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혁기의 책상물림]명철과 신뢰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2025. 7. 22.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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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께서 처음으로 집정하시는지라, 아아! 갓난아기가 처음 태어났을 때와 같이 하시어 스스로 지혜를 부여받도록 하소서.” 주나라를 다스리기 시작하는 성왕에게 소공이 올린 글의 한 대목이다. 아기는 순백의 상태로 세상에 나오므로 처음 무엇을 보고 따라하는지에 의해 지혜가 결정된다는 믿음은 이처럼 3000년 넘게 이어져 왔다.

팔순에 가까운 나이의 이현보가 이제 막 왕위를 계승한 인종에게 올린 상소문도 소공의 윗글을 인용하며 시작된다. 처음에 어떻게 하는지에 향후의 길흉이 달려 있음을 강조하면서 이현보는 말한다. “정치의 요체는 인재를 얻는 데에 있고 인재를 얻는 근본은 오로지 임금의 마음에 달려 있으니, 바로 명철과 신뢰입니다.” 인물의 진가를 평가하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대단히 어렵다. 두루 살피고 분별하는 명철함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물론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여 일단 일을 맡겼다면 정성껏 대우하고 전폭적으로 신뢰함으로써 그 능력을 온전히 펼치도록 해야 한다.

새 정부에 거는 기대가 조금씩 빛바래 가고 있다. 거듭되는 인사 논란 때문이다. 능력 위주, 통합 지향이라는 슬로건에 동의하며, 인수위원회 없이 진행되어 검증에 어려움이 있었으리라는 점도 이해한다. 하지만 특정한 자리에는 그 역할에 따르는 기대가 있기 마련인데 그에 상당히 반하는 것으로 드러난 인물을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고집하면서 내세우는 ‘능력’을 어디까지 인정할 수 있을까? 다름에 대한 관용의 범위를 넘어서 헌정 질서와 민주주의의 근간을 부정하는 주장을 최근까지 제출해온 인물을 대통령실 비서관에 임명하며 내세웠던 ‘국민통합’이 과연 납득될 수 있을까?

이현보는 인종에게 올리는 상소문에서 그의 아버지인 중종의 실패를 거론했다. 연산군의 폭정을 올바르게 되돌린다는 반정(反正)의 명분으로 왕위에 오른 중종이었지만, 바로 그 반정의 주역들에 가려서 여러 인물을 두루 살피고 등용하는 명철에 제한이 있었음을 상기시킨 것이다. 새 정부가 내란 종식과 실용 중시라는 명분으로 인해 자칫 조바심, 혹은 근거 없는 자신감에 사로잡혀 명철을 잃게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신중한 명철을 전제로 하지 않는 전폭적 신뢰는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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