 작가의 말대로 '생활은 크다'. 먹고살기 바쁜 시대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가끔 공허하다. 삶의 요점과 생존법을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정체불명의 숏폼 영상들에 파묻혀 진짜 사유를 나누는 일이 아득해질 무렵 가슴뛰는 책 한 권을 만났다.

두 여성이 사랑, 예술, 삶과 죽음에 관해 만나고 어긋나기를 반복하며 끊임없이 대화한다. 낯선 생각도 상대의 삶에서 길어올린 것이라면 섣불리 판단하는 대신 경청하고 서로의 언어로 번역한다. 동의할 수 없는 생각일수록 더 반갑다. 스무살 나이차의 아티스트 니키리와 에세이스트 임지은은 그렇게 '재밌는 대화' 하나로 둘도 없는 친구가 됐다.

구어체를 살린 실감나는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둘 몰래 소파 한구석에 함께 앉아 오밤중 '이런 말 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로 시작하는 밀담을 엿듣는 듯한 기분이 든다. 공저로 펴낸 대담집의 제목은 <애정 행각>. 과한 애정 표현이라는 부정적 뉘앙스가 담긴 듯하지만 말뿐인 건 질색인 둘에게 '과유불급'같은 고리타분한 말은 통하지 않는다. '척'만 하느니 저질러 버리는 편을 택해야 한다고 믿는 둘과의 대화를 'John Legend - P.D.A (We just don't care)'를 들으며 복기해 본다.

<애정 행각>

'아님 말고'에서 시작된 인연…"성격 다를수록 대화 재밌어"

니키리 요즘 위로나 힐링, 조심스러운 조언을 전하는 책도 많은데 그런 걸 별로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다. 사회 분위기가 하고 싶은 말도 마음대로 못 하는 추세지 않나. 내 책은 차라리 도발적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고 싶은 말을 솔직하게 꺼내고 하고 싶은 걸 그냥 해버리는 거다. 애정을 '행각'하자, 행동하자. 서슴없이 나눈 이야기를 담은 책이었으면 했고, 우린 그렇게 행동하면서 살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둘의 우정도 니키의 박력 있는 애정 행각에서 시작됐다. 임지은의 SNS 글을 보고 반한 니키가 다짜고짜 만나달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이유는 단순했다. 재밌을 것 같아서.

임지은 엄청 긴 글이었는데 올릴 때만 해도 누가 그걸 그렇게 자세히 읽어줄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니키리 글이 굉장히 논리적이고 좋았고, 나도 글에 관심이 있었다. '이런 사람과 이야기하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메시지를 보냈고, 답이 안 오면 뭐…'아니면 말고'였다. (웃음)

니키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그렇게 친구가 된 지 7년차, 어떤 주제든 자유롭게 넘나드는 둘의 대화는 듣는 사람까지 매료시켰다. 북토크 현장에서 이를 지켜본 편집자가 출간을 제안했다.

니키리 출간 제안은 여러 차례 받아봤지만 모두 거절해왔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고 문학에 대한 존경심이 컸기 때문에 '감히 나 따위가 책을 내도 되나'하는 마음이 늘 앞섰다. 하지만 임 작가와 함께라면 '믿고 묻어갈 수 있겠다'싶었다. 공저라는 형식이 주는 안도감이 있었고 대담집이라는 형식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직접 글을 쓴다기보다 사고를 마음껏 풀어놓을 수 있지 않나.

임지은 그때부터 대화를 되는 대로 녹취했다. 뚜렷한 주제를 정해둔 게 아니었기에 일단 떠들고 재밌는 걸 추렸다. 주로 예술에 관한 이야기, 살아가며 자주 고민했던 주제들—문화, 예술, 사랑, 죽음 같은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추렸다. 책에 실리지 못한 대화가 훨씬 많다. 평소에도 혼자 듣기 아까운 이야기가 많았기에 개인적으로 나보다는 니키 비중이 더 컸으면 했다. 난 산문을 덧붙이면 그만이니까. 친구로서도 좋았지만 예술가로서 내가 좋아하는 니키의 면모가 더 드러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니키는 자신이 아티스트라는 확신에 괴로웠다고 털어놓지만 지은은 자신은 아티스트가 아니라고 확신한다. 니키는 현재에 집중하고 과거엔 관심도 없다고 말하지만, 지은은 어째 좋은 건 죄다 과거에 있는 것 같다. 성격도, 생각도 꽤 다른 둘을 친구로 만든 건 무엇일까.

