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속 노동현장 체험기] (1) 택배 노동자의 하루

진휘준 2025. 7. 22.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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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만에 땀 뚝뚝… 쉴 틈 없이 ‘땡볕 배송’

만나자마자 360개 물품 배달 시작
두세 개씩 쌓아 들고 뛰어 다녀
1분 1초가 아까워 점심도 걸러

“주 7일 배송 시행 휴식 보장 안돼
노동자 3명 사망 후 얼음물 지급”

해를 거듭할수록 여름은 점점 더 뜨겁고 길어지고 있다. 올해 경남 지역에는 기상 관측 이래 가장 이른 시기에 열대야가 찾아왔고, 온열질환자 수는 지난해의 두 배를 훌쩍 넘겼다. 숨조차 막히는 더위 속, 에어컨이 돌아가는 실내에서도 버거운 이 기온 아래 누군가는 묵묵히 구슬땀을 흘리며 일터를 지킨다. 그들이 없다면 우리의 일상은 지금처럼 편안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노고를 당연하게 여긴 채 지나친다. 본지 기자들은 연일 계속되는 폭염 속에서 삶의 최전선에 선 노동자들과 하루를 함께하며 그들의 땀이 지닌 무게와 노동의 온도를 몸으로 체감해봤다.

폭염주의보가 내린 22일 창원시 진해구 석동 일대에서 이준석 택배기사와 진휘준 기자가 함께 물품을 나르고 있다./성승건 기자/

22일 정오께 창원시는 폭염주의보가 내려져 있었다. 기자는 진해구 석동에서 택배차에 올라탔다. 이날 CJ대한통운 택배 노동자 이준석(37)씨는 360개가량의 물품을 싣고 왔다. 제대로 인사를 나눌 틈도 없이 첫 배송이 시작됐다.

건물 앞에 세워둔 차에서 뛰어내리듯 내려와 화물칸에서 물품을 꺼냈다. 처음 건네받은 물품은 인근 빌라 3층이 목적지다. 시작부터 쉴 새 없이 뛰어다니는 이씨의 속도에 맞게 기자도 계단을 한 번에 두세 칸씩 올랐다. 물품을 문 앞에 두고 사진을 찍은 뒤 돌아오자 숨 돌릴 틈도 없이 차는 출발했다.

이씨는 이날도 평소처럼 점심 끼니를 챙기지 못했다. 그는 “점심을 먹을 때 30분 정도가 걸린다고 치면, 퇴근 시간에 차가 막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1시간 정도 늦게 마친다”며 “시간을 아끼기 위해 점심은 거르고 아침과 저녁만 챙겨 먹는다”고 했다.

폭염주의보가 내린 22일 창원시 진해구 석동 일대에서 이준석 택배기사가 택배 정리 중 잠시 땀을 닦고 있다./성승건 기자/

빌라촌 사이에 진입한 차는 잠깐 가다가 서기를 반복했다. 골목마다 배송해야 할 곳들이 즐비해 있기 때문이다. 배송을 시작한 지 5분이 채 안 돼 기자의 몸은 땀으로 흥건하게 젖었다. 기자가 물품을 들면 이씨는 능숙하게 배송지들의 중앙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갔다. “빠르게 돌아다녀야 하다 보니 다 외우게 되더라고요.”

체감온도가 33℃에 달하는 날씨임에도 택배차는 에어컨을 틀지 않았다. 이씨는 어차피 계속 문을 열고 나가야 하기에 에어컨을 틀어봤자 별 소용이 없더라고 설명했다. 대신 운전석 계기판 위에는 손바닥만 한 간이 선풍기 두 대가 놓여 있었다. 이씨가 사비로 구매한 것이다.

폭염주의보가 내린 22일 창원시 진해구 석동 일대에서 이준석 택배기사와 차량 내 설치된 선풍기로 더위를 식히고 있다./성승건 기자/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들을 계단으로 오르내리며 배송한 지 10분이 됐을 때, 땀이 시야를 가리고 가만히 있어도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는 상태에 이르렀다. 종합병원으로 물품을 나를 땐 시원한 에어컨 공기를 잠시나마 맞으며 그곳에서 나가기 싫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빌라촌을 벗어난 다음 목적지는 21개 동이 있는 아파트 단지다. 4층짜리 건물이라 엘리베이터는 없었다. 차 문을 열고 물품을 두세 개씩 쌓아 든 뒤 계단을 뛰어올랐다.

폭염주의보가 내린 22일 창원시 진해구 석동 일대에서 이준석 택배기사와 진휘준 기자가 함께 택배를 나르고 있다./성승건 기자/

이씨는 여름은 배달 노동자에게 고역의 계절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는 “늘 뛰어다녀야 하는 일이다 보니 차라리 겨울이 제일 낫고, 여름엔 정말 고역을 치른다”며 “작년 여름에는 배송을 하던 중 갑자기 머리가 핑 도는 느낌이 들어 아내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배송을 거든 지 1시간이 지났다. 7년째 주 5일 이상 헬스장에 다니는 ‘운동 마니아’ 기자는 늘 체력을 자부심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무더위 속에서 뛰어다니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정신마저 혼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호수를 두 번이나 연속으로 잘못 읽었다. 이씨에게 받은 얼음물을 마셔도 금세 입안이 쩍쩍 말랐다.

이씨는 목에 두르고 있는 땀수건으로 얼굴을 닦아가며 정신없이 계단을 오르내렸다. 그는 휴대전화로 집배 정보를 수시로 확인하면서, 한 손으론 물품들을 들고 부지런히 뛰어다녔다. 챙 넓은 모자 아래로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이준석 택배기사가 얼음물을 마시고 있다./성승건 기자/

배달노동자를 힘들게 하는 건 날씨뿐만이 아니었다. 그가 소속된 CJ대한통운은 올해 1월부터 주 7일 배송제를 시행했다. 그와 함께 노동자들의 주 5일 근무를 보장한다고 공언해 왔으나, 내부 사정은 달랐다. 이씨는 “원래는 6일씩 일하더라도 일요일은 확실한 휴식이 보장됐는데, 주 7일 근무제가 도입된 후로 일요일에도 다른 기사들과 번갈아 가며 격주로 배송한다”며 “5일 근무할 때와 6일 근무할 때 급여 차이가 크게 나고, 일요일 배송이 시작된 후로 평일 배송 물량이 줄어들었기에 하는 수 없이 모두가 6일씩 일한다”고 말했다.

폭염이 거셌던 지난 4~8일 CJ대한통운 소속 배달노동자 3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씨는 해당 사고 이후 회사에서 이전에 지급해 주지 않았던 얼음물을 나눠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끼니도 때우지 못한 채 쉴 틈 없이 뛰어다니던 노동자는 물었다. “지금도 견디기 어려운 더위에 동료 기사들은 포도당 알약을 먹어가며 억지로 버텨내고 있습니다. 왜 사람이 죽고 난 후에야 노동환경이 조금이나마 달라지는 걸까요.”

진휘준 기자 genie@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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