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란 말을 만든 건 아니지만... 잡지 ‘어린이’ 창간하고 ‘어린이날’ 만든 방정환

이한수 기자 2025. 7. 23.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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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서 찾았다 오늘 별이 된 사람]
1931년 7월 23일 32세
잡지 '어린이'를 창간하고 '어린이날' 제정을 주도한 방정환.

1925년 수원 사는 11세 소녀 최순애(1914~1998)는 이해 11월 잡지 ‘어린이’ 동시란에 ‘오빠생각’을 투고해 입선했다.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때/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며/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기럭 기럭 기러기/ 북에서 오고/ 귀뚤 귀뚤 귀뚜라미/ 슬피 울건만/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수/ 떨어집니다’.

이듬해 1926년 4월 마산 사는 15세 소년 이원수(1911~1981)도 이 코너의 주인공이 된다. 동시 ‘고향의 봄’이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 꽃 살구 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꽃 동네 새 동네 나의 옛 고향/ 파란 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냇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방정환이 편집인으로 만든 잡지 '어린이'.

소년 이원수는 자신보다 다섯 달 앞서 입선한 세 살 아래 소녀 최순애의 동시에 감명을 받았다. 둘은 서로 연락하고 만나면서 사랑에 빠진다. 10년 후인 1936년 스물다섯 스물둘 선남선녀가 되어 결혼한다. 아동문학가 이원수와 부인 최순애의 동화 같은 러브 스토리다.

‘고향의 봄’ 소년과 ‘오빠생각’ 소녀의 사랑을 이어준 잡지 ‘어린이’는 천도교 계열 잡지사인 ‘개벽사’가 1923년 3월 창간한 어린이 잡지이다. 소파(小波) 방정환(1899~1931)이 편집인을 맡아 발간을 주도했다.

1936년 7월 23일자. 이은상이 쓴 방정환 추모글.

방정환은 천도교 3대 교주이자 19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인 손병희(1861~1922)의 사위이기도 했다. 1923년 5월 방정환은 손진태 윤극영 등과 함께 어린이 운동단체 색동회를 창립했다. 5월 1일(훗날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공포하고 천도교당에서 행사를 열었다.

방정환은 잡지 ‘어린이’ 창간과 ‘어린이날’ 제정의 중심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그가 ‘어린이’란 말을 만들었다고 오랜 기간 알려져 왔다.

방정환이 어린이란 말을 만들었다고 쓴 김을한의 글. 1957년 5월 3일자.

조선일보 기자 출신 김을한은 1957년 5월 3일 ‘소파의 소년 운동(상)’ 기사에서 방정환이 어린이란 말을 만들었다고 썼다. “소파 방정환 선생은 우리나라 소년 운동의 비조이며 또 위대한 지도자였다. 우선 ‘어린이’라는 명칭부터도 그가 창작한 말이니.”

앞서 1953년 5월 6일 ‘어린이날 창설자 소파 방정환 선생’ 기사에서도 “선생은 일제 아래에서 가난하고 천대받던 우리 어린이들을 위하여 일평생을 바치셨으니 ‘어린이’라는 존댓말을 지어내신 분도 선생이시요, ‘어린이날’을 창설하신 분도 실로 소파 방정환 선생이시다”라고 적었다. 방정환이 존중하는 뜻을 담아 ‘어린이’란 명칭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근거를 제시하기도 한다. 잡지 ‘개벽’ 1920년 8월에 방정환이 외국 시를 번안해 쓴 시 ‘어린이 노래- 불 켜는 이’가 어린이란 말을 처음으로 쓴 문헌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잡지 ‘개벽’만 검색해봐도 사실과 다르다는 걸 금세 알 수 있다. 두 달 앞서 1920년 6월 발행된 ‘개벽’ 제1호 ‘시급히 해결할 조선의 2대 문제’ 글에서 필자인 박달성은 “늙은이도 그러하고 어린이도 그러합니다”라고 적고 있다.

2004년 87세였던 출판인 최덕교씨는 ‘한국잡지백년’을 내고 가진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방정환의 ‘어린이 명칭 창작설’은 잘못이라고 했다. 최남선이 1914년 창간한 잡지 ‘청춘’에 창간사를 대신한 시 ‘어린이의 꿈’이 실려 있다는 것이다. 이 시는 작자가 적혀있지 않지만 발행인인 최남선으로 추정된다.

최덕교씨는 ‘청춘’의 애독자였던 방정환이 ‘어린이’란 말을 기억했다가 나중에 사용하면서 잡지 ‘어린이’도 내게 되었다고 추정했다.

1961년 7월22일자. 방정환 별세 30주기를 맞아 부인 손용화 여사를 찾아 인터뷰했다. 손용화는 민족지도자 손병희의 딸이다.

‘어린이’란 말이 방정환이 만든 말이 아니라고 해서 그의 업적이 작아지는 것은 아니다. 방정환은 잡지 ‘어린이’에 ‘소파’ ‘잔물’ ‘몽중인’ ‘깔깔박사’ ‘북극성’ 등 다양한 필명을 많은 글을 썼다. 확인된 것만 39개라고 한다. 잡지에 혼자 여러 편 글을 써야 했기에 이름을 자주 바꿔 써야 했다.

전국 곳곳을 다니며 어린이 대상으로 동화 구연을 해 큰 인기를 끌었다. 연간 70회, 통산 1000회 이상 동화 구연을 했다.

잡지 ‘동광’ 1932년 9월호에 실린 ‘오호 방정환 그의 1주기를 맞고’ 글의 필자는 “동화 구연에 있어서는 그를 따를만한 사람이 아직까지는 전혀 없다고 단언할만치 잘 하였다. 하여간 그의 연설은 청중에게 감격을 주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 열과 힘이 있었다”고 썼다.

2019년 방정환의 글 713편을 담은 ‘정본 방정환 전집’이 5권으로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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