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발표한 이기호 “모르는 존재와 공존, 인간의 책임 필요”

어느 날 비숑 프리제 전문 브리딩 업체 ‘앙시앙 하우스’ 소속 브리더가 시습 앞에 나타나 이시봉이 과거 유럽 왕실에서 기르던 고귀한 혈통으로, 세상에 몇 마리 남지 않은 ‘후에스카르 종’이라고 주장한다. 브리더는 시습에게 수천만원을 대가로 제시하며 이시봉을 넘기라고 회유하고, 시습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어린 이시봉을 입양해 올 무렵의 행적을 추적하던 중 이시봉의 이름에 얽힌 진실을 마주한다.

―실로 오랜만에 발표한 장편소설인데, 소감은.
“지금까지 쓴 소설 중 가장 긴 분량의 작품이다. 시간도 가장 오래 걸렸다. 영영 끝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 어느 순간 출간이 되어 있었다. 책이라는 물성으로 만나니 이제야 조금 실감이 난다. 한데도 아직 완전히 그 세계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밤에 계속 그 소설을 써야 할 거 같은 느낌도 들고. 천천히 작별할 준비를 하고 있다.”
―책 표지의 강아지는 비숑 프리제가 아니라 삽살개같이 보이기도 한다.

“내가 게을러서 그런 거다. 나는 좀 천천히 쓰는 작가다. 원고가 잘 써지거나 속도감이 붙으면 오히려 불안하기도 하다. 그건 그냥 내 스피드이고 내 문장이고 내 목소리일 뿐이야,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조금 더 많이 그 친구들의 사정을, 그 친구들의 목소리로 이야기해 주자, 계속 그 마음으로 더디게 썼다.”
—작가의 책을 오랫동안 읽어온 독자들이라면 강아지 ‘이시봉’의 이름을 보고 반가움과 놀라움을 느낄 것 같다.

“그것 역시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생각이자 위계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실 강아지들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성격이라는 것도 인간이 만들어낸 허상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제목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도 그런 맥락에서 지었다. ‘명랑’ ‘짧음’ ‘투쟁’ 모두 인간의 관점이다. 그 실패를 제목에 고스란히 담고 싶었다.”
—작가의 반려견 이시봉은 이번 소설에 어떤 영감과 도움을 주었나.
“이 소설의 시작이자 끝이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 친구의 부모와 형제를 떠올려보다가 이 소설을 시작하게 되었다. ‘고아’나 다름없는 이 친구의 가계도를 만들어 주자, 그게 첫 생각이었다. 또 결말 부분을 쓰는 데만 3년이 걸렸는데, 이래서 작가는 자신과 너무 가까운 모델을 소설 속 주인공으로 삼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근대 서유럽 왕가의 사랑과 욕망, 프랑스 혁명사까지 등장하는 폭넓은 서사적 스케일이다.
“당분간 서유럽 쪽으론 여행 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고됐다. 쓰면서도 계속 후회했다. 차라리 진돗개나 평범한 시고르자브종 이야기를 쓸 걸. 번민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한 가지 얻은 것이 있다면 왕가나 귀족 사람들도 다 거기서 거기라는 것. 다 어느 정도는 비루하고 어리석고 비열했다는 것, 그 정도다.”
—이기호의 작품을 언급할 때 ‘유머’라는 키워드는 빠지지 않는다.


“생각처럼 그렇게 바쁘거나 정신없지는 않다. 별다른 취미가 없고 술을 마시지 않는다. 그러면 무리 없이 다 해낼 수 있다. 직장도 다른 직장에 비해선 노동의 강도가 높지 않다. 그런 내가 엄살을 부리면 안 된다. 소설을 쓰는 것도 그저 다 생활의 일부분일 뿐이다. 요즈음은 강아지 이시봉과 오래오래 저녁 산책을 하고 있다. 이시봉은 이시봉대로, 나는 나대로, 각자의 생각을 하면서 걷고 있다. 그게 내 유일한 여유 시간이다.”
이규희 기자 lk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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