니키리 성격이 확연히 다를수록 대화는 더 재밌지 않나. 성격이 달라도 삶을 바라보는 큰 가치관은 비슷할 수 있다. 자신만의 생각을 대화로 풀어내는 걸 즐긴다는 면에서는 결이 같다. 좋은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성격이 비슷해도 대화가 어렵다면 친구가 될 순 없다.

"재미없는 건 못 참아…생각만 하기보다 움직여야"

책의 절반은 예술에 관한 대화다. 좋은 예술이란 무엇인지, 그런 걸 알아보는 눈은 어떻게 길러지는지 깊이 토론한다. 예술가는 그저 '삶의 긴급함을 아는 조급한 사람들', 예술은 벽에 걸린 채 아름다움을 뽐내는 그림보다는 '벽에 박힌 못'에 가깝다는 비유도 신선하다. 평생을 예술가로 살아온 니키는 "재미없는 건 못한다"는 도발적인 선언으로 묘한 해방감을 안겨준다.

삶의 유한함을 자주 떠올린다는 니키. 새벽 4~5시의 어두운 화장실에서, 점점 늘어가는 흰머리에서도 죽음을 상기한다. 죽는 순간 떠오를 후회가 없었으면 하는 생각에 늘 움직인다던 책 속 내용을 언급하며 행동력의 근원을 물었더니 오해는 말라며 손사래를 쳤다.

니키리 마치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니 아침 7시에 일어나 운동하고, 8시에 설거지하고, 9시부터 청소하면서 하루를 쪼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전혀 그런 타입이 아니다. (단호) 매일매일을 무조건 '화이팅!' 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절대 아니다. 다만 내 인생이 무의미하게 흘러가 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거다. 핵심은 죽기 전 돌아볼 때 "정말 '내 인생'을 살았는가"라는 질문에 떳떳할 수 있는가다. 재미없는 건 절대 못한다. 내가 내 인생을 살아야 재밌다. 만일 내가 매일 누워만 지내는 게 내 인생이라고 스스로 믿는다면 그렇게 살아도 괜찮다.

그는 예술가에 대한 사회적 통념을 유쾌하게 배반한다. 지나간 장면을 오래 곱씹기보단 늘 단호하고 망설임이 없다. 신념은 딱히 없고 타협을 잘한다. 자연스러움보다 '인공미'를 좋아한다. 늙어가는 일이 결코 아름답지 않다고 고단해 하지만 그렇다고 젊어지고 싶은 것도 아니다. 지난 2020년 유퀴즈에서 주체적인 삶의 태도로 화제가 된 그지만, 이번엔 여성으로서의 대상화의 즐거움도 가감 없이 드러냈다. 파격적이고도 사적인 대화들이 활자로 박제되는 일이 두렵진 않았을까?

니키리 두렵지 않다. 책 속 내용도 사실 1~2년에 걸쳐 했던 말이라 초반부와 후반부의 말도 다르다. 하지만 두려워할 필요 없다. 생각은 달라질 수 있고, 그 순간엔 그랬던 거다. 그런 걸 신경쓰기 시작하면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오늘 했던 말에 책임을 진다는 식보다, 삶은 책임을 지며 살되 나의 사고는 달라질 수도 있다는 '유연함'을 열어놓는 일이 필요하다 생각한다.
유퀴즈는 일상을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출연한 것이고 이번 책은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데에 집중했다. 유퀴즈에서 내 모습을 처음 접한 사람들이 가끔 SNS를 보곤 "다른 사람 같아요"라고 하던데 같은 사람이다. 직장에서와 집에서의 모습이 다르듯 맥락에 따라 드러나는 면이 다를 뿐이다. 같은 사람 안에도 여러 모습이 있다.

