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무 놀란 거장의 건축 인생 “박정희 공개 비판에 8년간 추방” (이유 있는 건축)[어제TV]

장예솔 2025. 7. 23.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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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군사 정권 시기 추방됐던 건축가 김중업의 역작이 공개됐다.

7월 22일 첫 방송된 MBC '이유 있는 건축-공간 여행자'에서는 '한국을 설계한 두 남자, 건축가 김중업과 김수근'을 주제로 두 거장이 남긴 유산들을 소개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여러 건축물을 설계한 김중업과 김수근에 대해 유현준은 "이 두 분이 한국 건축사에서 영향이 큰 이유는 김중업 선생님은 1950년대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났고, 김수근 선생님은 같은 시기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기 때문"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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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이유 있는 건축-공간 여행자’ 캡처
MBC ‘이유 있는 건축-공간 여행자’ 캡처
MBC ‘이유 있는 건축-공간 여행자’ 캡처

[뉴스엔 장예솔 기자]

박정희 군사 정권 시기 추방됐던 건축가 김중업의 역작이 공개됐다.

7월 22일 첫 방송된 MBC '이유 있는 건축-공간 여행자'에서는 '한국을 설계한 두 남자, 건축가 김중업과 김수근'을 주제로 두 거장이 남긴 유산들을 소개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여러 건축물을 설계한 김중업과 김수근에 대해 유현준은 "이 두 분이 한국 건축사에서 영향이 큰 이유는 김중업 선생님은 1950년대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났고, 김수근 선생님은 같은 시기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기 때문"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유현준은 "그 당시 해외 유학을 간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시대적으로 한국 전쟁이 있었고 거의 모든 건물이 파괴됐다. 또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농촌에 사시던 분들이 도시로 많이 이주할 때였다. 엄청나게 많은 건물이 빨리 필요했던 때라 두 분이 도시 계획과 함께 건물들을 많이 지으셨다. 시대가 필요로 했던 거장들"이라고 설명했다.

심지어 김중업은 '현대 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는 르 코르뷔지에 사무실에서 근무했던 제자라고. 유현준은 "이분이 이미 20대 후반에 서울대학교 건축과 교수셨다. 1952년 베네치아에서 '제1회 국제예술가대회'가 열렸는데 우리나라 대표로 가셔서 르 코르뷔지에를 만난 것"이라고 전했다.

홍진경과 김호영은 주한 프랑스 대사관, 서산부인과에 이어 1982년 김중업의 건축 인생 말미 준공된 영등포 최초 백화점 '태양의 집'을 찾았다. 역사학자 김재원은 "이때 김중업 선생님 인생에 굴곡이 있었는데 1971년 한국에서 추방을 당하셨다"고 말해 놀라움을 안겼다.

당시 대한민국은 서울로 몰려드는 인구로 주택이 부족해 박정희 정부 지시 아래 서울 판자촌을 허물고 6개월 만에 와우시민아파트를 건설했다. 그러나 무리한 일정과 부실 공사는 4개월 만에 붕괴 사고로 이어졌다.

사고 직후 김중업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서울시장 김현옥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고. 김재원은 "이 시절은 박정희 군사 독재 시기다. 정부 입장에선 쓴소리가 못마땅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김중업의 정부 비판은 끝이 아니었다. 서울에서 쫓겨난 10만 명의 빈민이 성남 광주대단지에서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일으킨 대규모 '8.10 성남(광주대단지) 항쟁'이 벌어졌기 때문.

가구당 지급된 군용 텐트는 고작 1개였으며, 도로와 상하수도 시설이 없어 전염병이 유행했음은 물론 농작도 불가능해 아사하는 시민이 발생했으나 정부는 이 사태를 방치했다.

이에 김중업은 "도시를 건설한다는 게 어느 한 사람의 영감이나 결단에 의해 될 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철저한 사전 조사와 전문가들의 치밀한 계획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정부의 태도는 그런 것 같지 않다"는 글을 신문에 기고했다.

정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결국 추방된 김중업은 3개월 단수 여권을 가지고 프랑스로 출국했다. 다행히 대사관 설계로 훈장을 받아 프랑스 장기 체류가 가능했다고. 그렇게 8년 동안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던 김중업은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서거 직후 귀국해 태양의 집을 설계했다.

태양의 집은 마치 성당처럼 보이는 건물 외벽을 자랑했다. 현재 마트로 사용 중인 태양의 집은 3면이 도로와 맞닿은 삼각형 구조로 바라보는 각도마다 새로운 느낌을 주는 입체적인 건물이었다.

마트에 들어선 홍진경은 "김중업 선생님이 보시면 흐뭇해하실 것 같은 게 아직도 영등포 시민분들이 자주 이용하고 계신다. 많은 보람을 느끼실 것 같다. 여전히 태양의 집은 영등포 시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전현무는 "어떻게 저기를 몰랐지?"라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뉴스엔 장예솔 imyes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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