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속 노동현장 체험기] (1) 택배 노동자의 하루
만나자마자 360개 물품 배달 시작
두세 개씩 쌓아 들고 뛰어 다녀
1분 1초가 아까워 점심도 걸러
“주 7일 배송 시행 휴식 보장 안돼
노동자 3명 사망 후 얼음물 지급”
해를 거듭할수록 여름은 점점 더 뜨겁고 길어지고 있다. 올해 경남 지역에는 기상 관측 이래 가장 이른 시기에 열대야가 찾아왔고, 온열질환자 수는 지난해의 두 배를 훌쩍 넘겼다. 숨조차 막히는 더위 속, 에어컨이 돌아가는 실내에서도 버거운 이 기온 아래 누군가는 묵묵히 구슬땀을 흘리며 일터를 지킨다. 그들이 없다면 우리의 일상은 지금처럼 편안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노고를 당연하게 여긴 채 지나친다. 본지 기자들은 연일 계속되는 폭염 속에서 삶의 최전선에 선 노동자들과 하루를 함께하며 그들의 땀이 지닌 무게와 노동의 온도를 몸으로 체감해봤다.

22일 정오께 창원시는 폭염주의보가 내려져 있었다. 기자는 진해구 석동에서 택배차에 올라탔다. 이날 CJ대한통운 택배 노동자 이준석(37)씨는 360개가량의 물품을 싣고 왔다. 제대로 인사를 나눌 틈도 없이 첫 배송이 시작됐다.
건물 앞에 세워둔 차에서 뛰어내리듯 내려와 화물칸에서 물품을 꺼냈다. 처음 건네받은 물품은 인근 빌라 3층이 목적지다. 시작부터 쉴 새 없이 뛰어다니는 이씨의 속도에 맞게 기자도 계단을 한 번에 두세 칸씩 올랐다. 물품을 문 앞에 두고 사진을 찍은 뒤 돌아오자 숨 돌릴 틈도 없이 차는 출발했다.
이씨는 이날도 평소처럼 점심 끼니를 챙기지 못했다. 그는 “점심을 먹을 때 30분 정도가 걸린다고 치면, 퇴근 시간에 차가 막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1시간 정도 늦게 마친다”며 “시간을 아끼기 위해 점심은 거르고 아침과 저녁만 챙겨 먹는다”고 했다.

빌라촌 사이에 진입한 차는 잠깐 가다가 서기를 반복했다. 골목마다 배송해야 할 곳들이 즐비해 있기 때문이다. 배송을 시작한 지 5분이 채 안 돼 기자의 몸은 땀으로 흥건하게 젖었다. 기자가 물품을 들면 이씨는 능숙하게 배송지들의 중앙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갔다. “빠르게 돌아다녀야 하다 보니 다 외우게 되더라고요.”
체감온도가 33℃에 달하는 날씨임에도 택배차는 에어컨을 틀지 않았다. 이씨는 어차피 계속 문을 열고 나가야 하기에 에어컨을 틀어봤자 별 소용이 없더라고 설명했다. 대신 운전석 계기판 위에는 손바닥만 한 간이 선풍기 두 대가 놓여 있었다. 이씨가 사비로 구매한 것이다.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들을 계단으로 오르내리며 배송한 지 10분이 됐을 때, 땀이 시야를 가리고 가만히 있어도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는 상태에 이르렀다. 종합병원으로 물품을 나를 땐 시원한 에어컨 공기를 잠시나마 맞으며 그곳에서 나가기 싫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빌라촌을 벗어난 다음 목적지는 21개 동이 있는 아파트 단지다. 4층짜리 건물이라 엘리베이터는 없었다. 차 문을 열고 물품을 두세 개씩 쌓아 든 뒤 계단을 뛰어올랐다.

이씨는 여름은 배달 노동자에게 고역의 계절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는 “늘 뛰어다녀야 하는 일이다 보니 차라리 겨울이 제일 낫고, 여름엔 정말 고역을 치른다”며 “작년 여름에는 배송을 하던 중 갑자기 머리가 핑 도는 느낌이 들어 아내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배송을 거든 지 1시간이 지났다. 7년째 주 5일 이상 헬스장에 다니는 ‘운동 마니아’ 기자는 늘 체력을 자부심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무더위 속에서 뛰어다니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정신마저 혼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호수를 두 번이나 연속으로 잘못 읽었다. 이씨에게 받은 얼음물을 마셔도 금세 입안이 쩍쩍 말랐다.
이씨는 목에 두르고 있는 땀수건으로 얼굴을 닦아가며 정신없이 계단을 오르내렸다. 그는 휴대전화로 집배 정보를 수시로 확인하면서, 한 손으론 물품들을 들고 부지런히 뛰어다녔다. 챙 넓은 모자 아래로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배달노동자를 힘들게 하는 건 날씨뿐만이 아니었다. 그가 소속된 CJ대한통운은 올해 1월부터 주 7일 배송제를 시행했다. 그와 함께 노동자들의 주 5일 근무를 보장한다고 공언해 왔으나, 내부 사정은 달랐다. 이씨는 “원래는 6일씩 일하더라도 일요일은 확실한 휴식이 보장됐는데, 주 7일 근무제가 도입된 후로 일요일에도 다른 기사들과 번갈아 가며 격주로 배송한다”며 “5일 근무할 때와 6일 근무할 때 급여 차이가 크게 나고, 일요일 배송이 시작된 후로 평일 배송 물량이 줄어들었기에 하는 수 없이 모두가 6일씩 일한다”고 말했다.
폭염이 거셌던 지난 4~8일 CJ대한통운 소속 배달노동자 3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씨는 해당 사고 이후 회사에서 이전에 지급해 주지 않았던 얼음물을 나눠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끼니도 때우지 못한 채 쉴 틈 없이 뛰어다니던 노동자는 물었다. “지금도 견디기 어려운 더위에 동료 기사들은 포도당 알약을 먹어가며 억지로 버텨내고 있습니다. 왜 사람이 죽고 난 후에야 노동환경이 조금이나마 달라지는 걸까요.”
진휘준 기자 genie@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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