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너무 잘 토라지는

이소영 제주대 사회교육과 교수 2025. 7. 22.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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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시 갖고 싶던 책을 선배가 내 생일에 선물해주겠다 했다. 박사과정 초반 무렵, 우리가 함께 준비하던 대학원총학생회 학술행사의 뒤풀이 자리에서였다. “정말요?” 기뻐하며 손가락을 걸어 약속했다. 여러 날 지나 생일이 되었으나 선배한테선 종일 연락이 없었다. 서운함을 참지 못한 난 늦은 시각 “약속을 지킨다고요? 지나가던 강아지가 웃겠어요”라 메시지를 보냈다. 며칠 후 만난 그는 당일 심한 몸살로 학교에도 못 나왔었다며, 이걸로 그 책을 사보라고 도서상품권을 건넸다. 난 토라져 말을 안 했다.

몇 학기 더 흘러, 선배는 학위논문을 위한 자료 수집차 모스크바로 떠났다. 추운 지역에서 지낼 선배를 위해 조그만 상자에 보온물병 등속을 담아 선물 꾸러미를 만들었다. 그는 고맙다며 귀국할 때 뭘 사다 줄지 물었다. “보드카를 마시고 싶어요.” 나는 답했다. 꼭 사다 주마, 이번엔 손가락을 걸고 엄지 도장까지 찍었다. 실제로 귀국하며 근사한 보드카를 한 병 골라오셨다 전해 들었다. 나를 못 만난 사이 다른 형들의 회유에 넘어가 병을 따서 다 비웠다는 소식과 함께. 난 몹시 토라져 말을 한마디도 안 했다.

돌이켜보면 그 무렵 보드카가 무슨 맛인지조차 몰랐다. ‘블랙 러시안’이라 불리던 보드카 베이스 칵테일의 다디단 커피우유 맛은 거기 첨가된 칼루아라는 리큐어의 것인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훗날 마셔본 진짜 보드카는 무색무취의 강렬한 불덩어리였다. 당시 난 그 술을 특정하여 원했던 게 아니라 그저 뭐든 졸라보고 싶었다. 그때껏 살며 ‘말씀만으로 감사합니다’라 예의 바르게 고사하는 대신 ‘꼭 사다 주세요’ 생떼 부릴 수 있던 존재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그가 처음이었다.

그는 나를 두고 너무 잘 토라진다고 평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사람 좋은 너털웃음을 짓긴 했으나 그도 내심 당혹스러웠으리라 헤아려진다. 언젠가 사소한 일로 문 쾅 닫고 합동 공부방으로 쌩 들어가자 뒤따라 들어오며 선배가 말했다. 이러지 말라고, 나라고 무쇠로 만든 심장을 가진 건 아니라고 말이다. 여기저기 뒷말 흘리던 이들 앞에선 억울함을 감춘 채 벙싯벙싯 웃었으면서 유달리 그 앞에서만 날것 그대로 감정을 표현했던 데 대해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라 준연히 자아비판 함이 옳겠으나, 사소한 일에 흥분을 표할 만큼 경계 해제하게 해준 그는 참 좋은 사람이었다고 생각하려 한다. 미안함보다 고마움으로 그를 기억하고 싶다.

술도 안 마신 말짱한 상태로 손윗사람에게 말 놓을 용기를 내어보게 했던, “이소영이가 미쳤구나. 하극상이야, 하극상.” 껄껄 웃으셨던, 문구용 칼로 연필을 예쁘게 깎을 줄 아셨던, 내가 아끼던 독일제 색연필을 다섯 자루나 깎아주셨던, 러시아어를 하실 때면 ‘산적’이란 별명에 걸맞지 않게 이지적이던, 지인들 전언에 따르면 결혼 전엔 모스크바 지하철에서 이국 여성의 대시도 받은 적 있다던 선배.

모교 후문의 오래된 커피가게가 이전을 위해 문 닫았단 소식을 들은 그 밤에도 선배를 떠올렸다. 학부 시절까진 그 가게를 할아버지 교수님들이 드나드는 지하다방 정도로만 짐작했던 나를 데려가 핸드드립 커피를 맛보여줬던 이가 그였다. 모종의 속상한 일로 저녁도 거른 채 고집스럽게 책 페이지를 넘기던 나를 달래어, 갓 내린 커피와 블루베리 넣어 구운 베이글을 사주셨지. 계단을 타닥타닥 내려가면 지하층의 습기 냄새와 로스팅 내음이 섞여들던 곳. 이후 종종 여럿이 혹은 혼자서 거길 찾곤 했다. 닫힌 쇠문엔 소설가의 문장을 옮겨 적은 쪽지가 붙어 있었다 한다. “우리가 잠시라도 시간을 보낸 장소에는 우리 영혼의 일부가 남는다.” 이젠 폐쇄되었을 장소 모퉁이에 여전히 남아 있을까. 낡은 주름치마에 곤때 묻은 블라우스를 입은 ‘너무 잘 토라지는’ 후배와 속이 깊고 너른 선배의 영혼 중 일부가.

이소영 제주대 사회교육과 교수

이소영 제주대 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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