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미학

야인이라 하면 옛날에는 벼슬살이를 마다하고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사는 지조 있는 선비를 말하기도 하여 뜻있는 이들의 동경의 대상이기도 했다. 요즘은 현시대를 살면서 기성 틀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아웃사이더라고도 하는데 위에서 언급한 야인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지만 동경의 대상과는 다소 거리가 있을 수 있다.
필자는 등단 이후 지역의 문단에서 나름 열심히 활동 한 적 있으나 특별한 이유 없이 최근까지 이십여 년 동안 야인이나 아웃사이더로 자처하며 은둔생활을 해왔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철저히 이방인으로 살아왔음을 새삼 느끼는 중이다. 스스로의 왕따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려운 시절 날 지탱해 준 게 문학이었기에 한시도 펜을 멀리 한 적 없이 나 홀로의 성안에서 글을 써오다가 이번에 다시금 문학회 활동을 하게 되었다.
뒤늦게나마 문학회 활동을 하게 된 계기가 된 건 지난해 마지막이라며 네 번째 시집을 낸 적이 있는데 시집을 받아 본 문단의 선배로부터 이참에 문학회에 들어오라는 권유를 받았던 것이다.
실로 오랜만에 문학회에서 주관한 문학기행을 간 적이 있다. 함께 한 이들을 보며 그들 안에 몇 권의 시집과 수필, 소설이 들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참석한 문인들 대부분이 노을을 바라보는 세대임에도 아이들만이 지닐 수 있는 순수가 살아 있었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 했거늘 눈빛이 어찌도 그리도 맑고 순한지 하는 언행마저도 세속에 때 묻지 않은 것에 놀랄 뿐이었다. 본인 역시 그러하지만 이 나이 먹도록 험한 파고의 세상살이에 그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을까? 한마디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치러낸 역전의 용사들이 아니던가. 그럼에도 거짓으로 지어 낼 수 없는 저 순수의 동력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아마도 문학의 힘이 아닌가 싶다, 그들 한 분 한 분 모두가 내게는 문학의 불을 지피게 하는 불쏘시개였고 마중물이었다.
어울림과 나눔은 의미 있는 삶이며 후회 없는 생을 사는 지표임을 늦게나마 다시금 일깨워 준 이들에게 무한 감사를 드리며 겸손의 옷깃을 여민다. 야인이 아니었고 오만 방자한 행태였음을 통절하게 반성하는 중이다. 시를 쓰는 사람으로서 자유인으로 산다는 명분으로 방종의 삶을 산 것을 부끄럽게 여기며 이제라도 내 역할과 자리를 스스로 찾을 일이다. 누가 불러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먼저 찾아가고 불러내는, 나잇값 하며 익어가는 삶을 살아가야겠다. 마음속에만 넣고 있던 생각을 표현하고 공감하는 관계의 삶을 다짐해 본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타인과의 관계를 통하여 비로소 온전한 인격체가 될 수 있으며 인간관계는 삶의 중요한 요소라고 했다. 하물며 문학단체를 통한 관계 맺음과 소통은 문학적 사유의 세계를 넓히고 창작의 동기 부여를 해주는 등의 문학적 자산을 쌓는 소중한 계기가 되는 것으로 개인의 문학적 성장은 물론, 문학계 전체의 발전과 활성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인적 네트워크인 것이다.
내가 좋아하고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게 시 쓰는 일이라고 여기며 살아왔으니 문학을 하는 사람들과의 진심을 기울인 만남을 통하여 나라는 그릇이 더 커지고 창작의 마당이 더 풍요로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지막이란 단어는 함부로 쓰는 게 아니라는 선배의 따끔한 지적을 받은 적이 있다. 다섯 번째 시집, 그 이상의 시집도 낼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늦은 감은 있지만 홀로 쌓은 성안에서 그만 나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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