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부산콘서트홀, ‘클래식 도시’ 향한 첫걸음

이승준 거인병원 대표원장 2025. 7. 22.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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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클 연주자뿐만 아니라 지역 음악인에 무대 제공
생활 밀착형 콘텐츠 구성, 시민 문화 안식처 만들길
이승준 거인병원 대표원장

지난 6월, 부산에 뜻깊은 공간이 하나 들어섰다. 국내 몇 안 되는 클래식 전용 공연장인 부산콘서트홀이 개관한 것이다. 필자는 정명훈 지휘자의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포함한 개관기념 공연을 관람하며, 단순히 음악을 감상하는 시간을 넘어, 부산이라는 도시가 이제는 새로운 문화적 흐름을 만들어갈 수 있겠다는 기대를 품게 됐다.

그간 부산은 영화 미식 관광 등 다양한 문화 자산을 지닌 도시로 주목받아 왔지만, 클래식 음악에 있어서는 상대적으로 인프라가 취약한 지역으로 인식되어온 것도 사실이다. 서울은 말할 것도 없고, 부천처럼 중소도시에서도 전용 클래식홀을 운영하는 사례가 등장한 반면, 부산은 그동안 지역 오케스트라와 문화재단 중심의 노력만으로 명맥을 유지해왔다. 물론 부산시립교향악단이나 부산국제음악제와 같은 시도들이 꾸준히 이어져 왔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전용공간이 없었다는 점에서 이번 부산콘서트홀의 개관은 분명 큰 의미를 갖는다.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클래식 전용홀이 단지 음악을 위한 공간을 넘어 도시의 정체성과 품격을 형성하는 문화적 인프라로 기능하는 경우가 많다. 오스트리아 빈의 무지크페라인, 독일 라이프치히의 게반트하우스, 일본 도쿄의 산토리홀이 대표적이다. 이들 도시에서는 공연장이 단순한 문화시설이 아닌, 시민의 일상과 자연스럽게 연결된 거점이자 정체성을 담는 상징으로 자리잡고 있다. 물론 부산이 당장 이들과 같은 수준의 클래식 도시로 자리잡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겠으나, 이제 그런 상상과 계획이 가능해졌다는 점만으로도 반가운 변화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공간이 얼마나 지속 가능하고, 시민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될 수 있느냐다. 이름 있는 지휘자와 세계적 연주자들이 무대에 서는 것도 분명 의미 있는 일이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지역 예술단체, 클래식 교육기관, 커뮤니티 기반의 문화 프로그램이 이 공간과 유기적으로 엮일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부산시향과 지역의 민간교향악단들이 중장기적으로 거점 악단으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야 하고, 다양한 소규모 실내악 단체나 청소년 오케스트라가 이 공간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정기적인 시즌제 운영은 물론, 상주 연주자나 작곡가 제도를 통한 창작 생태계 조성도 적극 고려될 필요가 있다.

클래식은 많은 이들에게 여전히 어렵고 낯선 장르다. 이 간극을 좁히기 위해서는 초심자를 위한 해설 음악회, 유치원과 학교를 대상으로 한 교육 공연, 주부나 은퇴 세대를 위한 평일 낮 공연 등 다층적이고 생활 밀착형 콘텐츠가 반드시 함께 구성돼야 한다. 공연장을 세웠다고 문화가 저절로 자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공간이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때, 비로소 문화도 자라난다.

그렇다면 왜 굳이 부산에서 클래식을 뿌리내리려 하는가. 개인적으로는 클래식이라는 장르가 단순한 음악적 취향을 넘어서, 도시의 품격과 문화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클래식이 도시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는 순간, 그 도시는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춘 도시로 인식되고, 이는 정주 매력, 교육 자산, 관광 콘텐츠, 창의 산업 전반에 긍정적인 파급 효과를 줄 수 있다. 부산이 앞으로 예술을 즐기기 위해 사람들이 찾아오는 도시, 문화예술이 머무는 도시가 된다면, 이는 시민의 삶의 질은 물론 도시의 경쟁력에도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다. 특히 부산은 클래식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경쟁력 있는 도시다. 해양 음식 영화 건축 등 풍부한 콘텐츠를 이미 보유하고 있고, 최근에는 의료관광 인프라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다. 이런 요소들과 클래식이 결합된다면, 공연·휴양·치료를 연계한 고부가가치 복합 문화 모델도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고 본다. 단순히 공연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중심으로 한 ‘체류형 문화경험’이 가능한 도시로서 부산이 거듭날 수 있다.

물론 이런 구상들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제도적 지원도 필요하다. 공연장 운영을 넘어 교육과 지역 예술계와의 협력, 다양한 민간기관과의 연계, 세계적인 음악가들을 섭외하기 위한 중장기적 프로그램 기획 등은 모두 민관의 공동 책임 영역이다. 이 과정에서 지역의 학계 기업 예술단체 등이 폭넓게 참여한다면 훨씬 더 견고한 문화 생태계가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부산 시민의 한 명으로서, 이 공간이 부산이라는 도시의 품격을 조금 더 높이고, 시민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부산콘서트홀이 클래식을 위한 무대를 넘어, 시민 모두의 문화적 안식처로 자리 잡는 날이 오기를 조용히 기대해본다. 그리고 그 기대가, 한 공연장에서 멈추지 않고 도시 전반으로 스며들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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