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고흐 바이러스

홍동윤 2025. 7. 22.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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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동윤 인천인재평생교육진흥원 비상임이사

'고흐 바이러스'라는 말이 있다. 고흐의 편지를 읽고 그림을 보게 되면 모두 그의 진실에 감동하게 된다는 뜻이다. 고흐의 동생인 테오의 아내 요한나가 최초의 바이러스 감염자였다. 그녀의 끈질긴 집념과 마케팅 전략 끝에 고흐는 사후에 위상이 높아진다. 오늘날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들을 남긴 작가이자 서양미술사상 위대한 화가 중 한 명인 빈센트 반 고흐는 살아있을 때는 무명의 화가였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이어갈 수 없었던 고흐는 1869년 숙부의 도움으로 16세에 화랑에서 일하게 된다. 그는 이곳에서 그림에 대한 안목과 소양을 키운다. 하지만 미술상들이 미술품을 지나치게 상품화한다는 점에 분개하고, 그림 판매업에 회의를 느낀 그는 상사와 고객들과 갈등을 겪던 끝에 해고된다.

1880년 3월, 집으로 돌아온 고흐는 불안한 미래를 염려하는 편지를 테오에게 보내고, 광부들의 삶을 소묘로 그려 넣은 편지를 받은 테오는 형의 재능을 믿고 그림을 그려보라는 제안을 한다. 고흐는 스물일곱 살의 늦은 나이로 화가의 길에 들어선다. 그는 사랑과 결혼, 화가공동체, 화가로서의 성공 등 자신이 의도하며 추진했던 일들에 다 실패한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혼신의 힘을 다해 그림을 그린다.

생전에 그림 한 점밖에 팔지 못한 고흐는 "예술가들이 말할 수 없이 끔찍하고 비참한 생활"을 하는 현실에 불만을 토로한다. '민중의 눈'을 그리고 싶어 했던 그는 모델을 구할 돈이 없어 인물화 대신 꽃과 나무, 별 등의 자연을 그리거나 자신을 소재로 그려야만 했다.

그는 "그림으로 그린 초상에는 그 자체의 생명력, 즉 화가의 혼에서 곧장 튀어나오고 어떤 기계도 접근할 수 없는 생명력이 있다"고 여겼고, 사진이 드러낼 수 없는 '영혼'을 보여줄 수 있다고 확신했다.

고흐는 1880년부터 1890년까지 10년 동안 회화 900여 점과 스케치 1100개를 남긴 열정의 소유자였다. 그의 고뇌와 방황, 절망은 주변 사람들에게 보낸 수많은 편지 속에 기록되고 남겨졌다. 고흐는 마음속에 소용돌이치던 생각과 감정을 편지에 쏟아내고는 했는데, 남겨진 903통 가운데 663통의 편지의 수신인은 평생의 동반자였던 동생 '테오(Theo van Gogh)'였다.

가난과 간질, 정신병적 증세에 시달리던 고흐는 1890년 7월27일,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가슴에 총상을 입고 귀가해 사경을 헤매다 29일 새벽에 눈을 감는다. 땀 흘려 정직하게 노동하는 사람들과 자신의 재능을 알아보지 못한 냉혹한 세상을 그 누구보다 사랑했던 화가는 남루하고 비통한 삶 속에서도 불멸의 그림을 많이 남기고 떠났다.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도록 만들 수 있는 그의 작품을 감상하는 일은 우리의 비속하고 타락한 삶을 정화하는 데 큰 도움이이 된다. 고흐 바이러스는 전염성이 강하다.

/홍동윤 인천인재평생교육진흥원 비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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