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검사장 지명했는데, 법원이 딴 사람 임명 ‘정면 충돌’

미국 뉴저지 연방 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명한 연방 검사장의 임명을 거부하고 새로운 인물을 검사장으로 직접 임명했다. 연방법에 따라 판사들이 연방 검사장을 임시적으로 임명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그러자 몇 시간이 채 되지 않아 법무부는 법원이 임명한 검사를 바로 해임했다고 밝혔다. 트럼프가 2기 정부 들어 추진하는 행정명령 등 정책에 대해 사법부가 제동을 거는 가운데 대통령의 인사권까지 위협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면서 행정부와 사법부의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美 법원의 이례적인 권한 행사
22일 뉴저지 연방 법원은 트럼프가 뉴저지 연방 검사장으로 지명한 알리나 하바를 임명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대신 하바의 수석 보조 연방 검사인 디자이어 리 그레이스를 연방 검사장에 임명했다. 법원은 이 같은 결정을 담은 간단한 명령문을 발표했지만, 하바를 임명하지 않은 이유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지난 3월 24일 하바를 뉴저지 연방 검사장 대행으로 임명했다. 미국에서 연방 검사장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상원 인준을 거친 뒤 임명된다. 상원 인준을 기다리는 동안 최대 120일 동안 연방 검사장직을 수행할 수 있다. 그런데 민주당 소속인 뉴저지주(州) 상원의원 두 명은 “정치적 임명”이라면서 하바가 검사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고, 결국 상원 인준을 받지 못하고 120일이 됐다. 연방법에 따르면 이럴 경우 상원 인준이 있기 전까지 연방 법원 판사들이 투표로 검사장 대행을 임명한다. 검사장 공백으로 인한 부작용을 막으려는 조치다. 일반적인 경우 법원은 대통령의 지명을 받은 사람을 그대로 두지만 이번엔 자신들이 새로운 인물을 선택했다. 뉴욕타임스는 “법원이 매우 이례적인 권한을 행사한 사례”라고 했다.

◇대통령의 보은 인사, 법원이 막아서
연방 법원이 이 같은 결정을 한 이유를 공개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하바가 대통령의 최측근이며, 검사장을 맡기에 경험도 부족하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바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기 전 그의 여러 민사 소송을 담당한 ‘트럼프의 개인 변호사’였다. 여성 칼럼니스트 E 진 캐럴이 과거 트럼프에게 성폭행당했다고 주장하며 제기한 소송에서 트럼프를 대변해 법정 공방을 벌인 사람이 하바다. 작년 대선 때도 캠프에서 법적 이슈 대응을 맡으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연단에 올라 지지 연설을 한 측근 중 측근이다. 그러나 하바는 뉴저지에서 변호사만 했을 뿐 검사 경력이 전무하다. 이 때문에 트럼프가 오로지 충성심을 보고 ‘보은(報恩) 인사’를 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실제 하바는 지난 3월 검사장 대행을 하면서 정치적으로 편향된 행동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예컨대 지난 5월 뉴저지 뉴어크의 이민세관단속국(ICE) 시설에 시찰을 온 뉴어크 시장과 연방 하원의원이 연방 정부와 마찰을 빚자, 두 사람을 기소했다. 앞서 4월에는 이민 단속에 협조하지 않은 혐의로 주지사 등을 수사하고 있다고도 했다.

◇트럼프 정부 “법원이 좌파적 의제 따른다”
이날 법원 결정이 나오자 트럼프 정부는 신속하게 행동했다. 팸 본디 법무장관은 X에 “보좌관(그레이스)은 방금 해임됐다”면서 “법무부는 판사들의 일탈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했다. 법원이 하바 대신 임명한 대행을 즉각 갈아치운 것이다. 토드 블랑쉬 법무 차관은 X(옛 트위터)에 “판사들이 행동가처럼 행동할 때 그들은 우리의 사법 제도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게 된다”면서 “서둘러서 이런 결정을 내렸다는 것은 이 문제가 애초부터 좌파적 의제였다는 의미”라고 비판했다. 블랑쉬도 트럼프의 ‘성추문 입막음’ 의혹 사건을 담당한 ‘트럼프의 변호인’ 출신이다. 이번 사건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불투명하다. 하바에게 주어진 120일이 정확히 언제 끝나는지를 두고도 미 언론에서는 “불분명 하다”고 지적한다. 어느 쪽이 됐든 행정부와 사법부의 충돌은 당분간 불가피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폴리티코는 “하바의 거취를 둘러싼 싸움은 권력 분립과 같은 보다 깊은 쟁점들을 건들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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