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화 칼럼] ‘트럼피즘’에 올라타라

수 년 전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보고 알 듯 모를 듯한 얘기를 했다. “내가 보기엔 트럼프는 역사상 한 시대가 종언을 고할 때 등장해 해묵은 가식을 벗겨내는 그런 인물이다.”
그 자신의 가식 여부를 떠나 트럼프는 가식과 위선을 ‘극혐’한다. 그것이 또 ‘트럼피즘’의 정수다. 트럼프 관세가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일으키고 미국 경제를 망칠 것이란 전망은 빗나가고 있다. 인플레이션은 일어나지 않았고 미시간대 소비심리지수는 2월 수준으로 돌아갔다. 미 기업과 소비자들은 자신감을 회복했으며, 다시 지갑을 열고 있다. 경제의 선순환이 일어나고 있다.
세계의 시장 미국이 활황이면 수출국들은 쾌재다. 이 구조 때문에 모든 나라가 미국을 벗겨먹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장벽을 쳤지만 말이다. 지금까지 합의된 3개국 관세를 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생각하는 상호관세율 최저 선은 10%인 것 같다. 베트남 20%, 인도네시아 19%였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싱겁게’ 합의한 영국 상호관세율은 10%였다. 한국은 25%의 상호관세를 통보받았지만, 협상의 목표는 결국 경쟁국 대비 낮은 관세율의 관철이다.
대만은 한국과 일본보다 낮은 15~20%의 상호관세율을 목표로 한다고 대놓고 말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매우 터프한 협상을 하는 중이다. 15~20%의 최종 관세율을 통보받았지만 버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타결이 안 되면 보복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벼른다.
일본도 진척이 더디다. 일본은 주력 수출품인 자동차의 품목관세 면제를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그러나 일본만 자동차 품목관세를 면제하거나 낮추면 미국은 한국과 EU에도 낮추지 않을 명분이 없다. 미일 협상이 난항을 겪는 것을 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품목관세는 거론하지 말라’고 딱 잘라 말한 게 아닌가 싶다. 이런 가운데 여당이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했으니 협상에 애로가 생겼다.
멕시코와 캐나다의 경우 각각 35%, 30%의 상호관세가 통보됐지만 미국·멕시코·캐나다 무역협정(USMCA)에 포함된 품목은 관세 대상에서 제외될 것으로 보인다. 어차피 멕시코와 캐나다는 우리의 우회 수출기지이지 경쟁상대는 아니다.
중국은 우리보다 높은 관세율이 적용될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를 푸는 대가로 엔비디아 AI칩 H20의 대중 금수를 해제하면서 빅딜 가능성도 점쳐지지만, 트럼프 관세의 최대 타깃이 중국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 협상 전략은 자명해진다. 먼저 USMCA(북미자유무역협정)의 사례를 들어 우리도 미국과 FTA 체결국이니 해당 품목에 대해서는 예외를 인정해달라고 떼를 써보는 것이다. 미국이 들어줄리 없겠지만 말이다. 그 다음 전략이 일본, 대만, EU보다 낮은 관세율을 받아내는 것이다.
현재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워싱턴에 가 있고 경제부총리, 통상교섭본부장, 외교장관, 산업부장관도 줄줄이 방미해 카운트파트너를 만난다고 한다. 최대한 성의를 보이는 건 협상의 제1원칙이다. 쌀 수입의무 쿼터를 늘리고 사과시장을 개방하며, 구글맵 서비스를 허용하고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에서 양보안을 내면 돌파구가 열릴지도 모른다.
세계가 온통 트럼프를 백안시하는데, 반쪽만 바라보는 태도다. 무역에서 트럼피즘은 간단하다. 미국은 더 이상 ‘호갱’이 안 될 것이며, ‘공정무역’하자는 것이다. 지난 80년 동안 미국은 그 거대한 시장으로 세계를 먹여 살렸다. 기축통화국으로서 무역적자는 숙명이었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무역적자는 안 된다고 한다. 달러패권에 도전하면 무지막지한 보복을 하겠다고 위협한다. 이는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달라는 것과 같다.
키신저의 말처럼 트럼프가 세계 통상의 가식을 벗겨낼지 지켜볼 일이다. 우리는 트럼프의 춤판에서 정 맞지 말고 떡만 얻어먹으면 된다. 못 피할 바에야 트럼피즘에 올라타라는 얘기다.
이규화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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