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 부평역의 두 사람
70대 할머니는 뛰지 말라고 욕설
장애 추정 40대 남은 위아래 오가
잘못 지적보다 상대 배려가 먼저
장거리 출퇴근은 고달프지만 때로 소소한 이치를 되새길 기회도 얻는다.

참 열심히들 산다고 넋두리하다 새벽 달음질 동료가 되는 데 1주일도 안 걸렸다. 엘리베이터를 뒤로하고 승강장으로 향하는 마지막 쉰 일곱 계단을 허벅지 부여잡고 올라 9-4 승강장 왼쪽 1열에 설 때, 그 희열을 누가 알랴. 몇 번의 경보(輕步) 올림픽을 거쳐 1열에 선 기쁨도 잠시, 동인천발 열차에 자리가 없는 세상 무너질 일도 간혹 경험하며 인생을 곱씹는다. 안 될 놈은 안 된다.
부평역을 수백번 오가니 그 시간대 얼굴을 스친 이들 중에 이젠 목례정돈 해도 될법한 장거리 동료들이 몇 생겼다. 기자 습성 탓일까. 가방과 옷차림 등을 보고 뭐하는 분일지 짐작하고 상상하는 일이 제법 많다.
그중 1호선으로 환승하는 구간, 길디긴 에스컬레이터에서 마주치는 두 사람은 호기심을 끌어올린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남성은 늘 흰 마스크를 끼고 한 손엔 가방, 다른 손엔 접히는 스마트폰을 활짝 펼친 채 등장한다. 고개를 앞뒤, 좌우로 흔들고 어디서 차용한지 짐작조차 힘든 손·몸 동작. 간혹 힙합스러운 나지막한 추임새를 넣는 이 남성을 처음 접한 이들은 대개 얼굴을 찡그리거나 다시 그를 응시하고 ‘뭘까’ 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럴법하다.
새벽 출근길 지하철에선 자거나, 이어폰 끼고 ‘스맛질’(스마트폰 삼매경)하는 옵션만 있는 것만 같다. 그 아침의 고요함을 깨고 중년 남성이 BTS의 노래들을 속삭이며 앞뒤 칸을 신나게 오가는 건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다.
흰머리 성성한 짧은 단발의 70대 여성은 키작고 깡마른 체격으로 흔한 인상인데 이상하게 에스컬레이터에서 꼭 왼쪽에 선다. 좌측 통행이 일상인 바쁜 지하철에선 승강장까지 달음질하려면 이 여성을 끼고돌아 남은 에스컬레이터를 더 올라야 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쉽게 보기 힘든 이 광경은 고달픈 출근길의 소소한 즐거움일 것이라고 생각할 찰나, 여성의 욕설이 앞서간 이들의 뒤통수에 여지없이 내리꽂힌다.
“××들아, 누가 에스컬레이터에서 뛰어 가래, 그렇게 급하면 더 일찍 출근해. ××들아.”
고개가 끄덕여질법한 얘기지만, 대부분 갖가지 이유로 고단한 새벽 출근이 강제됐을 거란 짐작에 그저 여성을 힐끔 쳐다봤을 뿐이다.
어떨 땐 40대 남성과 70대 여성을 동시에 만나기도 한다. 한쪽에선 엇박자의 BTS 노래가, 다른 쪽에선 여지없이 욕설이 터지면 어쩔 줄 모르겠다.
두 사람을 처음 봤을 때가 떠오른다.
장애가 있어 보이는 남성이 해코지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고 근처로 지나갈라치면 온몸이 경직됐다. 에스컬레이터에선 뛰어선 안 된다는 여성의 말이 맞겠다 싶어 지하철 안전규정 따위를 찾아보기도 했다. 실제 행정안전부의 승강기 관련 고시를 살펴보니 에스컬레이터에선 뛰는 것은 물론 걷지도 않아야 한다고 돼 있다. 에스컬레이터에선 손잡이를 잡고 이용해야 한다고도 적혀 있다.
남성은 그 긴 시간, 누구에게도 위해를 가하는 걸 본 적 없다. 오히려 누가 다가오면 멀리서 피해갔고, 그저 음·몸치임을 자랑이라도 하듯 조용하게 즐길 뿐. 간혹 그가 안 보이면 걱정하다가도 다시 마주하면 빙긋 웃고 눈을 감는데, 맞은편 동료들도 같은 반응인 것만 같다.
여성의 항변은 맞다. 에스컬레이터에선 뛰지도 걷지도 말아야 한다. 그렇다고 매번 왼쪽에 서서 일부러 불편을 만들고 여지없이 욕하는 모습엔 옳고그름을 떠나 그저 마음이 답답해질 뿐이다.
함께하려면, 잘못을 바로잡는 것보다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게 우선이어야 하지 않을까. 부평역 두 사람을 되새기다 보니 벌써 용산역이다. 하루를 이렇게 또 연다.
정재영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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