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의 엑스레이] [80] 뒤죽박죽 말잔치, ‘워드 샐러드’

샐러드를 좋아한다. 당뇨 때문이다. 깐깐하게 식단을 챙기는 성격은 아니다. 저녁은 멋대로 먹는다. 하얀 쌀밥에 김치찌개 국물이 스며드는 장관을 포기할 수는 없다. 대신 점심은 꼭 샐러드를 먹는다. 저녁을 멋대로 먹는 죄책감을 덜기 위해서다.
다행히 샐러드는 만들기 쉽다. 아무거나 섞다 보면 그게 뭐든 샐러드라 부를 수 있는 음식이 된다. 말에도 샐러드가 있다. ‘워드 샐러드’(Word salad)다. 아무 단어나 마구 섞은 말을 뜻한다. 원래는 정신의학에서 정신질환자가 논리 없이 뱉는 말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요즘 미국에서는 정치인 등 유명인이 멋진 단어를 마구 섞어 내놓는 핵심 없는 말을 조롱할 때 쓴다. 트럼프와 영국 해리 왕자의 부인 메건 마클이 이 샐러드를 잘 만드는 걸로 유명하다.
사실 워드 샐러드는 한국 정계의 주요 메뉴다. 장관이나 기관장 소감문이라는 건 대체로 이렇다. “국민적 요구에 부합하는 유연한 정책을 통해 사회 각계각층의 역동성과 포용성을 조화롭게 구현하겠습니다” 열심히 하겠다는 소리다. 종종 영어도 섞인다. “참여적 거버넌스로 새로운 행정 패러다임을 제시하겠습니다.” 열심히 하겠다는 소리일 것이다.
여성가족부 장관 청문회도 워드 샐러드 잔치였다. 후보자는 “작은 몸집으로 큰 파도에 부딪히느라 상처가 많이 생긴 부처”를 “적당한 진동으로” 조절하며 “기민하고 묵묵하게 일하겠다”고 했다. 문학적 워드 샐러드다. “여러 가지 마음의 상처를 입으신 분들 관련해서는 다 제 부덕의 소치니 심심한 사과 드린다”는 여러 가지 심심한 샐러드 대신 “진심으로 갑질을 사과한다”는 명쾌한 입가심용 디저트를 내밀면 좋았을 것이다.
워드 샐러드를 가장 못 만든 정치인은 노무현이었다. 추상적 표현을 싫어한 그는 연설문을 요리에 비유하며 말했다. “요리사가 장식이나 기교로 승부하면 곤란하다.” 사실 이 글은 반성문이다. 기껏해야 샐러드인 글에 트러플 오일이나 뿌려 독자의 미각을 현혹하려 했던 글쟁이의 반성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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