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86] 진실을 마주하는 시간은 온다
유골이 발견됐다, 토비아스가 돌아와 있다, 강력계의 열혈 형사가 옛날 문건을 뒤지고 있다. 제길! 비싼 위스키의 맛이 쓰기만 했다. 술잔을 아무렇게나 내려놓은 그는 급히 2층 침실로 올라갔다. 두려워할 것 없어. 우연일 뿐이야. 속으로 계속 되뇌었으나 진정이 되지 않았다. 신발을 벗고 지친 몸을 침대에 뉘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장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어떻게 단 한 번의 작은 실수가 이런 엄청난 결과를 몰고 온단 말인가. 눈을 감으니 피로가 파도처럼 온몸을 덮쳤다.
- 넬레 노이어하우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중에서

그레고어는 성공한 인생을 사는 것 같았다. 그는 잘생기고 똑똑하며 말까지 잘했다. 사람들은 그를 좋아했고, 그는 사람들의 호감을 능숙하게 다룰 줄 알았다. 교사였던 그는 문화부 장관 자리까지 올랐다. 하지만 그의 화려한 출세는 거짓 위에 세워진 탑이었다. 11년 전, 그는 제자였던 스테파니와 밀회 도중 자신의 비겁한 모습을 비웃은 그녀를 홧김에 죽였다.
치밀한 은폐가 뒤따랐다. 그의 죄를 대신 뒤집어쓴 건 토비아스였다. 술에 취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던 그는 무죄를 입증할 수 없었다. 오랜 복역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고향은 전과자가 된 그를 반기지 않았다. 꿈은 산산조각 났고 가족은 해체되었다. 폐허가 되다시피 한 아버지의 레스토랑은 헐값에 넘겨야 하는 처지였다.
토비아스가 석방되고 과거의 그림자가 어른거리자 그레고어는 불안했다. 그래도 무사할 거라 믿었다. 새로 이사 온 아멜리가 의문을 품고 진실을 추적하면서 사건의 전모가 드러난다. 마을은 평화롭고 사람들은 선량한 것 같았지만, 그들은 토비아스의 무죄를 알고 있었다. 이익과 안위를 위해 범죄의 기억을 간직한 마을 사람들은 그레고어와 똑같이 추악한 공범들이었다.
그레고어는 추락하고 토비아스는 빼앗겼던 삶과 명예를 되찾는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게 한 것은 거대한 힘이 아니었다. 평범한 아멜리의 작은 호기심과 끈질긴 질문, 그것이 정의의 시작이었다. 더디고 외롭지만, 진실은 늘 누군가의 작고 단단한 발걸음을 따라온다. 세상엔 감추어진 죄악이 많다. 강한 힘으로 진실을 억누르려는 자들도 넘쳐 난다. 하지만 아무리 견고해 보이는 거짓의 성도 결국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레고어의 몰락처럼, 진실을 마주할 시간은 예상보다 훨씬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연재를 마칩니다. 독자 여러분과 필자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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