임지은 기록됨으로써 다시 꺼내 얘기할 수 있는 지점이 생기는 것 같아 오히려 좋다. 한 번 발화한 말이 꼭 고정돼야 하는가. 시간이 지나 다르게 느껴진다고 폐기돼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는 걸 이번 과정을 통해 깨달았고 흥미로웠다. 이렇게 말하지만 동시에 출간이란 건 두려운 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입 밖으로 내야 고칠 수 있는 지점이 생긴다고 생각하고, 내겐 그런 용기를 주는 존재가 니키 같은 아티스트들이다. '늘 같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보여주는 사람들 덕분에 행동할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의 우정이 박제되는 게 참 좋기도 하다.

니키리 어떤 우정이 박제가 되겠어. (웃음)

각자 가장 애정이 가는 부분을 물었더니 니키는 대화 사이사이 담긴 지은의 산문을 꼽았다. 당시엔 몰랐던 지은만의 감정이 독자들이 대화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같다고 했다. 지은은 어느 날 니키가 보여준 한 페인팅을 혹평한 에피소드를 꼽았다. 알고 보니 니키가 그린 그림이었다. (책에 관련 내용이 담겼다.) 지은은 너무 아찔했는데 니키는 전혀 아무렇지 않아했다. 둘은 이토록 다르다. 둘에게 이번 작업은 어떤 의미였을까?

임지은 자기 경험을 통과해서 나온 말과 그렇지 않은 말은 정확히 같은 표현이더라도 결코 같을 수 없다고 믿는다. 일종의 '아우라'랄까. 녹취를 복기하며 니키가 툭툭 던지던 말들의 맥락을 떠올릴 때 '이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쌓였을까' 싶은 순간이 많았다. 사람을 쿡쿡 찌르는 힘이 있더라. 그건 결국 그 사람만의 역사, 생각 등 삶의 맥락이 반영되어야만 가능한 것 아니겠나. 혼자 얼마나 그런 시간을 많이 보냈을까 싶었다. 그건 나는 모르는 니키의 시간일텐데….

니키리 이 친구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깃든 '애잔함'이 있더라. 사람에 대한, 삶에 대한 깊은 연민. 그를 놓지 않으려는 섬세함이 그녀만의 문학적인 감수성이자 좋은 에세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힘이었다. 함께 작업하며 그걸 더욱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목표는 없고, 조언은 싫어한다"

니키는 언젠가부터 삶에 별다른 목표가 없다고, 순간순간 재밌으면 그만이라고 적었다. 둘에게 앞으로의 계획도 물었다.

니키리 지금 운영하는 기획사 '비트닉'도 구체적인 목표는 없다. 2명의 소속 배우, 유태오와 오규희의 커리어를 잘 가꿔 나가는 일을 성실히 해나가고 있다. 8월 7일부터 성곡미술관에서 열리는 하파스 바자전에 3명의 작가 중 한 명으로 참석한다. 많이 보러 와주면 좋겠다.

임지은 첫 책이 나온 지 5년이 됐다. 요즘은 뚜렷한 목표 없이 자유로이 써보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하고 싶던 말들을 제약 없이 써보는 것도 재밌더라.

남편인 배우 유태오는 요즘 영화 촬영이 한창이라 아직 니키의 책을 읽진 못했다고 했다. 다만 그 내용이 평소 남편과 나누던 대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며, 아마 새로울 건 없을 거라고 웃었다. 마침 지은은 최근 결혼을 했다. 바람직한 부부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듯한 니키가 혹 조언을 해준 적은 없는지 묻자 역시 '1초의 망설임' 없는 단호한 답이 돌아왔다.

니키리 나는 그 말 굉장히 좋아하지 않는다. 부담스럽다. 바람직한 게 뭔지도 모르겠다. 조언은 별로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다. 조언 없다.

재미없는 건 못 견디고, 조언은 질색하며, 목표 없이 흘러가는 삶을 있는 그대로 지켜봐 주는 두 사람. 성취와 효율을 최고로 여기는 시대정신에 불온한 둘을 바라보며 나눈 지 오래된 듯한 좋은 대화가 그리워졌다. 유난히 똑똑하거나 나와 닮은 사람이 아니라 서로의 말에 눈을 반짝이며 오래 귀기울여주던 친구가.

[심가현 기자 gohyun@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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