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읽기] 피지 않아도 괜찮은 날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노란색은 햇살의 색이고 여름의 색이며, 기쁨과 환대의 색이라고들 한다.
해바라기가 그 노란빛으로 활짝 피어 있는 그림을 마주할 때면 우리는 무언가 환한 것, 긍정적인 것을 먼저 떠올린다.
그의 그림 속 노란색은 그렇게 타오르듯, 혹은 바래듯 존재한다.
그저 무너지지 않고 서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해바라기처럼 살고 있는 것이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노란색은 햇살의 색이고 여름의 색이며, 기쁨과 환대의 색이라고들 한다. 해바라기가 그 노란빛으로 활짝 피어 있는 그림을 마주할 때면 우리는 무언가 환한 것, 긍정적인 것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고흐의 노랑은 어딘가 다르다. 그는 태양을 사랑한 사람이었지만 그 사랑은 어딘가 아슬아슬했고 불안정했으며, 종종 파국을 향해 기울었다.
1888년 여름, 고흐는 친구 고갱을 기다리며 해바라기를 그렸다. 그것은 단순한 정물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한 공간을 준비하는 일이었다. 고흐는 환대를 믿었다. 함께 그림을 그리고, 삶을 나눌 수 있는 작은 공동체를 꿈꿨다. 그래서 벽에 걸 그림이 필요했다. 노란 꽃을 모아 병에 꽂고 그림으로 남겼다. 피어난 꽃들로 방을 채우며 고갱을 기다렸다. 그러나 고갱은 오래 머물지 않았고, 고흐의 꿈은 무너졌다.
그의 해바라기 속에는 활짝 핀 꽃도 있고, 시들어가는 꽃도 있다. 고개를 숙인 해바라기의 모습은 어쩌면 그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 한껏 열정을 쏟은 뒤 남은 건 피로와 고요한 상실. 열심히 피어올랐지만, 결국 너무 뜨거운 태양에 지쳐버린 꽃. 그의 그림 속 노란색은 그렇게 타오르듯, 혹은 바래듯 존재한다.
우리의 여름도 비슷하다. 여름은 언제나 기대를 동반한다. 떠나고, 만끽하고, 빛나야 한다는 강박. 하지만 정작 그 계절 안에 있는 사람들은 종종 피곤하고, 지쳐 있고, 뭔가에 쫓기듯 쉰다. 활짝 웃는 이모티콘 뒤에 숨겨진 감정, ‘잘 지내요’라는 말에 감춰진 망설임. 우리는 해바라기의 고개 숙임을 잘 알고 있다.
고흐는 그림이라는 언어로 가장 절실한 이야기를 남겼다. “열심히 살아보려 했지만,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고. 그리고 그 이야기를 지금 우리가 새삼 다시 새기게 되는 것은, 오늘의 우리 또한 그렇게 조금씩 기울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끔은 해바라기처럼 피지 않아도 괜찮다. 고개를 숙인 채 서 있는 것도 하나의 모습이다. 우리 안의 노란색이 언제나 환할 필요는 없다. 그저 무너지지 않고 서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해바라기처럼 살고 있는 것이다.

박재연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Copyright © 농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